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 |
창간25년, 문화저널의 추억 2
관리자(2012-11-05 15:27:18)
마음 밭에 ‘문화씨’ 뿌리는 문화저널
박선희 전주기전중학교 교사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노래가 귓가에 맴도는 계절입니다. 노오란 편지지에 예쁘게 쓴 손 편지를 들고 나는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빨간 우체통 앞에 잠시 서 있고 싶습니다. 오늘도 나의 하루는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갑니다. 흐르는 강물 속에 다양한 풍경이 머무르듯, 내 인생의 강물 속에도 인연의 풍경들이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그 풍경들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문화저널과의 인연들이 녹녹치 않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떨림, 기다림, 답사(기행), 만남, 미소, 감사……. 아무래도 문화저널과 관련된 내 삶의 키워드는 너무도 많아 일일이 나열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합니다.
처음 내게 문화저널 구독을 권해 주셨던 옛 직장 선배 선생님은 지금 전라북도 도립미술관 관장님이십니다. 영문학을 하셨지만 사라져가는 ‘장날’ 사진을 찍고, 미술사를 공부하시더니 지금도 예향 전북의 문화 발전을 위해 단단히 한 몫을 하고 계시는 고마우신 분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문화저널과의 만남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소원해졌던 내 마음 밭에 문화의 씨를 뿌리고 틈틈이 가꾸게 하였습니다. 어느 해던가, 서울 고궁 문화유적 답사 길에 나는 노란 은행잎의 물결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종묘제례악과 묘하게 어우러진 가을 단풍의 멋스러움이 오감으로 다가옴에 전율하면서, 나는 우리 것의 소중함을 보석처럼 간직하였습니다. 그날 내가 바라본 서울의 가을 하늘은 유난히 높고 푸르렀습니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 초입에서 문화저널 우리 답사팀을 열렬히 환영하던 별들의 이야기는 또 어떠한가요. 미황사 밤하늘의 별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온 촌스러운(?) 나를 경탄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마치 3D영화를 보듯, 손을 내밀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던 별들을 가슴에 가득 안으며 나는 봄의 따사로운 햇살을 아니 소생하는 새봄의 생명을 느꼈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마주한 소박하여서 오히려 향기로운 미황사 부도밭이며, 아름다운 달마산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미황사 주춧돌에 새겨진 그림들–꽃게 물고기 거북이-은 세월을 뛰어넘어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하였습니다.
이쯤 해서 경주 남산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주 남산 답사 이야기를 하자니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헉헉대며 남산 허리를 힘들게 휘돌아 설 때마다 자애로움 가득한 얼굴로 불끈힘을 주던 수많은 불상을 만났습니다. 벼랑 끝 위험한 곳에서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었던 그곳, 그곳 남산 답사를 언제 또 갈 수 있을까요. 불현듯 그곳에 가고 싶습니다. 남산 답사 후 지친 우리들에게 경주의 명물 황남빵을 환한 웃음과 함께 또 주실까요. 언젠가 제게 있어 문화저널의 백제기행은 소중한 사진첩과 같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사진첩 속에 간직된 사진 속의 그리운 얼굴이, 사랑이, 추억이, 어린 시절 먹던 달콤한 줄줄이 사탕처럼 오늘 나를 즐겁게 합니다.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100회 백제기행을 떠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130회를 훌쩍 넘었습니다. 100회 기행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 사찰기행이었습니다. 그날 그 기행 길에는 박남준 시인, 이원규 시인, 박두규 시인, 그리고 이종민 교수, 조법종 교수까지 함께 하셔서 칠월의 그날 기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모두들 칠월의 여름산보다 더 큰 푸르름으로 충만했었습니다.
기행 때마다 함께 할 수 있어 커다란 축복이었던 조법종 교수님과의 만남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 한다’라는 큰 깨달음을 제게 주었습니다.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올 여름 방학 때 나는 일주일 교사연수에 참여했습니다. 사실은 조법종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싶은 내 나름의 꼼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선생님께 받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삶의 문화적 지혜들을 어찌 갚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의 그 깊고도 맑은 열정의 샘은 도대체 발원지가 어디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선생님과 함께 찾은 일본에서 앙드레 말로가 감탄했다는 법륭사 백제관음의 미소를, 감로수병을 든 손끝으로 느끼게 해 주셨던 어느 해 여름날도 또렷이 기억이 납니다. 실크로드 길에 보았던 돈황 명사산의 교교한 달빛이며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거닐며 옛 거상(巨商)들의 흉내를 내보았던 사막에서의 색다른 감흥도 오래오래 잊을 수가 없습니다.
중국 운남성 기행 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보았던 장예모 감독의 뮤지컬 인상여강(印象麗江)의 절절함이나, 곡부에서 공자님을 만나고 중국 태산까지 오르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새삼 배웠던 일 등. 돌아보면 25년 문화저널의 걸음걸음 속에는 내 아이들의 유년시절이, 내 젊은 날이, 누군가의 일상 속 특별한 소중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잠시 그림엽서같이 아름답던 이태리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베키오 다리를 떠올리며,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어봅니다. 베로나의 아레나 원형극장에서 보았던 오페라의 낭만적인 밤 추억들도 피워보고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듯합니다. 오십 고개를 넘어가며 일상에 넉넉한 친구가 되어주고, 삶의 무게로 바둥거릴 때 바람처럼 다가와 희망의 빛을 갖게 하며,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눈 뜨게 한, 내 삶의 활력의 바다에서, 문화저널 가족들을 결코 빼놓을 수 없음을 감히 고백합니다. 오늘도 문화의 수장(首長)으로 묵묵히 걸어가며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기꺼이 공감과 소통의 푸짐한 마당이 되어 주는 문화저널이여, 부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뜨거운 응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