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 |
창간25년, 문화저널의 추억 1
관리자(2012-11-05 15:26:48)
오래오래 크고 넓은 그늘을 드리우라
윤덕향 호남문화재연구원 원장
고창 고인돌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전 당시 문화저널 발행인이었던 진호 선생 일행을 만나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다. 통성명을 하고 난 자리에서 고창 고인돌 유적이 중요한데 문화재로 지정되지도 않았고 보존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떠들어댄 것은 젊은 날의 객기였을 것이다. 중언부언 떠들다가 헤어지는 마당에 진호 선생이 얇고 볼품없는 책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문화저널과의 인연은 그렇게 하여 맺어졌고 얇고 볼품없다고 느꼈던 책자의 뒤에 든든하게 자리하는 문화저널의 식구들과 그 주변의 후원자들을 만난 것은 돌아볼 때마다 깔끔한 뒷맛이 남는 추억거리이다.
버릇처럼 언제였는지 분명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백제기행으로 충북 중원 미륵리사지와 그 주변지역을 1박 2일로 돌아보는 여정이었을 때였다. 지금이야 기행 참가자들이 차고 넘치겠지만 그때는 전세버스, 보다 정확하게는 인심좋은 대학교 버스를 정말 실비로 빌리는 경비조차 걱정할 지경이었다. 특히 두번중 한번은 1박 2일로 여행을 하였는데 일요일에는 여행도 쉬어야하는 것이었는지 만원 버스를 만드는 일은 장난이 아니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백제기행에 단골로 참가하는 분을 가급적 많이 확보하여야 한다고 기행을 기획할 때마다 말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그때그때 알음알음으로 좌석을 채우곤 하였다. 그런 시절 알아서 기행에 참가하시는 단골들이 몇분 계셨고 그분들은 모범생답게 혹시라도 늦으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일찌감치 버스에 자리를 잡고 계셨다. 그중 순창에서 오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근무시간이 끝나자마자 회문산 고개를 날아서 내려왔는지 기행 출발시간에 늦는 일이 없었다.
그날 기행도 저녁을 먹고 난 다음 술자리로 이어졌고 기행이야 버스가 가면 되는 것인 듯 퍼마신 술로 다음날 새벽까지 잠깐 여우잠을 잤을 뿐이다. 뒤척이다 깐에는 제법 이른 새벽 산책을 나섰는데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일행들이 태반이었다. 아무튼 1박 2일의 일정이 끝나고 전주시청 앞에서 기행 팀이 헤어질 때 순창에서 오시는 모범생께서 아침 산책길에서 주운 것이라며 껍질을 벗긴 은행을 몇사람에게 한 움큼씩 나누어주었다. 그깟 지천으로 널려있는 은행이 대수일까만 어느 틈에 준비하였는지 비닐 봉투에 담아 건네주는 은행에는 한알 한알 정성이 소복소복 담겨있었다.
변함없이 버스 좌석을 채우는 방안을 찾는 백제기행이 한단계, 아니 여러단계 업그레이드되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국내 기행도 좌석이 차지 않는데 아무리 이웃이라지만 해외인데 참가자가 얼마나 있을까 엄두가 나지 않고, 일정을 정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것이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수월하게 참가자들이 모였고 일본에서의 일정도 나름 알차게 짤 수 있었다. 특히 우연찮게 인연이 있어 일본의 과거 역사를 반성하고 한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큰 일본인 영화감독과 그 일행이 일정을 계획하고 진행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덥고 후텁지근한 날인데도 아프거나 뒤처지는 사람없이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일정을 소화하고 진행에 도움을 주었다. 낮에는 이곳저곳 답사를 다니고 저녁에는 일본과 일본 속의 한국문화에 대한 강의 등으로 짜여져 제법 빡빡한 일정이었다. 그리고 공식적인 일정이 끝난 뒤 일본 뒷골목 술집을 새벽까지 찾은 열성파들도 있었지만 큰 어려움이 없이 성공적이었다고 스스로 평가할 만한 기행이었다.
이런 것말고 일본 기행의 성공은 무엇보다 뛰어난 여행 가이드 겸 통신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데 당시 참가자들 모두 이견이 없었을 것이다. 기행기간 동안 한점 흐트러짐없이 늘 단정하고 말끔한 차림으로 일행 하나하나를 챙기는 가이드, 언어로 인한 불편을 낄 수 없도록 현지 일본인도 감탄하는 일본어 능력, 그리고 더운 날 강행군에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일행들에게 적절하고 적당한 때 던져지는 위트나 유모어는 천부적인 가이드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더하여 스스로 문화저널 일본 통신원을 자처하며 아침마다 우리나라의 주요한 소식을 유머와 함께 전해주는 부지런함과 유창하고 화려한 언어는 절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로도 문화저널이 아니라면 구하지 못할 가이드 겸 통신원은 한승헌 변호사이셨다.
문화저널의 많은 활동과 사업중 하나인 백제기행에서 뒤집어보며 느끼는 것은 문화저널의 오늘이 그 구성원들의 출중한 능력과 부지런함과 적극적이고 자유스로운 사고의 틀에 바탕하는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작지만 백제기행 또는 문화저널이라는 공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가슴 따뜻한 배려, 또는 유대감을 가진 회원들이 있다. 그에 더하여 문화저널이 올곧고 튼실하게 뻗어가기를 바라는 드러나지 않는 많은 후원자들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런 자산을 지닌 문화저널이 지역의 올곧은 문화매제, 튼실한 문화 단체로 25년 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오래오래 크고 넓은 그늘을 드리우게 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