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 |
[연중기획] 공간 2 - 집 4
관리자(2012-12-06 16:45:42)
당신의 옆방엔 누가 사나요?
임주아 기자
하숙집도 남는 방이 없던 3년 전 가을. 터벅터벅 후문 쪽으로 걸었다. 학교와 멀고 어두운 길, 선택권이 없었다. 휴대전화를 열었다. 집주인은 원룸 1층에 딱 하나 남는 방이 있다고 했다. 철커덕, 문이 열렸다. 오래 비워둔 흔적이 역력한, 곧 가라앉을 것만 같은 방이었다. 오, 신이시여. 십오 년은 더 돼 보이는 낡은 냉장고와 담뱃재에 시커멓게 그을린 변기, 물 샌 벽지, 누런 천장이 흡사 폐가를 연상케 했다. 쏴아아아. 주인은 싱크대와 샤워기 앞을 왔다 갔다 하며 물만 잘나오면 이 방에서의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는 듯 웃어보였다. 그리고 집주인답게 말했다. “싸게 얻는 거여.” 일 년에 이백이라 했다. 그를 따라 반지하 사무실로 내려갔다. 도장을 꺼내려다말고 슬쩍 물었다. “저기……. 옆방엔 누가 사나요?”
그녀는 아침 일찍 나가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밥을 잘 해 먹지 않는지 방문 앞엔 늘 배달그릇이 놓여있었다. 내 또래 중국유학생이라 했다. 그녀는 자주 울었다. 어느 날엔 전화기 부여잡고 흐느꼈고, 어떤 날엔 남자친구를 붙잡고 통곡했다. 흐느낌이 통곡이 될 때까지, 통곡이 혼잣말로 가라앉을 때까지 벽에 기대 잠자코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 타국 생활이 얼마나 힘들면…….’ ‘혹 그 시커먼 애인이 헤어지자고 했나?’ 짐작 해보지만 그녀의 옆방에 사는 한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었다. 독립인 줄 알았으나 독립하지 못한 방, 벽과 벽 사이 소음과 울음을 공유하는 방. 상관도 없고 관계도 없는 방. 나는 그녀와의 반쪽짜리 소통이 얼마나 적막하고 공허한지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어딘가 쑥 커버린 느낌. 원룸에서의 2년은 그렇게 흘렀다. 한 학기가 남았는데 계약하기가 애매했다. 고민하던 찰나 잊고 지냈던 기숙사가 떠올랐다. 밤 11시가 가까워오면 부딪던 잔을 뿌리치고 심장 터져라 뛰던, 친구의 친구 헌혈증까지 뺏어가며 벌점 지우려 안달복달하던(당시엔 헌혈증 한 장당 벌점 2점씩 차감해주는 제도가 있었다!), 넘치는 헌혈증과 부지런한 청소 봉사에도 불구 한 학기 퇴사 15점에 21점 맞아 쫓겨난! 거길, 또?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숙사행정실로 찾아가 황급히 전과기록부터 살폈다. 여자 사감이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학번 이공공칠공오일칠, 신청 가능합니다.”우체국박스가 속속 도착하고 룸메이트들이 트렁크 짐을 풀기 시작했다. 방은 금세 복작복작해졌다. 우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동창친구를 만난 듯 어설픈 대화를 이어갔다. 모두 졸업을 앞둔 4학년이었다. 나이와 과는 달랐지만 모두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방에 사는 동안 조금 얘기를 나누나 싶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휴대전화를 붙들고 떠드는 A와 밤 아홉시만 되면 묻지도 않고 불을 꺼버리는 B, 잠시 외출할 때도 자물쇠를 두 개 이상 채워놓는 C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너질까 조심스러웠던 원룸이 다시 그리워졌다.
직장 핑계로 구한 첫 호사, 꿈처럼 원하던 방을 구했다. 반짝반짝한 신축건물에 꽤 넓은, 다락방이 딸린 방이다. 하지만 원룸은 원룸일 뿐이었다. 이사 온 첫날 다락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천장에서 오묘한 소음이 들려왔으니, 옆방 여자의 울음소리보다 더 지독한 종류의 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그 소리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연주와 함께 한 음을 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창대한 물벼락으로 끝나는, 윗집 남자 변기 물 내리는 소리였다. 가까이 들릴수록 천장이 점점 누렇게 변하고, 내 얼굴도 창백해져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매일 밤 마른세수를 하며 잠을 달랬다. 묵직한 소리가 떨어지는 날에는 악몽을 꿨다. 더럽고 슬픈 꿈이었다.
옆방에 외국인 부부가 이사를 왔다. 국적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둘 다 동양인이다. 말하지 않아도 당분간 서로를 가장 잘 알게 될 사이, 이번엔 마주치면 인사도 하고 말도 붙여볼 작정이다. 조만간 윗집 남자 얼굴도 알게 되지 않을까? 얼굴을 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고 웃기만 할 것 같다. 네모에서 네모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제 보금자리에 안착하려 열심히 산다. 컨베이어벨트에 놓인 박스처럼 들어갔다 나오기만을 반복하는 원룸사람들도 그 중 하나다. 원룸은 고속도로를 달리다 한번쯤 들르는 간이휴게소처럼 누구나 오고 가는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공간이 됐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활용하지 않는다. 화장실만 들렀다 돈만 쓰고 나온다. 이제는 원룸에서 산공기도 마시고 구름도 쳐다보고 밥도 먹고 사람들과 사는 얘기도 나누었으면 좋겠다. 이 긴 여행이 덜 지루하려면 촌스러워지는 연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