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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 |
[아름다운 당신]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 펴낸 작가 이광재
관리자(2012-11-05 15:28:36)
새 세상을 꿈꾸는 한 우리는 언제나 ‘봉준’이다 이세영 편집팀장 파란 가을하늘이 드높은 오후였다. 100여 년 전 이 땅의 농민들도 같은 하늘을 보았을 텐데. 9월 봉기에 나선 농민들은 시린 하늘에 높은 염원을 담지는 않았을까.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의 글쓴이 이광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든 생각이었다. 『봉준이, 온다』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책이다. 그 첫째는 평전이라 보기에는 부드러운 문장과 소설가의 감성이 군데군데 묻어있다는 것. “평전이라고 하더라도 아름다운 평전, 딱딱한 평전이 아니라 문학적 문장으로 채워가는 평전이 있어야 되겠다”는 그의 의도가 신선한 평전을 만들어 냈다. 역시 소설가라는 말이 나온다. 94년 『폭풍이 지나간 자리』를 끝으로 절필한 사람의 놀림은 아니었다. 전환기의 세상, 혼란으로 몸부림치다 “절필은 아니고요, 글을 안 쓰거나 못쓴 이유가 있습니다. 80년대적인 문제의식을 안고 살았던 저에게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의 급격한 변화는 굉장히 어렵고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세계가 바뀐 것이죠. 그 혼란한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전두환 군사정권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해 투옥의 경험을 했던 그에게 ‘세계의 전환기’는 충격적인 경험으로 다가왔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수용으로 말미암은 운동성의 단절은 그의 절필 아닌 절필의 계기가 되었다. 상황은 점입가경, 가족을 이룬 그에게 생계를 꾸려야할 의무마저 생겼다. “가족과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그럴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학생운동을 하다 취직을 할 나이를 놓쳤죠. 온통 가족의 생계문제 해결에 온통 정신을 쏟을 수밖에 없었어요.” 생계를 위해 구멍가게도 열어보고, 우유대리점, 학원강사 등을 전전했다. 밥벌이 생활은 그에게 형벌이었다. 글을 쓰지 않는 그는 존재의의를 상실하고 그저 떠도는 삶을 사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의미가 분명 이게 아닐 텐데, 항상 시선은 뒤로 가있고, 다른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밥벌이를 하기는 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하지는 않았어요.”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세상일에 틈틈이 관여하기도 했다. 글을 써야 된다는, 쓰고 싶다는, 써야만 행복할 텐데 하는 생각으로 10여년의 세월은 흘러갔다. 불안감도 있었다. 그 세계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두려움은 인생전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럴 때마다 부러워하며, 시샘하며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었다. 그러다 그 당시 썼던 장편소설을 꺼내보며 다시 그 때 상황을 생각하게 됐다. “시대가 흘렀으니 손을 한 번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광재가, 온다. 상상력으로 메워지는 사실 사이의 간극 그의 복귀작은 예상 밖에도 소설이 아닌 평전이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써낸 동학농민혁명 이야기를 쓸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렇지만 전봉준과 그의 만남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일이었다. “학력고사를 실패하고 할 일이 없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막연히, 글 쓰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때 전봉준과 관련된 연구서를 한 권 사서 읽었는데 글 쓰는 사람이 된다면 이 사람을 거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그리고 2005년 겨울, 불현듯 최현식 선생을 만나며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밥벌이를 놓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을 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는 확연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을 했어요. 한번 써보자, 될지 않될지 모르지만 글을 쓴 놈인지, 글을 쓰는 놈인지, 글을 쓸 놈인지 확인해보자, 작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소설은, 전봉준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고, 다시 평전으로 거듭나게 됐다. 전봉준을 만나는 길은 철학적 사고와 논리적 추론의 단계로 이어졌다. 이것이 그의 책을 주목하는 두 번째 이유다. 사료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전봉준은 삼례기포 이후였기 때문에 그 전의 삶을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기존의 연구처럼 실증적인 문서가 뒷받침되지 않아 자료로 채택하지 않으면 전봉준의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살펴볼 방법이 생기질 않았다. “중년 이전의 내용을 기록에만 의존하면 앞부분이 매우 생략되고 그렇다고 상상력만으로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자료와 자료, 구술과 자료, 구술과 구술 사이의 간극들을 어떻게 매울 것인가를 고민하다 ‘논리적 추론’을 중간 중간 집어넣었죠.” 논리적 추론은 때로는 대화로, 때로는 구술을 꿰맞추는 식의 상상력으로 풀어졌다. 논리적으로 꿰어지지 않는 것은 이튿날 촌로에게 다시 구술을 받았다. 소설과 사실 사이의 오묘한 줄다리기는 꽤 성공을 거둘 수 있어, 현장감을 살리거나 뜬금없는 사건들의 연관성을 밝혀낼 수 있었다. 전봉준이 김학진과 관민상화를 하자고 하는 대목도 그렇다. - ...김학진과 회담을 끝낸 전봉준은 7월 8일 전주성을 나와 봉상면 구미리로 향했다. 대체 그는 왜 뜬금없이 구미리를 찾은 것일까. 그가 김학진과 중요한 협상을 성사시킨 후 제일 먼저 구미리를 찾은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터인데도 어쩐지 지금까지 이렇다할 의견은 제시된 게 없다. 단언하건대, 그는 송희옥을 만나기 위해 구미리로 간 게 확실하다.... 그의 책에는 이런 식의 추론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결과를 도출할 수밖에 없는 근거들을 나열해 주장을 뒷받침한다. “역사학자들은 실증적인 사관을 중시하기 때문에 근거자료 사이를 꿰맞추는 일은 빈곤한 편이죠.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상당한 근거와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사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싶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읽는 사람들이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자들이 일들의 근거, 간극을 매울 수 있는 사료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고마운 일이고요.” 100년 전과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 세상 그의 책 『봉준이, 온다』에 주목하는 마지막 이유는 100여 년 전의 사건을 오늘로 이어붙이고 당시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줬다는 데 있다. 머릿속에 정돈되지 않은 채로 헝클어져 있는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전봉준을 통해 하나로 꿰어냈다. 청과 일, 조선의 역학관계와 조선의 내부 상황을 정리한 글을 한 장으로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의 국제정세, 국내환경이 제시되지 않으면 동학농민혁명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저도 글들을 읽으며 도대체 삼정문란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어요. 내용적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 얼마나 심각했기에 농민혁명이 일어났던 것인지 설득을 못했던 것이죠. 전봉준에서 조금은 빗겨나 있는 이야기를 끼워 넣는 것이 농민혁명의 전체를 바라보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죠.” 그런가하면 과거의 사실을 현재의 역사적 사실과 접목시키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책에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미 FTA를 조일수호조규와 비교한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 자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참으로 크고 무거우니, 어찌 두렵지 않은가”라던가 “일반 백성의 무지몽매보다 자식인의 왜곡된 현실 인식이나 빈약한 역사의식이 더 큰 죄악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고 현실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 당시의 일반백성들을 억압하는 것은 그 당시의 제도-신분제 삼강오륜 유교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이었습니다. 지금은 더 교묘해진 국가제도, 자본에 의한 신분제가 억압하고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매우 평등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다지 평등하지도 않고 말이죠. 모양은 굉장히 변했지만 인간 삶의 본질이 변하지 않은, 그래서 여전히 유토피아를 향해가려는 큰 열망들이 남아 있다고 봅니다.” 당시에 나섰던 사람들이 느꼈던 절박함은 아닐지라도 현재의 삶은 팍팍하다. 우리가 꿈꾸고, 전봉준이 꿈꿨던 세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가 이야기하는 전봉준의 유토피아가 더욱 절실하다. “전봉준이 만들려고 했던 세계를 찾으려 하지 말고 그들이 어떤 세계를 부수려고 했는지 찾는 게 맞습니다. 자신의 지식세계에서 유토피아를 꿈꾼 전봉준의 지향이 근대국가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평등, 자주적 독립국가, 협의기구를 통한 연합정권을 만들려 했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찾는 세상과 아주 흡사하지 않습니까?” 동학의 철학 사상은 여전히 유효 게임의 룰은 다르지만, 지금도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과 뺏기지 않으려는 사람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 싸움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준비론적 시각이 현재에도 유효할까, 그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그는 “20세기의 전봉준이 되어 허리에 두른 족쇄를 걷어낸 한반도의 다음 세기를 열어젖히는 일은 우리 모두의 당연한 의무라고, 항구적 평화와 행복이 유보되어 있는 한 언제나 우리가 전봉준”이라고 책의 끝을 맺었다. “현 정권과 유사한 정권이 다시 들어선다면 자본에 의한 우리 사회의 독점이 완성돼 버릴 것 같은, 더 이상 다음번에 고치기 어려운 수준까지 후퇴해릴 것 같은 절박함을 느낍니다. 역진하고 있는 기차를 전진시키지는 못할지라도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들이 진행될 때만 우리 민족의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정치에 직접적으로 나서기도 하고 투표하는 것도 우리가 전봉준이 되어 참여의 몫을 다하는 것은 아닐까. 그 당시에도 직접 나가서 싸우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 남아서 밥을 해주는 사람, 남은 가족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동학의 사상은 그래서 현 시대를 사는 사람에게도 유효하다. 서학이 박해 속에서도 뿌리내릴 수 있었던 평등사상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 동학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인간만이 아니라 풀 한 포기도 평등한 존재라는 동학의 사상은 환경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사유의 확장을 이뤄냈던 것이다. “수운선생이 이야기했던 불연기연의 논리들은 철학적 관점에서도 놀랄만한 깊이가 있는 것이죠. 온전하게 철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은 주술적인 부분이 혼재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동학의 철학적 논리를 면밀하게 연구하고 발전시켜서 현재적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대사의 거대한 벽화를 그리고 싶다 동학동민혁명은 근대로 들어오는 열쇠구멍인 동시에 그가 앞으로 써나갈 책들의 시작이기도 하다. 3년여의 자료 조사와 구술을 받아 완성한 책이지만 앞으로 글 ‘쓸 놈’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한 작업이기도 했다. “어느 날을 쓰고 나면 누가 와서 써주고 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어요. 열망이 얼마나 간절한지, 글 앞에서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글과 싸우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써 내려갔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시작으로 그는 거대한 벽화를 그려갈 생각이다. 동학농민혁명을 시작으로 현대사를 이어주는 이야기들을 한 줄로 꿰어보겠다는 계획. 동학농민혁명을 시작으로 한 현대사의 굴곡을 보여주는 굵직한 사건들로 이야기들을 쓰려고 한다. 잠들어 있던 전봉준을 깨워 소설과 영화로 제작해 3부작을 완성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농민운동의 관점이 아닌 정치인 전봉준의 모습, 전봉준과 농민세력-대원군-개화파-고종과 민씨 세력의 권력 다툼도 흥미진진한 내용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의 출간 시기가 참으로 오묘하다. 대선을 앞둔 시간, 역사의 흐름을 바뀌는 이 시기에 전봉준을 통해 과거의 역사가 아닌 내일의 농민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큰 고민거리를 던져준 셈이다. 그는 책에 “무엇을 이룩했는지 성급히 물을 게 아니라 무엇을 부정했는지 살핌으로써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썼다. 오늘, 무엇을 부정하고 무엇을 선택할지 이 책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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