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 |
클래식 뒷담화
관리자(2012-10-08 14:27:58)
‘클레멘타인’의 슬픈 이야기
문윤걸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영상창업대학원 교수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 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홀로 두고 영영 어딜 갔느냐?’클레멘타인, 이 노래를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워낙 멜로디가 단순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슬픈 가사만큼 서러운 멜로디가 우리 감성에 너무 잘 맞아서 자주 흥얼거리다보니 그냥 내 노래가 되어버린 걸까요?클레멘타인. 가사말이 참 애잔합니다. 넓은 바닷가의 오막살이집 한채, 그것만으로도 코끝이 아리네요. 그런데 철모르는 딸은사랑이 넘치는 늙은 아버지를 홀로 두고 영영 떠나버렸다니 그두 마음이 어땠을까요? 애잔하다 못해 처연합니다.이 노래의 원제목은 Oh My Darling, Clementine인데 1884년퍼시 몬트로즈라는 사람이 악보로 만들어 출판해 미국 서부민요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출판하기 전부터이 노래는 구전으로 여러 사람의 입을 타고 불렸습니다.이 노래에는 깊은 사연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 골드러시가 광풍처럼 불어닥친1849년.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금맥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황금에 눈이 어두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이들을 포티 나이너(forty-niner)라고 했습니다. 클레멘타인의 영어 가사에 포티 나이너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은기대와 달리 중노동과 가난으로 비참했답니다.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는 바로 이 포티 나이너 중 한 사람이 자신이 겪은 일을 가사말로 만들고 거기에 스페인 민요를 붙여서 흥얼거리다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이제 그 가사말을 통해서 클레멘타인과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포티 나이너 중 한 사람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6살 어린 딸이있었지요. 아버지는 온종일 작업장에서 시달리면서도 어린 딸을 매우 사랑했던가 봅니다. 아버지는 작업장 근처로 딸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린 딸을 매우 쾌활하고 요정같이 예뻤습니다.하지만 가난 탓에 자기 발보다 큰 신발, 그나마도 청어상자를쪼개어 만든 허술한 샌들을 신고 뛰어 놀았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아침 9시, 소녀는 새끼오리들을 물가로 몰고 나갔고 큰 신발 때문에 나무토막을 잘못 디딘 탓에 그만 계곡물에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놀라 뛰어갔지만 수영을 못하는통에 그저 물에서 허우적 거리는 딸을 애타게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소녀는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물위에 떠오른루비같은 입술, 그녀가 꼬르륵거리며 내뱉는 계곡물과 그 거품마저도 맑고 순수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그렇게 아름다운 딸이 물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아비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결국 아버지는 자신을 헤엄도 못 치는 바보라고 한탄했고, 딸의 죽음을 지켜보기만했던 죄책감에 시달린 채 하루하루를 보내며 점점 쇠약해져 결국 클레멘타인의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클레멘타인과 아버지가묻힌 언덕 위 교회묘지에는 장미꽃이 아름답게 잘 자랐습니다.사람들은 클레멘타인이 꽃을 좋아하나 보다 했다네요.참 슬픈 이야기이지요? 이 노래가 우리나라에는 언제 전해졌을까요? 전해지는 얘기로는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경이라고 합니다. 가사에 담긴 의미도 그러려니와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젖는 멜로디 역시 일제 강점기 망국의 한을 담기에 충분했으리라 짐작되네요. 부르기도 쉽고 애절한 감정을 담은 이 노래는 쉽게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한국 노랫말도 정말 의미를 잘 살려서 번안했다는 생각이 드시지 않나요? 이 노래에 우리 가사말을 붙인 사람은 박태원이라는 인물입니다. 여기에 좀 미스테리한 측면이 있어요, 누구는 대구 출신의 음악가 박태원이라 하고, 누구는 소설가 박태원이라고 합니다. 소설가 박태원은 1930년대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한국전쟁때 월북해서 북한 최고의 역사소설이라고 평가받는‘갑오농민전쟁’이라는 소설을 쓴 인물입니다. 근데 소설가 박태원은 1910년 서울에서 출생한 사람으로 만약 이 노래가 1919년 우리나라에서 불리기 시작했다면 10세에 가사말을 붙였다는 얘기인데 아무리 문학소년이라 해도 그건 좀 아니다 싶습니다. 그래서 음악가 박태원이 작사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아쉽게도 이 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서 이 분이 작사를 했다는 풍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네요. 하지만 누가 작사를 했던 정말 기가 막힌 작사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노래가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한 영화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입니다. 우리 나라 모든 사람이 잘 아는 서부영화‘황야의 결투’의 주제곡이 바로 클레멘타인이었지요. 우리에게는 황야의 결투로 알려진 이 영화의 원 제목이 바로‘Oh My Darling, Clementine’이랍니다. 1946년 20세기폭스사에서 제작한 이 영화는 서부영화의 거장 존 포드 감독, 그리고 헨리 폰다, 빅터 마추어 같은 서부영화의 명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로 서부개척시대에 있었던 유명한‘OK 코랄의 결투’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최후의 총격전 후에 퍼지는 주제곡‘나의 사랑 클레멘타인’의 멜로디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부극의 대표적 명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덩달아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클레멘타인 노래도 다시 유명해졌지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클레멘타인이라는 노래를 슬프게만 부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벤조반주에 맞추어 어 너무 흥겨운 거 아냐 싶을 만큼 경쾌하게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정서에는 좀 잘 안맞는 거 같기도 합니다. 저는 이 노래를 우리 말로 번안한 가사가 참 마음에 듭니다. 슬프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우리 말로 번안한 가사는 총 3절입니다. 우리 모두가 1절은 잘 아는 데 2절과 3절이 있었어? 하시는 분들도 계실 듯 하네요. 그 가사말 한번 보실까요?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채
고기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바람부는 마른날에 아버지를 찾으려
바닷가에 나가더니 해가 져도 안오네
내사랑아 내사랑아 나의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금빛아기 해뜰날에 그 이름 클레멘타인
고기잡이 아버지는 내 생각이 났느냐
내 사랑아 내사랑아 나의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애비 혼자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