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 |
기억의 공간 일상으로 돌아오다
관리자(2012-11-05 15:27:57)
기억의 공간 일상으로 돌아오다
임주아 기자
오늘도 수많은 건물을 부수고 짓는다. 낡고 오래된 것은 쓰러뜨리고 싱싱하고 튼튼한 것은 일으켜 모신다. 사람들은 건물에 갇혀 밤과 낮을 잊었다. 더 바빠지고 외로워졌다. 시간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는 알면서 모른다. 도시가 점점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고독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리는 기억한다. 공간이 답이라는 것을. 잃어버린 것은 과거가 아니라 과거의 공간이라는 것
군산 여인숙, 여인숙에서 창작공간으로
군산 월명동 동국사길에는 특별한 여인숙이 있다. ‘사람이 머물다 가는’ 여인숙(旅人宿)이 아닌 ‘여러 이웃이 모여 뜻을 이루다’는 뜻을 가진 여인숙(與隣熟). 바로 ‘문화공동체 감’(대표 이상훈)의 레지던시 공간이다. 30여개 쪽방이었던 ‘삼봉여인숙’을 창작공간으로 바꾼 이곳은 전시공간(1층), 레지던스 작가(2층)들의 생활공간이 있다. 올해 8월부터 11월까지 김홍빈, 양미연, 이송선 작가가 들어와 작업실을 쓰고 있다. 외벽은 그대로 보존하고 내부만 리모델링한 이곳은 입간판과 빨간 우체통이 먼저 시선을 끈다. 군산 옛 도심의 적산가옥과 일본인 은행, 창고 등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동국사길에는 작가들이 그려 넣은 벽화와 타일아트가 줄지어 있다. 군산을 대표하는 떠오르는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곳은 주말이면 수 백 명의 시민들이 다녀간다. 여인숙 바로 옆 건물에는 카페이자 쉼터인 ‘36°+5’가 있다. 마을 어르신과 젊은이들, 작가와 공무원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커뮤니티센터다. 이상훈대표는 “간장공장에서 여인숙으로, 여인숙에서 창작공간으로 바뀐 이 레지던시 공간은 재생의 발자취다. 이 문화예술공간이 지역주민과 교류하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흥역, 역사에서 예술공간으로
전남 장흥역은 교외선 구간에 있는 간이역으로 70~80년대 인기있는 MT장소였다. 하지만 1965년 개통 이후 적자가 계속돼 2004년 4월 문을 닫고 만다. 지난해 6월, 생활 속에 뛰어들어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새로운 예술, ‘커뮤니티 아트’가 장흥역에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 장흥오라이, 거리미술관, 시간여행.com 등 삼색으로 구성된 팀은 장흥역 주변 3동의 건물을 건물주로부터 무상 임대받아 쓰레기를 걷어내고 이곳에 역전다방, 장수사진관, 도깨비꽁방 등 새로운 명소를 만들었다. 덕분에 거리가 깨끗해지기도 했지만 작업에 참여했던 주민들도 만족도가 대단하다고 한다. 장흥역 주변, 버려진 집에 찾아온 사람은 화가를 포함해 사진작가, 영화감독, 설치미술 등 모두 12명. 폐가 3채를 고치고, 주민들의 장수사진을 찍어주면서 작업을 진행해 왔다. 지난 6월, 열달간의 작업이 끝났다. 폐가 3채는 다방과 장수사진관, 목수의 공방으로 말끔하게 단장했다. 잡초 가득한 철길, 텅 빈 채 녹슬어가는 역사, 버려진 장흥역이 새로운 문화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하드웨어를 구성하는 단계였다면 하반기에는 주민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등 소프트웨어 작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장흥오라이’팀에서 프로젝트 참여를 하고 있는 김새벽 작가는 “몰락한 장흥역이 다시 살아나 기쁘다”며 “주민들과 작가들이 힘을 합쳐 또 다른 역사를 걸어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목욕탕에서 커뮤니티공간으로
한국의 마추픽추·산토리니·레고마을로 불리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에 새로운 커뮤니티센터가 생겼다. 작년 5월, 시설 노후화로 잘 사용되지 않는 목욕탕 건물을 매입하여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한 것. 333㎡ 부지에 연면적 562㎡(지하1층, 지상4층) 규모로 지어진 이 목욕탕은 대형 욕탕, 사우나실, 수도꼭지, 사물함 등 기존의 공중목욕탕 시설물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다. 총 5층인 센터는 1층엔 작가 공방이, 2층엔 아트숍과 카페, 갤러리가, 3층엔 문화강좌실이, 4층엔 방문객 쉼터, 5층은 전망대로 구성했다. 이곳에는 예술작가 1명과 주민 2명이 상주하여 관광객들에게 도자기, 천연염색, 목공예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갤러리 작품전시, 커피 및 예술품 판매도 하고 있다. 또한, 인문학강좌, 영화상영, 감천주민사랑방, 작가모임 방으로 ‘감내어울터’를 개방해 주민들의 문화·예술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4층의 방문객 쉼터는 방과 거실, 취사시설, 샤워실, 원두막을 갖추고 있어 감천문화마을 관광코스인 골목길 투어와 연계하여 관광 상품으로도 운영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 김문생 부위원장은 “목욕탕을 리모델링한 센터는 ‘소통’과 ‘재생’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감천문화마을 자체도 있는 그대로 보존한 마을인데 주민자치센터로 쓸 목욕탕도 그래야하지 않겠나’라고 생각한 주민들과 작가들의 현명한 판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