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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 |
[보는 영화, 읽는 영화] 데이브, 대통령의연인
관리자(2012-12-06 16:47:28)
정치에 냉소적인 당신에게, 판타지면 어때! 송경원 영화평론가 2012년 9월, 미국 대선 시즌에 맞춰 워너 브라더스는 대통령을 소재로 한 두 편의 블루레이를 출시했다. 바로 영화 ‘데이브’와 ‘대통령의 연인’이다. 90년대 초에 만들어진 이 두 편의 영화를 이제와 블루레이로 출시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미합중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선출한 미국인들. 그들이 했던 기대와 그 선택의 결과,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진 선택에 이 두 편의 영화가 시사 하는바는 무엇일까.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의 다수는 실화를 다룬다. 케네디 대통령 저격사건을 소재로 한 ‘JFK’.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기억되는 닉슨대통령을 다룬 ‘닉슨’, ‘프로스트vs닉슨’이 대표적인 경우다. 한국영화로는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이 있고, 직접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곧 개봉할 ‘26년’이나 ‘남영동1985’는 실제 인물들과 사건을 토대로 한 영화다. 하지만 이번에 블루레이로 출시된 ‘데이브’와 ‘대통령의 연인’은 독특하게도 코미디와 로맨스가 강조된 허구다. 특히 최근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표절논쟁으로 주목받은 ‘데이브’의 경우, 대통령과 닮은 사람을 대타로 세운다는 설정에서부터 완벽한 판타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데이브’는 설정만 들어도 영화 전반의 내용을 추측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익히 알고 있는 스토리다. 실업자에게 일자리를 소개시켜주는 직업소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평범한 남자 데이브(케빈 클라인). 그는 대통령과 무척이나 흡사한 외모 덕분에 대통령인척 연기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측근들은 대통령이 사적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대타를 해 줄 사람을 찾다가 데이브를 발견한다. 그가 이 가슴 떨리는 아르바이트에 적응하기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진짜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데이브에게 계속 대통령을 연기하도록 지시한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너무나 인간적인, 국민에 대한 진심을 가진 데이브에게 마음이 움직이고 심지어 영부인마저도 데이브를 도와주는 상황. 비서실장은 제 뜻대로 조정되지 않는 데이브를 몰락시킬 방법을 찾는다. 이 같은 소재가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 다 그렇듯 ‘데이브’ 또한 갑자기 대통령이라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된 주인공과 비밀을 알거나 모르는 주변사람들과의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그러니 드라마와 코미디에 중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중반이후 영부인(시고니 위버)과 데이브 사이의 로맨스가 시작되고 후반부에서 대통령보다 더 대통령 같은 데이브의 모습을 보면 저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라고 생각했다가도 안 되리란 법은 없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생겨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작을 기대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로 멈춰버린 지금이니 다시 한번 기대해 보는 마음으로 ‘데이브’를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 아닐까. ‘데이브’ 같은 사람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말이다. 또 다른 영화인 ‘대통령의 연인’의 대통령은 ‘데이브’의 대통령과는 달리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구태여 숨기지 않으려고 한다. 재선을 앞두고 유권자의 표를 잡아야 하는 대통령 앤드류(마이클 더글라스)는 환경단체의 로비스트 시드니(아네트 베닝)을 보고 첫 눈에 반한다. 주요 현안이 오고 가는 시점이니 감정을 숨기는 것이 좋겠다는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앤드류는 시드니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선거의 상대편은 앤드류와 시드니에 대한 루머를 퍼트리기 시작하고 마음 편히 사랑을 속삭일 수만은 없는 두 사람. 심지어 앤드류는 자신의 공약과 배치되는 시드니의 행보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기로에 놓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은 결실을 맺고 앤드류의 감동적인 연설로 유권자의 마음까지 얻는다. 이렇듯 부드러운 코미디, 현대적 풍자, 구식 로맨스를 합친 ‘대통령의 연인’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영화다. 왜 대통령은 가지고 싶은 것을 전부 가질 수 없는 것일까. ‘대통령의 연인’의 대통령은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감이 넘치고 유능한데다 권력의 중심이니 사실 가지려고 마음먹으면 가지지 못하는 게 없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국민들의 마음이다. 제 것이 아닌 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인물이기에 마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일단 제 것부터 챙기고 보겠다는 정치인들의 소식이 매일 같이 날아드는 가운데,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어쩐지 생소할 지경. 현실성이 없다며 비웃을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에서라도 그런 대통령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데에 뜻을 두는 리더가 필요한 요즈음, 대통령이 등장하는 영화를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잠시나마 정치에 대한 불신은 잊고 새로운 기대를 하게 되지 않을까. 사실 이 두 영화는 대단한 정치영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는 영화일수도 있다.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이 이런 판타지를 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요즈음 평범한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해 노력하는 ‘데이브’나 사랑하는 여인과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앤드류의 모습을 보는 것도 꽤 해볼 만한 일이 아닐까.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사람들이 잠깐이나마 긍정을 경험할 수 있다면 분명 그리 나쁜 시도는 아닐 것이다. 이 두 편의 밝고 낙천적인 정치동화가 동시에 블루레이로 출시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판타지이기는 하지만 한 사람의 신념이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니 말이다. 오히려 이런 영화를 통해 쉽게 접근해보는 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유효할지 모른다.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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