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 |
전주 남부시장 문전성시‘비몽사몽 청년야시장 시즌3’
관리자(2012-09-07 15:32:56)
꿈을 좇는 청년들의 뜨거운 이박 삼일
임주아 기자
‘폭염주의보’가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 8월. 전주의 한낮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덥다는 대구 최고기온을 넘어섰다. 한옥마을 담장에 핀 쑥부쟁이는 바짝바짝 말라갔고, 전동성당 앞 가로수들은 환자처럼 링거를 맞았다.무려 38도를 기록한 전주 열대야는 몇 주 동안 계속됐다. 하지만이 불볕더위를 이열치열로 견디는 이들이 있었으니, 남부시장을이끄는 청년들이다. 전주 남부시장에서 3일 동안 열리는‘비몽사몽 청년야시장 시즌3’축제날. 나는 관광객처럼 한 손에 부채를,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청년몰’로 향했다.남부시장 2층 청년몰은 한적한 1층과 달리 활력이 넘쳤다. 축제날이라 모두 분주하고 부산했다. 스태프들은 곧 있을 공연 장비세팅에 여념이 없었다. 중앙에 놓인 색색의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 있고, 밴드 멤버들은 들뜬 표정으로 리허설을 준비했다. 청년사장들도 손님 맞을 준비에 바빠졌다. 해가 떨어지면 사람들이배로 몰리기 때문이다. 12개 점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남부시장에는 청년들이 내뿜는 공기로 싱싱했다.그들이 남부시장에 둥지를 튼 것은 지난 5월이었다.‘전통시장의 부활’에 사활을 걸고 문광부와 사)이음이 만든‘문전성시프로젝트’를 만들어 장사할 청년들을 모집한 것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무보증금에 월세 5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점포 조건이 한몫 했다. 경쟁률은 5:1. 사업계획서를 내 합격한 17명 청년이 모였다. 그들은 창업아이템은 물론 리모델링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 했다.양은냄비는 간판으로, 장롱은 카운터로 탈바꿈했다. 웬만한 집기와 창문 정도는 뚝딱뚝딱 만들고 페인트도 직접 칠했다. 2층‘청년몰-레알 뉴타운’은 청년들의 땀과 열정으로 만들어졌다.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2층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한 두 개점포가 남아있긴 했지만 나머지 점포는 손 쓸 수 없는 지경으로망가져 있었다. 처음 2층을 청년몰로 만든다고 결정 했을 때 남부시장 상인들은 이 쓰레기더미 공간에 누가 들어오겠냐며 혀를찼다. 그것도 젊은 청년들이. 하지만 방치된 공간은 언젠가는 새로 태어나는 법! 생각만 하기엔 설득력이 없어보였다. 무언가를,보여줘야 했다. 그렇게 처음 만들어진 공간은‘카페 나비’였다.(사)이음과 청년들이 머리를 맞대 모델하우스 겸 카페를 만든 것이었다. 모두 반신반의했지만 인테리어를 하고, 물건을 들이고장사를 했다. 그럴듯했다. 그 뒤로 11개의 점포가 차례로 뚝딱뚝딱 만들어졌다.테이크아웃 요리점부터 칵테일바, 식충식물화원, 뽕잎 수제버거가게, 한방 찻집, 재활용업싸이클링 공방, 핸드메이드소품체험 공방, 온오프라인 옷가게 등 청년몰은 점점 자리를 잡아 갔다.
“5분 뒤에 공연 시작합니다!”,“예쁜 야광팔찌 사세요!”
저녁 일곱 시. 청년몰의 동사무소 역할을 하는‘송옥여관’앞. 자원봉사자들이 양손 가득 야광팔찌를 끼고 공연시작을 알렸다. 쿵짝쿵짝 스피커 볼륨이 높아지고, 2층은 관광객으로 점점 붐비기 시작했다. 햇볕이 물러가고 조금씩 바람이 불었다. 이번 축제에서 가장 비중이 큰 프로그램은 단연 인디밴드들의 공연이었다.첫 날 첫 공연의 문을 연 3인조 어쿠스틱 밴드‘이상한 계절’.그들의 연주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3일간 공연에 선 뮤지션들은 총 10팀. 어쿠스틱 공연부터 락, 일렉까지장르도 다양했다. 노래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시장에서의 공연을 어리둥절해했지만 무대에 오르자 모두 신나게 놀았다.점포 앞에 노점을 차린 젊은 장사꾼들도 하나 둘 등을 켰다.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모든 물건을 팔 수 있다는 벼룩시장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셀러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아니라 매번 신청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날을 잘 골라야 다양한 물건을 구경할 수 있다. 주로 음료와 음식, 옷, 액세서리 등을 판다.단돈 천원에 일러스트를 그려주는 재능기부(?)소녀도 만나고 안읽는 책을 팔고 싶어서 가져왔다는 열네살 남학생들과 수다도떨고, 축제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닌다는 커피트럭청년도 만났다. 마음이 푸근해졌다. 나는 곧장 친구들에게 남부시장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야시장 여는 날, 언제 한번 와서 장사하자고!매월 첫째, 셋째주 토요일에는 야시장이 열리고, 둘째, 넷째주 토요일에는‘우리 여기 있다’파티가 열리는 남부시장. 벽 곳곳에붙어있는‘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라는 포스터가 재미있다.‘악착같이 벌어 악착같이 잘 살자’는 시장 밖과 사람들과는조금 다른 생각. 나는‘아주’와‘적당히’사이에서 깔깔 웃고노는 그들을 상상했다. 아무렴, 잘 노는 것도 잘 사는 것이다. 청년몰에 들어서면 좌중을 압도하는 커다란 문구.‘만지면 사야합니다!’공방 벽에 커다랗게 페인트칠로 적혀진 이 문구는 청년몰의 명물이다.처음 남부시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놀라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시장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에 대해. 시장에 청년들이 북적인다는 것에 대해. 더불어 시장에서 축제가 열리는 것에 대해. 매스컴에서는‘세대와의 통합’이라는 거창한 말로 남부시장을추켜세우기도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저 자주, 가까이 붙어 소통한 것뿐이었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듯,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30년 넘게 남부시장의 명맥을 이어온 상인들은 청년사장들에게 애정을 아끼지 않는다. 청년들도 묻고 배우기는 마찬가지. 그덕분이었을까? 청년몰이 들어선지 3개월, 남부시장 전체매출이20%나 뛰었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이음 김병수대표는“남부시장에선 세대 간의 결핍을 찾아볼 수없다”며“침체된 남부시장에 생기가 돌고 매출도 올라 모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12개 점포의 청년사장들이 기존 상인들의‘번영회’에 가입하는 절차를 밟으려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남부시장은 청년 사장들을 기쁘게 품었다.거창에서 왔다는 자원봉사자 박예랑 씨는 모든 세대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시장이라는 공간을 잘 활용한 것 같다며 지원할 때부터 신기하고 기뻤다고 했다. 대학생 이동한 씨는 생각은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일들을 남부시장에서 해내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튿날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가수 요조는 꼭 한번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며 시장에서 공연하니 기분이 색다르다고 했다.해는 뉘엿뉘엿 지고, 밤이 깊어가는 남부시장. 굽이굽이 계단을지나자‘하늘정원’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별이 손에 잡힐 듯가까이 보이는 탁 트인 곳. 특이한 벽화와 작품들이 가장 먼저눈을 사로잡았다. 미술 전시회를 방불케 할 정도. 이곳은 축제 2박 3일 동안 캠핑장이 열린 곳이다. 텐트는 무료제공! 늦은 밤이되자 배낭객들이 하나 둘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날은 무더웠지만 별이 많아 괜찮았다.나는 하늘정원을 둘러보다 어슬렁어슬렁 시장 뒷골목으로 걸어갔다. 전주젓집, 생선가게, 청과물가게가 차례로 이어져 있는 남부시장 골목은 진짜‘시장 냄새’가 났다.골목 앞으로 흐르는 전주천. 반짝이는 가로등 불빛. 산책하는 사람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오늘도 모두 열심히 하루를 살았다.‘아프니까 청춘’은 더 이상 재미가 없다. 이제 이유없이 아프고 막연히 위로받는 청춘의 시대는 가고 있다. 부지런히 꿈을좇는 남부시장 청년들. 그들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