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 |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관리자(2012-11-05 15:29:31)
글쓰기가 두려운 논술 공화국의 그늘
기명숙 논술연구회 ‘문원각’ 대표
요즘 고등학교 수험생들에게 가을은 마냥 울고 싶은 계절이다.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을 바라볼 새도 없고 싸이의 공연에 마음을 빼앗길 여유도 없다. 수능은 한 달 뒤에 있고 논술시험은 줄줄이 코앞에 있다. 자기소개서도 손질해야 하고 마지막 남은 내신 성적도 관리해야 한다. 학업스트레스로 인해 ‘10대’라는 생동감 넘치는 명칭은 이제 딱딱해진 그네들 어깨 근육만큼 굳어진지 오래되었다. 그 중 학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주범이 바로‘논술’이다. 필자는 대학에서 ‘논술문지도법’ 등을 가르친다. 중·고등학생들에게도 15년째 논술을 가르치고 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쯤 되면 ‘논술의 신’ 아니면 ‘논술 족집게’ 정도는 돼 있어야 맞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는 ‘논술 족집게’가 아니며 ‘논술의 신’은 더더욱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일선에서 학생들에게 논술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은 현재 대학입시에서 요구하는 논술에 대해 똑 소리 나는 답변을 하지 못한다.
“무엇이 논술교육의 유효한 방법인가?”라는 점은 논술고사가 시행된 이래 줄곧 고민해 온 화두다. 출제기관인 대학 교수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공청회도 참여해 보지만 ‘방법’이란 대개 원론 수준에 머문 것이어서 번쩍, 눈에 띄는 해법이 없다. 학생은 학생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쩔쩔 맨다. 학부모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공황상태다. 공황은 시장을 만든다. 논술지도서가 서점 맨 앞 가판대를 채우고 결과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논술학원도 성업 중이다. 최근에는 유수의 신문사들까지 체면 불고하고 논술시장에 뛰어든다. 초등학교 때부터 논술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바야흐로 21세기 한국은 ‘논술공화국’이 되었다.
‘논술’을 생업으로 삼는 필자에게 어쩌면 최대 황금어장인 셈이다. 그러나 필자는 작금의 사태가 기쁘기는커녕 걱정만 앞선다. ‘글쓰기’라면 곧 논술쓰기이고 논술문이 글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천만해 보인다. 논술은 글의 특수한 형식이고 갈래이지 글쓰기의 전부가 아니다. 대학이 논술을 요구하는 것은 대학교육에 필요한 독해력, 창의력, 비판적 사고력을 논술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측정하고자 함이다. 즉 비판적 사고력이 대학논술의 핵심이다. 그러나 비판적 사고력은 기계적인 논술훈련만으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다독에 의한 감수성, 논리와 지식을 뛰어 넘는 상상력, 세계를 보는 균형감각, 윤리적 감성을 키워야 가능하다.이런 능력이 골고루 배합되고 균형적으로 발달할 때 좋은 논술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다양한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다양한 글쓰기’ 훈련이다. 글쓰기 교육을 논술문 훈련으로 시작해서는 안된다. 시와 소설 같은 문학적인 장르도 써 보고 존경하는 이에게 편지도 써 보고 보도문, 기사문, 수필, 상품광고, 보고서 등 종류도 많다. 즉 글의 목적, 대상, 주제, 스타일, 방법에 따라 무수히 많은 종류의 글을 써보게 하는 것이 논술의 첩경인 셈이다.학생들이 많은 책을 읽고 기존 세계에 대한 의문을 품고 “왜?” 하고 질문을 던질 때,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애정을 가지고 바라볼 때 글쓰기 능력은 저절로 키워진다. 즐겁고 흥미롭게 자기를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이 논술 때문에 주눅 들고 공포에 떨 필요가 없다. 논술문은 고도의 이성적 글쓰기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는 글을 쓴다는 것의 즐거움을 누리리가 쉽지 않다. 즐겁지 않으면 효과도 없다. 이것은 비단 글쓰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즐거웠던 경험은 어떤 일이든지 효과적이고 역동적이게 해낼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논술 훈련의 ‘왕도’가 있다면 처음부터 딱딱한 논술 기출문을 풀리는 것 보다는 자유롭게 자신이 써낼 수 있는 화두를 선택해서 써보고 그안에서 표현 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좋은 논술문을 쓰지 못 하고 있는 것을 학교 탓, 학생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고 항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물론 현행 대학입시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논술시험의 문제점은 앞에서 언급한 것 이상으로 많다. 가령 대학원서 수준의 이해 불가한 제시문, 대학 측의 공정한 심사에 대한 오류 가능성, 논술문의 완성도 보다 결국은 수능점수를 서열화 하는 높은 ‘수능최저등급’, 대학 측이내리는 논술답안의 자의적 해석 등은 논술 교육 현장을 비판하는 것 이상으로 선결해야 하는 과제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대학 측이 꼼수를 부리지 않고 논제를 쉽게 내거나 제시문 또한 쉬워졌다고 해서 논술문을 완벽하게 쓸 수 있는 학생들이 몇 이나 될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논술은 일종의 소통의 도구다. 논술에 대한 갑론을박과 소모적인 논쟁을 떠나,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근간을 기표로 나타내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생물학적 못지않게 정신적으로도 무한 팽창하는 청소년들에게 ‘논술교육’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 보다는 삶에 있어 풍향계 역할을 할 것이다. 올해에도 필자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 ‘논술전형’으로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꽤 될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 학생은 더 많이 나올 것이다. 매년 그러했듯이 필자는 합격한 학생보다 실패한 학생에게 더 마음이 갈 것이고, 그리고 되뇔 것이다.
“똑같은 열정 똑같은 시간을 할애했는데, 평소엔 합격한 A보다 불합격한 B가 더 잘 썼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