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 |
[임안자의 내가 만난 한국영화] 전주국제영화제 2
관리자(2012-11-05 15:32:35)
영화의 이념, 그 경계를 무너뜨리다
쿠바영화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내가 쿠바영화를 처음으로 본 것은 1976년 페사로 영화제를 방문했을 때였다. 철저한 냉전이데올로기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라서 공산국 쿠바의 영화들을 보는 동안 나는 깊은 충격에 빠져있었다. 아니, 쿠바영화의 아름다운 세련미에 홀딱 반했다는 말이 더 적절할 듯하다. 쿠바에 이런 훌륭한 영화가 있었다니!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그 후 90년대 초에 나는 스위스의 프리부룩 영화제에서 쿠바영화 두 편을 다시 봤다. 다니엘 디아즈 토레스의 <이상한 마을의 알리시아>와 페르난도 페레즈의 <마다르가스카>였다. 그리고 상영관에서 90년대 쿠바영화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들을 직접 만나고 이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까지 가졌다. 그런 뒤 나는 1998년 다시 프리부룩 영화제서 페레스 감독의 새 영화 <인생은 휘파람이다>를 보고 감독과 단독 인터뷰를 했는데 이래저래 두 감독을 여러 번 만나면서 이들과 친구가 됐다. 페사로에서 쿠바영화를 본 뒤부터 나는 쿠바영화를 한국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그러나 쿠바는 한국과 수교를 맺지 않은 나라에 속했기 때문에 이들의 영화를 한국 관객에게 보여줄 수는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기가 싫어 부산영화제 초기에 전양준 프로그래머에게 쿠바영화 회고전을 제의했으나 그는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관심 밖으로 돌렸다. 그러다가 2003년 나는 한 일간지에서 “로카르노 영화제에 새로 생긴 <열린 문> 프로그램에 쿠바 감독들의 새 프로젝트들이 소개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로카르노에 쿠바영화계의 대표기관인 쿠바영화 예술상업진흥원(ICAIC)의 실무자들과 유명한 감독들이 참가한다”고 써 있었는데 페레즈와 디아즈의 이름도 그 안에 들어있었다. 로카르노의 “열린 문”은 스위스 정부의 외무부에 속한 “발전과 협조를 위한 기관”(DEZA)에서 개발도상국가의 영화생산을 돕기 위해 2003년에 설립한 기구로서 맨 처음 초청된 나라가 쿠바였고 협조기간은 3년이었다.
2003년 8월 초에 나는 불안과 희망이 엇갈리는 심정으로 기차를 타고 로카르노에 가서 쿠바 프로젝트의 모임에 참가했다. 그 자리에는 아투로 소토, 다니엘 디아즈 토레스, 페르난도 페레즈, 주앙 칼로스 크레마타 말베르티, 주앙 칼로스 잘디바, 움베르토 솔라스, 움베르토 파드론 등 쿠바의 주요 감독들이 대거 참여했고 이들의 새 작품구상에 초점을 둔 프로젝트가 몇 시간에 걸쳐 소개됐다. 나는 쿠바 프로젝트 모임에서 페레즈 감독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프리부룩 영화제서 인터뷰를 할 때 내가 ‘쿠바영화를 한국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내 의도를 알아채고는 ICAIC의 대표자 마리아 돌로레스에게 나를 소개했다. 몸집이 큰 중년의 돌로레스는 내가 하는 말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끝에 가서 “한국과 쿠바 사이를 좁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다. 쿠바 정부에서 반대하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걱정 말고 당신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라”며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그의 따뜻한 말에 힘을 얻고는 ‘우리 둘이서 잘 해 보자’는 말로 그에게 내 뜻을 한 번 더 다짐했다.
그리고 한 달쯤 뒤에 나는 스위스를 여행하는 한국 외교관 한 분을 어느 모임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한국정부에서 쿠바와의 수교문제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외교관의 말로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한국의 산업제품이 쿠바에 들어가고 있는데 모두 멕시코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정부에서는 수교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쿠바정부가 이북을 의식하여 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나에게 “잘해보라”는 소리로 들렸다. 나는 됐다 싶어 바로 전주영화제에 내 쿠바영화 프로젝트에 대해 정보를 보내고 마리아 돌로레스 대표에게도 그 소식을 전달했다. 쿠바와 연락은 쉽지 않았다. 전자우편은 아예 통하지가 않아서 팩스나 전화를 써야 했는데, 팩스는 자주 고장이 나있었고 전화로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나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고 그 쪽에선 영어를 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지만 자리에 없을 때가 더 많아 전화 한번 하는데 몇 일이 걸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연락문제를 빼면 ICAIC 쪽에서는 돌로레스 대표가 약속한대로 내 프로젝트에 잘 협조했고 특히 가장 어려운 문제로 간주되던 프린트 확보에 힘껏 도와줬다. 로카르노에서 만났을 적에 돌로레스는 “해마다 세계 많은 곳에서 쿠바영화 회고전이 열리는데도 ICAIC이 갖고 있는 프린트는 영화마다 하나뿐이다. 그리고 있는 것들마저 아주 낡아서 문제가 많지만 복사할 돈이 없어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며 한탄을 했는데, 실지로 전주영화제에서 사용한 프린트 가운데 몇 개는 인도와 동유럽에서 행사가 끝난 뒤에서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프린트를 제 때에 받지 못해 상영에 차질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아무튼 나는 2003년 말쯤에 프로젝트에 대한 준비를 다 끝내고 이를 공식화 하기 위해 전주영화제를 통해 일찌감치 언론발표를 했다. 그리고 전주영화제서는 쿠바 특별전에 대한 기획을 정부에 알림과 동시에 정부의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한국정부에서는 쿠바 특별전에 대해 아무런 반대 없이 프린트수입의 관세문제에서 영화 감독들의 입국수속에 이르기까지 예외로 특별허가를 내주면서까지 영화제를 적극 도왔다. 그리고 그 당시 문화관광부장관이었던 이창동 감독은 “2004년 프로그램의 하나인 “쿠바영화 특별전”은 그 동안 우리가 접할 수 없었던 쿠바영화의 진수를 음미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쿠바의 문화와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줄 것입니다” 라는 긍정적인 글을 썼다(전주영화제 2004년 캐탈로그에서).
한데, 비수교의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다. 전주영화제의 초청으로 한국으로 오던 페르난도 페레즈, 다니엘 디아즈 토레스 감독들과 쿠바영화 예술산업진흥원의 해외 영화제 담당자 미오아라가 대한항공을 타기 위해 캐나다의 토론토 공항을 통과하던 도중에 한국과의 비수교국 문제로 캐나다의 경찰에 붙들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들 셋은 멕시코의 한국대사관에서 정식으로 비자를 받고 멕시코 비행기로 캐나다 공항에 닿았던 것인데 캐나다 경찰국에서는 이들이 캐나다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꾸민 술책으로 잘못 알고 체포한 것이다. 그런 사이에 캐나다 공항의 이민 경찰청으로부터 “세 쿠바인들이 전주영화제에 초대됐다고 하는데 정말이냐?”는 내용의 팩스가 영화제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김완주 시장에게 도움을 청했고, 김 시장은 “세 분은 우리 영화제의 쿠바 특별전에 초청된 귀빈들이며 이들의 체류비는 영화제서 전적으로 부담하니 빨리 한국에 도착하도록 조치해달라”는 답을 바로 보냈다. 그러고도 나는 두 감독이 직접 들고 오기로 돼있는 프린트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여 상영시간의 차질이 날까 봐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히 김완주 시장의 중재로 이들은 바로 풀려나 하루 늦게 도착했다. 쿠바 손님들의 초청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페레즈 감독은 “디지털 스펙트럼”의 경쟁에 선정된 “스위트 하바나”의 작가로 그리고 토레스 감독은 “디지털 스펙트럼”의 심사위원으로 초대되어 전주영화제에 참석함으로 비싼 초청비용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됐다.
한국관객을 열광시킨 쿠바영화
쿠바영화 특별전은 내가 전주영화제로 자리를 옮긴 뒤에 개발한 다섯 개의 “발굴 영화” 가운데 제1호였으며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는 역사적 행사였다. 나는 특별전을 준비하는 동안 쿠바에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으나 다행히 내 주위에 쿠바영화의 전문가들이 몇 명 있어서 이들의 의견을 골고루 들어보고 또 쿠바영화의 전문서적을 읽은 다음 영화선정의 목록을 만들어 돌로레스 대표에게 보냈다. 그리고 ICAIC에서 프린트 확보가 확인된 영화를 중심으로 영화를 뽑았는데 1964-1999년 사이에 만들어진 극영화 13편과 1995년-1969년간의 다큐멘터리 4편을 가지고 최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3편 극영화는 <소이 쿠바-나는 쿠바, 1964, 미하일 칼라토조프>, <저개발의 기억, 1968,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 <루시아, 1968, 움베르토 솔라스>, <어떤 방법으로, 1974. 사라 고메즈>, <테레사의 초상, 1979,파스토르 베가 토레스>, <집 바꾸기, 1984, 후안 칼로스 타비오>, <이상한 마을의 알리시아, 1990, 다니엘 디아즈 토레스>, <딸기와 초콜렛, 1993,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 <휘파람, 1998, 페르난도 페레즈>, <살사를 찾아서,1999, 리고베르트 로페즈>, <신기원과 세기말의 매혹,1999, 후안 칼로스 크레마타 말베르티>, <나다, 2001, 후안 칼로스 크레마타 말베르티>, <가족 비디오, 2001, 움베르트 파드론>이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4편은 산티아고 알바레즈의 명작 <지금, 1965> <영원한 승리의 그 날까지, 1967>, <엘 비 제이, 1968>, 79 봄들, 1969>으로 알바레즈는 쿠바영화사의 초기를 빛낸 세계적인 명성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홀랜드의 유명한 조리스 이벤스 감독에 버금가는 대가였다.
지면상 여기서 영화에 대한 설명은 접어두기로 하고 내가 쿠바 특별전에 붙여 쓴 글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영화해설을 대신한다. “쿠바 특별전은 쿠바영화사를 빛낸 수작들을 골라 묶은 것으로서 지난 세월에 세계 곳곳에서 국제관객을 감동시킨 주옥 같은 영화들이 한국의 관객 앞에서 드디어 펼쳐지게 됩니다. 그저 아름다운 열대지방의 감미로운 음악의 나라에서 온 이국풍의 영화가 아니라 몇 백 년간 질곡의 역사를 살면서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피땀을 흘린 쿠바 국민의 용기와 지혜 그리고 아름다움이 짙게 묻어나는 역작들입니다. 독일 감독 빔 벤더스는 1999년에 <뷔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만들므로 쿠바에서 죽어가는 전통음악을 다시 살린 인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서구에서 쿠바음악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그러나 벤더스 감독 이전에 이미 쿠바 감독 리고베르트 로페즈가 쿠바음악의 정수를 기록한 다큐멘터라 <살사를 찾아서, 1999>가 있었음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쿠바음악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전주영화제서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쿠바는 아직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지만 이데올로기의 편견이나 문화적 클리쉐를 버리고 영화를 본다면 쿠바가 좀더 가까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 싶습니다. 미국 작가 헤밍웨이는 하바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전원도시에서 그의 유명한 소설 <바다와 노인>을 썼습니다. 그러나 쿠바의 거장 알레아 감독은 그의 <저개발의 기억>에서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오래 살았지만 쿠바를 이용했을 뿐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평합니다. 어디서든 예술가들은 시대의 안테나와 같으며 역사의 증인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들의 작품에 눈을 돌리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며 훌륭한 예술가들이 많은 나라는 분명 축복 받은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쿠바 특별전 입문에서)
쿠바 특별전은 4월 24일 오후 8시에 프리머스 2관에서 “나다”의 상영으로 출발을 알렸고 그 다음부터는 프리머스 2.3관과 전주시네마 1.8관에서 17편 영화가 상영됐는데 상영 때마다 매번 밀려드는 관객들로 꽉 차이면서 열띤 분위기를 일으켰다. 쿠바영화에 대한 선전은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서 쿠바영화의 열기는 영화제의 극장가를 휩쓸었다. 영화제가 끝나갈 무렵에는 영화전문인들과 학생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는가 하면 몇몇 영화교수는 나를 만나자 “수업을 그만두고 학생들과 쿠바영화를 보기 위하여 전주로 왔다”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아버지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왔는데 잘 한 것 같다”며 감동에 찬 표정을 지었는데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왜 이런 좋은 프로그램을 미리 선전하지 않았느냐”고 불만을 터트리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았다.
극장가를 후끈하게 달구던 열기는 4월 30일 전북대병원 앞의 클럽 “자코”에서 열린 “쿠바의 밤”으로 이어졌다. 페막을 이틀 앞둔 이날 저녁의 “쿠바영화인과의 모임”에는 페레즈. 토레스 두 감독들과 미아오라가 참석한 가운데 나의 중재로 관객과의 대담이 열렸었는데 실내는 호기심에 찬 쿠바영화 애호가 50명으로 가득 찼었다. 세계 음악에 관심이 많은 자코 클럽의 주인 채광석씨는 나에게 “쿠바영화가 온다는 말을 듣고 한 달 전부터 전주지역 방송을 통해 남미 음악을 소개해왔다”고 했는데, 그날 저녁 그가 들려주는 음악으로 밤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으며 쿠바의 전통음악 살사의 리듬에 맞춰 관객은 쿠바 손님과 함께 춤을 추며 정다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에 페레즈 감독의 <스위트 하바나>가 “디지털 스펙트럼” 부문의 대상을 받음으로 쿠바영화의 인기는 절정에 올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페레즈 감독이 다음 작품의 제작문제 때문에 한국을 일찍 떠나는 바람에 상은 터레스 감독이 동료를 대신하여 받았다. 쿠바영화의 열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쿠바영화에 호감을 가졌던 교육방송사(EBS)는 전주영화제 동안에 쿠바특별전 가운데 6편 영화의 한국방영권을 사들이기로 결정하고는 토레스 감독과 합의를 했는데, 그럼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6편의 쿠바영화가 2003년 후반기의 6개월 동안 전국적인 방영시간을 가졌었다. 그런가 하면 특별전에서 <나다, 아무것도 아니다>로 관객의 인기를 끌었던 후안 칼로스 크레마타 말베르티 감독은 2년 뒤에 새 작품 <비바 쿠바>을 가지고 전주영화제를 다시 찾았다. 말베르티 감독은 내가 반가워 하자 “돌로레스 대표가 꼭 전주영화제에 가라”고 해서 출품을 했다고 했는데 한국과 쿠바 사이가 좁혀져 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쿠바 특별전에 대한 관객과 평단의 반응은 대체로 아주 좋은 편이었다. 그때의 분위기를 되살려보는 뜻에서 몇 개 뽑아낸 글을 여기에 부분적으로 옮겨 쓴다. “관객은 제5회 전주영화제의 프로그램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상영관 곳곳에서 만난 관객들은 올해 볼만한 영화가 없다고 투덜거렸다. 전반적인 수작의 퇴조 속에 관객들이 가장 반긴 것은 “쿠바영화특별전”이었다. 녹차 상영관에서 만난 변재란(영화평론가)는 “제가 ‘세계 영화사’를 쓰면서 언급했던 쿠바영화들이 거의 상영되더라고요. 그런데 필름 수급 때문에 그랬는지 영화들이 후반부에 잡혀있어서 볼 수가 없네요. 초반에 배치됐더라면 영화제 붐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됐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4월27일 새전북신문 김선희 기자).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다는 점에서 이번 “쿠바영화특별전”은 한국영화사에 남을 “빅 이벤트”로 평가를 받고 있다. 쿠바는 1959년 혁명 이후 탄생한 쿠바영화 예술산업진흥원을 통해 일년에 150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했던 남미 최대의 영화생산국. 그럼에도 정치적으로,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너무도 생소했던 탓에 국내에 소개되는 시도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게 현실. 하지만 쿠바를 이해하기도 전에, 영화에 비친 낯선 쿠바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필름으로 볼 수 없었던, 그래서 책으로만 접하던 역사적인 감독들의 작품들을 이번 특별전에서 만날 수 있다. 처음 시도되는 것이지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전북일보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 가이드 기획취재 안태성 기자, 2004년 4월 23일).
“영화사는 쿠바를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로 국가적인 규모의 새로운 영화문화를 보여준 나라라고 쓰고 있다. 쿠바의 영화는 1959년 완수된 혁명과 함께 실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적지 않는 기여를 한 것이 같은 해 혁명정부에 의해 설립된 쿠바영화 예술산업진흥원원이었다. 이 기구는 쿠바의 영화제작을 늘였을 뿐 아니라 도그마를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예술적 성공을 가져오는데도 도움을 준 것이다”(홍성남 영화평론가,씨네21 기획1 선택!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영화제가 심혈을 기울인 쿠바영화 특별전은 역사적 진전을 가로막는 모든 구습을 타파하기 위해 카메라를 무기로 삼았던 이들을 기리는 의미가 있다. <딸기와 초콜렛)에사 알레아 감독은 하바나의 비경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우리는 지금 가장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쿠바영화 속에 담긴 아름다운 세상은 이상과 현실에 대해 고민하는 예술가들의 창작의 질료였다. 지나친 형식주의와 경직된 교조주의로 흐르지 않는 쿠바 영화는 형명과 예술의 이상적인 만남을 보여준다.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이 흔치 않는 기회는 진정한 대안영화의 꼴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2004년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일간지 FILM2.0, 장병원 기자).
끝으로, 전주국제영화제는 쿠바영화 특별전을 계기로 쿠바영화의 전문가들과 필자의 글이 담긴 “쿠바영화특별전”(Discovery Cuban Cinema)를 출간했다. 쿠바영화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전주영화제에 문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