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 |
[서평]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동문선, 1998) 피에르 부르디외 ㅣ 현택수 역
관리자(2012-09-07 15:35:16)
물결 사이에 고모가 숨어 있을지도 몰라
임경섭ㅣ시인
나는 둘째 고모를 우연히 마주치는 상상을 했다. 둘째 고모는 나와 성(姓)이 달랐다. 내 아버지와 고모는 서로 아버지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 고모네는 우리 집과 왕래가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야 군산에 친척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즈음 아버지를 따라 군산 둘째 고모네 집에 간 적이 있었다.고모네 집은 허름한 도견장을 하고 있었다. 안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개를 도살하는 곳을 지나야했다. 오래된 철재 냉장고에는 토막 난 생 개고기들이 부위별로 쌓여있었다. 개를 직접 잡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혼자 집앞을 구경하러 나오던 길에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놓은채 입에 거품을 잔뜩 물고 있는 개의 사체를 보았다. 토치에 그을려 개의 살갗은 검게 굳어있었다. 어렸을 때라 충격이 꽤 컸던 모양이다. 걸음을 떼지 못하고 그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되는대로 콘크리트 쳐 놓은 수돗가의 시뻘건핏자국들과 그 위에 죽어있던 개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둘째 고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수년 전 내 누이의 결혼식에서였다. 고모. 문득 생각했다. 그동안 보지 못한 고모를 어디선가 무방비상태로 마주친다면 나는 그녀를 그리웠던 마음으로“고모!”라 부를까? 아니면 지금도 잊히지않는 고모네 집 수돗가가 불현듯 떠올라 겁에 질린 눈동자로“고모?”라 부를까? 정답은 나도 모르겠다. 아직 마주치지 않았으니까.
크리스테바는 하나의 대상이 비참한 것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사물이라면 마땅히 가질 거라고 예상되는 뚜렷한 윤곽과 명확한 형태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p.97)
둘째 고모는 나에게 비참하고 절망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걸까? 고모를 우연히 마주치는 상상은『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를 읽는 가운데 하게 되었다. 나는 사실 라디오헤드 키즈는 아니다. 굳이 라디오헤드에 관한 나의 세대론적 입장을 표명하자면, 라디오헤드 키즈의 가까운 후배 세대 정도.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들어본 게 몇곡 되지 않았다(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격렬한 관심 증대로라디오헤드의 모든 앨범을 구해 듣고 있다). 때문에 책을 읽기전‘라디오헤드를 모르는데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앞섰다.『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를 읽고 난 후의 내 결론은 다음과같다. 이 책은 철학서가 아니다. 대중음악비평서가 아니다. 따분하고 어려운 철학적 용어들로 도배돼 지적허영을 자극하는 그런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라디오헤드의 노래를 모르더라도 수월하게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에세이이다. 책에선 라디오헤드의 음악적 성취도 뿐 아니라, 노래가사, 인터뷰, 앨범재킷,나아가 그들의 행동거지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사유체계를 통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에세이의 방식으로 들여다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애브젝트(abject)는 외부의 사물 혹은 생각보다 신체와 신체의변화과정 그리고 즉각적으로 일어난 감각들과 연관이 있다. 왜냐하면 신체가‘내가 멈춘 곳과 세계가 시작되는 곳’사이에있는 무정형의 영역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듣다 보면 톰 요크가 노랫말에서 심리적 이미지나 시적 비유보다는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대상들을 자주 언급한다는 걸 알 수 있다. (p.100)
책의 일부는 애브젝트 미학이론을 통해 라디오헤드 음악이 갖고 있는 비참함, 기괴함을 해석한다. 독자는 이것을 읽고 라디오헤드가 아닌 또 다른 타인의 애브젝트를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라디오헤드라는 프리즘을 관통한 철학적 성찰은 독자주변의 타인에게서 발견된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그간 철학이 지니고 있던 진중한 벽을 슬그머니 허물어 철학을 우리 주변의것들에게로 가까이 가져다 놓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라디오헤드가 남겨온 흔적들을 통해 고모를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느낀 이 책의 소통방식은 그렇다.
라디오헤드는 어떤 음반사와도 계약을 맺지 않았다. 그리고 앨범은 다운로드를 받아 구매하도록 했다. (…) 라디오헤드는 『In Rainbows』의‘구매자’들이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고 음반을 사야 한다면서 음반업계를 긴장시켰다. (…) 앨범을 구매하는 팬들이 돈을 내지 않게 하면서 라디오헤드는 자본주의의 고리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었다. (p.148)
지금의 문화는 자본주의 경제체계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게 사실이다. 이제 문화는‘산업’이 되어버렸다. 책의 내용대로“문화상품이 상업적인 재화인 이상 문화상품들은 그 자체가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을 말살시킬 수 있다”.오늘날 이와 같은‘문화의 산업화’의 핵심은 방송일 거다. 방송이라는 메커니즘은 정보라는 미명 아래 정치·경제·문화의자본화를 통괄하고 있다. 라디오헤드의 반(反)자본적 행동들을보여주면서 책은 말하고 있다.“방송이 지나가는 자리에 서서발신은 하지 못한 채 수신만 하고, 말은 할 수 없으면서 듣기만하는 대중은 새로운 바벨탑을 쌓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방송과 자본의 역학관계,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중들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부르디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종적으로 텔레비전에 가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구속입니다. 이것은 텔레비전에서 일어나는 것이 텔레비전을 소유한 자, 그리고 광고비를 지불하는 광고주, 지원금을 주는 국가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책은 이러한 방식 외에도 다양한 철학의 방법론으로 라디오헤드, 그리고 이 시대의 대중음악에 접근한다. 16명의 저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라디오헤드에게 철학적 사유들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준비된 사람부터 미련 없이 돌을 던져보자.라디오헤드라는 웅덩이로 말이다. 순간 흙탕물이 소용돌이치겠지만, 곧 물결들이 잔잔하게 돌아올 것이다. 그들을 몰랐던 나에게도 라디오헤드가 물결쳐 다가온 것처럼.라디오헤드를 모르는 분들에게 더욱 추천한다. 혹시 모를 일이다. 물결 사이에 고모가 숨어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