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 |
[문화칼럼] 글이 글을 만들고, 그 글이 나를 만든다
관리자(2012-11-05 15:25:13)
글이 글을 만들고, 그 글이 나를 만든다
오항녕 전주대학교 교수
1.
소크라테스 : 이집트의 토착신들 가운데 토트가 있었지. 이 신은 맨 처음 수와 계산법과 기하학과 천문학은 물론 장기 놀이와 주사위놀이를 발명했고, 그 외에 문자까지 발명했다고 하네. 당시 이집트를 다스리던 왕은 타무스였지. 테우트 신이 그를 찾아와 기술들을 보여 주면서 다른 이집트인들에게 그 기술들을 보급해야 한다고 말했네. 그런데 대화가 문자에 이르자 테우트 신은 이렇게 말했다네.
“왕이여. 이런 배움을 통해 이집트 사람들은 더욱 지혜롭게 되고 기억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억과 지혜의 묘약으로 발명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타무스 왕이 이렇게 대꾸했지. “기술이 뛰어난 토트 신이여. 지금 그대는 문자의 아버지니까 그것에 좋은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에 문자가 가져올 정반대의 효과를 말했소. 문자는 그것을 배운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에 무관심하게 해서 그들의 영혼 속에 망각을 낳을 것이오. 그들은 적어두면 된다는 믿음 때문에 바깥에서 오는 낯선 흔적들에 의존할 뿐 안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힘을 빌려 상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그대가 발명한 것은 기억의 묘약이 아닙니다.”
이어서 타무스 왕은 말했지. “그들은 적절한 가르침이 없이도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고, 따라서 실제로는 거의 무지하다 할지라도 지식이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지혜 대신 지혜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장차 사회에 짐이 될 뿐입니다.”
2.
점심시간의 일이다. 동료 연구원인 채 선생이 요즘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애도 낳아 키웠는데 그깟 논문이 대수냐고, 격려와 경험담이 오가는 가운데, 내가 말했다.
“우선 써야 돼. 머릿속에 있는 건 글이 아냐. 글이 글을 만들어. 가끔 난 내가 전에 쓴 글을 보고 감탄하곤 해. 아, 정말 이 글을 내가 썼단 말인가, 하고.”
“‘정말’로는 약한데요.” 김 교수가 곁에서 거든다. “‘신이시여!’ 이게 들어가야 합니다. ‘신이시여! 진정 이 글을 내가 썼단 말입니까?’ 이렇게요.”
맞다. 웃음으로 끝났지만, 실은 사실이다. 난 정말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 때론 믿어지지 않는다. 이 글을 내가 썼다는 게. 처음엔 이게 잘난 척일까, 나르시스즘일까, 생각했다. 아무리 반성해도 아니었다. 그러면 뭘까? 최근 답을 알았다.
글은 사유의 표현이다. 사유는 표현하지 않으면 진전하기 어렵다. 일단 표현해놓으면 다음 사유가 진전된다. 어지간한 사유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이게 정상이다. 그러므로 생각만 하고 있을 때보다 훨씬 쓸 것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글이 글을 만든다고 한 것이다.
나중에 보면 정말 내가 쓴 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내용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또 다른 나의 발견. 믿어도 좋다. 그것도 나다. 그렇게 나는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존재이다. 원래. 우리 모두 그러하다. 이렇게 새롭게 발견된 나, 그래서 글이 나를 만드는 것이다.
3.
워즈워드는 말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기억이다.” 그러나 일기를 보면 나에게 언제 이런 일이 있었지 싶을 때가 많다. 이 일기는 저장기억이다. 비활성화되어 있지만 활성화된 기억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풀(pool). 의식되지 않거나 무의식인 이 덩어리가 활성화된 기억의 배경이 된다. 그에 비해 의식된 기억은 종종 의미를 발생시키고, 의미는 기억을 고정한다. 의미는 항상 구성의 문제이자. 나중에 부과된 해석물이다.
일정한 문화적, 집단적 기능기억은 항상 ‘주체’와 연결되고, 그것은 국가나 민족과 같은 집단적 행동 주체들이 기능기억 위에 지은 집이다. 이런 기능기억의 역할은 또한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정통성과 권력의 문제가 개입하기 때문에 정치적이다. 그것이 전통을 만들어내고 강화한다. 대표적으로, ‘우리끼리의 기억’. 그것은 의식적이고 의지적인 기억이고, 이 기억은 과거 역사를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구성물로 조직하도록 강제한다.
이 지점이 저장기억이 기억-비판의 출발이 될 수 있는 전선(戰線)이다. 기존에 고착된 기억과 차별화된 기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은 기능기억의 풀인 저장기억에서 온다. 회상이 아닌 일기장에서 온다. 써라. 잊더라도, 써라. 풀이 넘치도록. 언젠가 그릇된 기억을 교정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