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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 |
클래식 뒷담화
관리자(2012-09-07 15:33:12)
음악계의 파우스트, 악마의 바이올리스트 파가니니 문윤걸ㅣ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영상창업대학원 교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파우스트. 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젊음과 함께 새로운 능력을 얻었습니다. 음악계에도 파우스트처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신기에 가까운 테크닉을 얻었다고 불렸던 인물이 있습니다.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까지 악마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그 사람은 바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니콜로 파가니니’(Niccol Paganini, 1782~1840)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파가니니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믿었던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의 연주 솜씨가 인간의 능력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너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그의 바이올린 테크닉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던 초절정 기교였습니다.파가니니의 곡예사와 같은 기교에 대해서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기사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의 연주는 이전에 전혀 본 적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연주였습니다. 뛰어난 기교를 바탕으로 바이올린 하나만 연주하는 데도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같은 효과를 내기도 했고, 활 대신 나뭇가지를 사용해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으며, 연주 도중 줄이 끊어져도 멈추지 않고 남은 줄만으로 문제없이 연주를 계속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일부러 바이올린의 네 줄을 하나씩 끊고 나머지 한 줄만으로 연주하는 묘기를 보이기도 했답니다(그는 나중에 한 줄 또는 두 줄만 이용하는 몇 편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파가니니는 이런 고난이도 연주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자신의 연주를 듣는 사람들을 즉석에서 열광적인 팬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다가 실신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고 합니다(나폴레옹의 여동생인 엘리자 보나파르트도 파가니니의 연주만 들으면 자주 실신했다고 합니다). 또 자신의초절정 기교를 담은 작품들을 작곡해 출간했는데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이 작품들은 파가니니 외에는 누구도 연주할수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합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올킬’하면서 바이올린 제왕의 지위에 올랐다고 할 수 있겠네요.이래서 사람들은 파가니니가 파우스트처럼 악마에게 영혼을 판대가로 그런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파가니니가 연주하는 동안 악마와 마녀가 춤추는 모습을 봤다는사람이 있는가 하면, 파가니니의 발치에 사슬이 감겨 있고 악마가 나타나 그의 연주를 도왔다는 공연 평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어쩌면 파가니니의 그런 놀라운 테크닉은 그의 바이올린에 악마가 깃들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현은 그가 젊은 시절 자신의 애인을 목 졸라살해한 후 그녀의 창자를 꼬아 비밀스럽게 만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까지 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파가니니의 외모가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악마의 이미지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당시에 유행했던 매독을 앓았습니다. 여기에 치료제로 인한 수은 중독까지 겹쳐 그의 외모는 광대뼈가 불거진 퀭한 얼굴에 심한 매부리코, 구부정한 어깨에 아주 마른 체격을 갖게 되었는데 치렁치렁 아무렇게나 기른 긴 머리카락과 신경질적이고 괴팍한 성격, 관습과 권위를 무시하는 자유분방한 행동 등은 악마에게서나 느껴지는 음산한 기운과 너무나 닮았던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파가니니 자신입니다. 일부러 괴이한 복장을 하고 다니거나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여 자신의 캐릭터를 악마로 만들어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자신의 삶과 생활에서 신비주의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스타를 키우는 기획사들이 즐겨 쓰는 전형적인 스타 마케팅을 실행한 것이지요. 파가니니는 사람들이 자신을 악마에게 영혼을 판 사람이라 손가락질해도 특별히 화를 내거나 적극적인 해명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그런 소문을 조장하는 태도를 보인 것입니다. 실제로 파가니니가 운명하기 직전 찾아 온 사제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세간의 소문에 대해 묻고 참회하라고 하자 파가니니는 참회를 거부하고 오히려 내 바이올린 속에 악마가 숨어있다고 대답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제는 파가니니가 악마에게 영혼을 판 사실을 시인했다고 소문을 퍼뜨렸고, 파가니니는 죽어서도 악마에게 영혼을 판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파가니니는 고향 제노바에 묻히고 싶다고 유언했으나 악마의 시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교회와 지역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거절되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 주지 않았고, 지하 동굴과 납골당 등을 떠돌다 죽은 지 36년(1876년)이 지나서야 아들과 주변 사람들의 청원 및 로비에 힘입어 고향에서 겨우 안식처를 찾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로부터 경탄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파가니니의 경이로운 바이올린 연주실력은 과연 악마에게서 받은 천재성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파가니니는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는데 매독 외에도 피부와 관절의 결합조직에 이상을 유발하는 선천성 질병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피부조직이 늘어나고 관절이 물렁해져 잘 휘게 되는데 이 때문에 파가니니는 보통 사람과 다르게 손가락을 넓게 벌릴 수 있었고, 손의 위치를 바꾸지 않고 바이올린 현이 닿는 왼손 끝 관절을 직각으로 구부릴 수도 있었답니다. 그래서 파가니니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바이올린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는 어려서부터 혹독한 수련과정을 겪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파가니니가 어려서 바이올린에 대한 천재성을 보이자 지나치다 싶을 만큼 혹독한 수련과정을 겪게 했습니다. 또 파가니니는 자신에 대한 사회적인 평판과 명성을 즐기는 스타의식이 있어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새로운 곡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연습과 노력 없이 스타가 될 수는 없었으니까요.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파가니니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음악가로서의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사람들은 파가니니를 위대한 음악가가 아닌 일종의 신기한 구경거리, 요즘 말로 하면 쇼맨십이 강한 엔터테이너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연주회장에는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오는 사람보다는 악마에 홀린 바이올리니스트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하니까요. 그들은 음악 대신 악마가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찾는 것이 더 큰 관심 거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예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유럽은 낭만주의 열풍에 놓여 있었는데 그의 관습을 넘나드는 자유분방함,악마가 등장하는 환상적이고 전설 같은 스토리, 그의 삶을 둘러싼 신비롭고 몽환적이며 퇴폐적인 분위기, 그리고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테크닉 등은 낭만파 예술의 경향과 잘 부합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파가니니에게서 영향을 받은 낭만파의 예술가들이 많았습니다. 파가니니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파헤친스탕달, 파가니니의 연주를 처음 들은 후 자신의 피아노 실력이 부족하다고 절감하고 연주공부를 떠난 리스트, 파가니니에게서 악마를 보았다는 평을 쓴 하이네, 쇼팽, 슈만, 괴테, 베를리오즈, 바그너 등 파가니니는 이후 낭만파 예술가들에게 전설로남게 되었습니다. 참, 파가니니가 죽기 직전 악마가 숨어 있다고 한 바이올린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사용하던 바이올린은 1742년에 제조된‘과르넬리 델 제수’입니다. 이 바이올린은‘il Cannone’(캐논)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데 다행히 파가니니의 유언대로 현재 그의 고향 제노바의 시청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거의 손상 없이 국가원수급 경호를 받으며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 년에 두세 차례 특급 연주자들에게만 대여를 해준다고 하는데 이 악기가 시청 밖을 나갈 때면 수천만 달러의 보험과 무장경호원, 관리책임을 맡은 악기제조자 등이 따라 붙는다고 합니다. 이 바이올린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관한 주의 사항이 적힌 긴 목록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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