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 |
[문화시평] 제20회 전북판화가협회전
관리자(2012-11-05 15:29:22)
20년의 열정으로 내일과 소통하라
정미경 판화가
이번 전시는 20년의 ‘전북 판화가 협회’의 작품 활동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모색을 하기 위해서 그동안의 작품들과 더불어 새로운 작업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협회는 1993년 창립하여 매년 독창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정기전을 하면서도 젊은 세대들의 진지한 관심을 유도하기위해 기금을 마련하여 자체 ‘판화공모전’(3회)을 해왔고, 좀 더 대중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판화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생활 속의 소품 전’도 해왔었다. 돌아보면 그 열악한 환경과 판화에 대한 그릇된 편견 속에서도 20년 동안 꿋꿋하게 판화작업을 해왔던 것이다. 회원들은 열심히 작업 했던 시기의 작품들을 보며 그 열정의 기억들을 더듬고 뿌듯해 하면서도 여전히 판화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오늘의 판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더 성숙해지고 완숙해질 이 기간에 미술의 한 장르가 마치 한시대의 유행처럼 빨리 식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또 작업의 성숙을 위해 열정적으로 까다로운 공정과 테크닉을 익혀 왔던 그 세월들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변화 속에 순수 미술이 위축되어 그림인구가 감소되었기 때문에, 발달한 현대의 여러 가지 복제기술 때문에, 아무리 판화만의 독특한 조형세계가 있다 할지라도 그 복잡하고 많은 노동이 요구되는 제작과정이 젊은 작가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서지 않기 때문에 등 여러 이유들을 찾지만 여전히 서운하고 안타깝다.
판화가 다른 장르와 구별되는 가장 큰 장점은 좀 더 대중과 가까워 질수 있는 여러 장을 찍어낼 수 있는 복수성이며 제작하는 판 종류와 표현 방법에 따라 독특한 조형세계가 있어서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미술 작품보다 대중적 친화력을 가질 수 있는 판화의 이 복수성이 작업을 하는 판화작가들에게 딜레마를 안겨준다. 그동안 미술계에서 유통 되었던 판화를 제작하는 방식은 판화공방에 맡겨 제작 하는 것과 판화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판을 만들고 찍어내는 것이다. 유명세가 있는 화가들은 복잡한 노동이나 수고를 거치지 않고 공방에 주문해서 가볍게(?) 판화를 만들어 낸다. 그야말로 유명작가의 작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음으로 실제 작품과 거리가 먼 사람들의 예술적 욕구를 채워 주는 복제예술 복제그림의 판화인 것이다. 일반 대중들은 오랜 시간 판화고유의 조형적 표현효과와 깊이를 가지고 직접 판을 제작하고 찍어냈던 판화가들의 작품보다 유명작가의 복제그림을 더 선호했고 여러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판화로 만들어 유통시켰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작품을 좀 더 쉽게 구입하고 감상할 기회를 가져다주었지만 판화가 단순히 복제그림이라는 일반인의 판화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갖는데도 기여 했고 점차적으로 판화의 수요가 감소되었다. 이에 자신의 작품세계를 판화로 표현하고 판화제작을 스스로 하는 판화가들은 여러 장을 찍어내기 위한 제작과정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판화에 대한 편견으로 수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유명화가들의 복제그림의 유통 또한 판화 작가들의 의욕을 떨어뜨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수요가 없는데 여러 장를 찍기 위한 복잡하고 많은 수고와 노동이 요구되는 판제작과정이 의미 없어지는 것이다. 즉 여러 장을 만들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또 공방에 의뢰하여 제작한 화가의 복제그림으로서 판화와 판화작가들의 다양한 조형실험과 오랫동안 기술연마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낸 판화는 당연히 구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을 찍는다는 의미의 판화로 똑같이 인식되어진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판화작가들의 복수성을 위한 판제작과정은 불필요하고 귀찮은 노동일 수도 있다. 자신이 표현하고자하는 한 장의 작품이 더 효율적이고 많은 시간 절약하여 다른 작품에 더 매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여 좋은 작업을 했던 많은 판화가들이 하나 둘씩 다른 장르로 옮겨 가기도 했고 일부 젊은 판화가들은 표현영역과 방식을 확장 시키면서 더 이상 판화라는 장르에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판을 매개로 하는 매체의 특수성 과 복수성을 내세워 캐스팅 같은 조각은 물론이고 디지털 프린트로 대표되는 사진, 심지어 동영상의 범위까지 적극적으로 판화의 범주 안으로 끌어 들이면서 판화의 장르를 넘어 다른 영역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시도하며 현대의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담아내기 위한 가능성을 모색 하고 있다. 분명 판화의 현실은 좋지 않고, 전북판화가협회 회원들의 의욕도 많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젊은 층의 회원이 새로 생기지 않은지도 몇 년 되었다. 그러나 회원들이 20년 동안의 성과를 보면서 느꼈던 그 열정의 마음으로 새롭게 대중과 교감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고 그 길을 찾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전시회를 하고자 했던 이유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