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 |
정양시인의 문학 콘서트
관리자(2012-09-07 15:34:53)
그에게로 가는 길
조윤희
가을 바닷가에 / 누가 써놓고 간 말 /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 만씩 해서 /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 정양 詩 토막말 中
시인 정양 선생님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구다. 2012년 여름밤, 화채를 많이 먹은 소읍의 골목들이 딸꾹질을 하기 시작한다. 밤은 길고 긴데 도무지 잠은 오질 않는다. 딸꾹딸꾹, 느릿한 속도로 내뱉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 골목을 닮았다. 어쩌면 이젠 골목이 그를 닮아갈지도 모르겠다.
사이, 사이
그런 그의 말과 말은 유독 사이가 길고, 또 깊다. 사랑에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다고 막스피카르트가 말했나. 그는 말하는 시간보다 적막의 시간이 더 길고 긴 시인이다. 아마도 그가 주는 침묵의 시간을 사랑했던 제자들 또한 제법 많을 듯하다. 이를 증명하듯 전주 부채문화관에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았다. 벌써 입추도 지났건만, 올해 유독 전주에 찾아온 후덥지근한 여름은 좀처럼 자리를 뜬 생각을 하질 않는다. 이렇게 더운데 누가 찾아오기나 할까 싶었지만, 문학콘서트의 손님은 생각보다 더 많았다. 뜨겁게 구워진 한옥마을의 기와들, 올여름만은 처마에 매달려 좀처럼흔들리지 않던 풍경과 후끈 달아오른 골목이 천천히 식어가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올해 전주문화재단에서마련한 전주 백인의 자화상의 주인공은 바로 정양시인(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을 보러 온 것이었다. 훤칠한 키에 깊은 눈매를 지닌 시인의 머리칼은 하얗게 쇠어가며 이곳 전주와 함께 늙었다. 그는 한옥마을, 그리고 부채와아주 잘 어울렸다. 초대된 손님이 아니더라도 오고 가는 사람은 많았다. 한옥 마을 골목골목을 천천히 걷던 젊은 연인들, 어린 딸을 목에 태운 아빠, 잠시 마실 나온 공방의 작가들도 동석했다. 그들과 무대의 사이, 시와 음악의 사이. 그사이, 사이로 무르익은 여름밤이 새어들었다.
느리게 부는 바람 따라 모였다
올해로 일흔이 된 그는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이 당선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아름다운 작가상, 백석문학상, 모악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인의 시집으로는『까마귀떼』,『수수깡을 씹으며』,『빈집의 꿈』,『살아있는 것들의 무게』,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나그네는 지금도』,『철들 무렵』등이 있다. 시도 많이 썼지만, 그는 부채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판소리와 부채를 떨어뜨려 놓을 수 없으니 그렇고『판소리의 바탕과 아름다움』,『판소리 단가』와 판소리 평론집 ,『판소리 더늠의 시학』등의 판소리 관련 공편도 저술했으니 말이다.이날의 사회는 박태건(시인) 씨가 맡았다. 그의 제자인 이현옥(우석대도서관 사서) 씨도 무대로 나와 정양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그녀는 <살구꽃 피고>의 이병초 시인이 수줍었다. 그의 아래에 서면 어떤 작가도 모두 아빠 품에 안긴 것처럼 작아진다. 그도 그럴 것이 그보다 키가 큰사람도 없었으며 그보다 잘생긴 사람 또한 없었으니 말이다.
올봄 열 번째 시집『북항』을 낸 안도현 시인의 얼굴도 보였다. 안도현 시인이 S사의 태블릿PC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풍경이라니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그림을 보는 것 또한 재미있다. 하모니카 부는 오빠의 문정 시인도 보였고 오리막의 유강희 시인과 소설『귀뚜라미가 온다』의 백가흠 소설가가 콘서트를 지켜보며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정동철(우석대 교수) 씨도 보였다.전북작가회에서 오신 손님도 많았다. 북어의 기명숙 시인,꽃 이름, 팔레스타인의 경종호 시인, 꼭 자매 같은 하미경시인, 하미숙 시인의 모습도 보였고 동화작가 박예분 씨도보였다. 유일하게 정양 선생님처럼 키가 큰 김성철 시인도함께 했다. 이날 하미경 시인의 낭독 또한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손님은 여기서 끝이 나지 않았다.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함께 계시는 곽병창(극작가), 송준호(소설가) 교수님 제자들도 함께 모였다. 모두 정양선생님을 만나러 왔다가 만나 다시금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음악이 시에게로 가는 길, 시가 음악에게로 오는 길
정양 선생님께로 오는 길에 탔던 택시에서 구창모의 방황을 작곡했다는 한 중년의 기사를 만났다. 원곡의 제목은“무인도”였으며 제목과 가사가 바뀌고 편곡이 되어“방황”이라는 노래가 탄생했고. 그 당시 고급 기타를 살 수 있는 20만원에 팔아 넘겼다고. 실용음악학원을 할 적에 조카처럼 키우던 연습생이 최근에 데뷔를 하는 모습을 보며 아직도 기타를 들고 싶고, 노래를 하고 싶다던 그 분의 택시에서 내리며 생각했다. 이 날 초대 공연으로 모신 밴드였던“놉”과 만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마음속으로 팔자에도 없는 중매쟁이가 되어보았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질끈 묶은 뒷모습이 무척 아름다운 이분들은 다들 마흔을 훌쩍 넘긴 후 나이를 세고 있지 않는 멋진 중년 분들로 구성되어있다. 낮고 깊은 음색이 그날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우러졌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음악도 사람도 무르익을 무렵 정양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간절한 김소월의 초혼, 그런데 어쩐지 정양선생님이 읽으니 더욱 간절하다. 한옥마을에 울려 퍼진 이날 문학콘서트의 어떤 코너보다도 정양 선생님께서 직접 낭독하던 순간을 사람들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는 사이에 사람들은 정양 선생님을 따라 다시 뒤풀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