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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 |
물에 잠긴 군산 한길문고
관리자(2012-09-07 15:32:34)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간 거죠” 임주아 기자 광복절 오후였다. 물폭탄이 쓸고 간 군산은 비 비린내와 습기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표정을 잃었다. 한길문고 앞에는 민소매셔츠에 장화를 신은 봉사자들이 지친 표정으로 쉬고 있었다. 서점 내부는 참담했다. 봉사자들은 휴일도 반납하고 아침 8시부터 열심히 집기를 치우고 책을 정리했다. 서고의 책은 무려 8만권이나 됐다. 지하에 있어 이 정도 피해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시민들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침수 첫날, 소방차 두 대로도 감당이 안 돼 오물수거차량을 불렀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책들은 토사물을 뒤집어 쓴 쓰레기더미가 됐고, 물폭탄이지나간 한길문고는 폐허가 됐다. 8월 13일 하룻밤 군산의 강수량은 무려 444m. 1967년 군산기상대가 들어선 후 처음이었다. 산업단지 내 공장 46곳과 농경지 2780㏊, 비닐하우스 13㏊, 축사 3동(닭 4만5000마리) 등도 침수 피해를 봤다. 군산시는 도로·상하수도·옹벽 등 공공시설 피해(51억원)에 상가(162억원) 등 민간피해(440억원)를 합쳐 피해액이 5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매년 폭우에 걱정인 군산이지만 한길문고는 9년 동안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한번도 침수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고개마다 쏟아져 내려오는 물과 건물 사이에 고인 물이 한길문고 뒤를 덮쳤다. 물은 한길문고 주차장과 건물 엘리베이터를 단 10분만에 침수시켰고, 서점을 아수라장이 됐다. 8월 15일 오후, 이 대표는 군산지역 시민단체와 전교조, 지자체 사람들과의 회의에 다녀왔다. 서점은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였고, 조금씩 정리돼 가는 모습이었다. 회의는 서점 복구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성금을 모아 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고사했다. 공익적인 일을 하다가 피해를 입은 게 아니라 사적인 영리 행위 와중에 이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짐을 지울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대신 다른 제안은 고마운 마음으로 받겠다고 했다. 제안은 두 가지였다. 출판사에 양해를 구하는 서명을 보내는 것과 한길문고 이름으로 후불 상품권을 발행하는 것. 출판사들에게 서점 사정을 알리고 군산 독자들에게 서명을 받아보겠는 것이 첫 번째였다. 돈을 다 탕감해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만 얼마라도 배려해주면 재기 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두 번째는 한길문고 상품권을 발행해 미리 선불로 구매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1000명에게 10만원씩 상품권을 사도록 해 1억을 만든다고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그가 더 잘 안다. 하지만 그 중에 가장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2003년 개업할 당시, 4억 보험을 들었다. 나운동 일대는 상습 침수구역으로 통해 주변의 동아서적, 인테리어가게, 이불가게 등은 모든 보험사가 거부했다. 그런데 한길문고는 운 좋게 보험가입이 됐다고 이 대표는 기억했다. 연장연장 하다보니까 취소시킬 명분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한길문고는 얼마라도 받게 돼 다행이지만 동아서적은 이제 1층에 서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휴게실 같은 간이시설로 바꾸겠다는 말이 나왔다. 12년 동안 9번이나 침수를 겪었던 동아서적도 이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쯤이면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로 받아들이고 조속히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침수 때마다 국가에서 나오는 보상금은 고작 100만원. 동아서적 옆집양모이불가게의 이불 한 채밖에 안 되는 액수다.이민우 대표는 서점 운영에 특별한 철학을 갖고 있다. 서점을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 공간으로만이 아니라 지역문화를 성장시키는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작년에는 김용택 시인의낭독회를, 얼마 전에는 안도현 시인의 강연회를 주최했다. 한길문고의 비피해 소식을 들은 문화인들은 한결같이 안타까워했다. 안도현 시인은“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군산’하면‘한길문고’를 떠올릴 정도로 한길문고는 지역문화의 거점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작은 소도시에서 서점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 대형서점과 인터넷서점이 들이닥쳐 동네서점은 모두 자취를 감췄고, 정부에서 내놓은 도서정가제도는 할인법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바로 한국서점연합회 식구들. 위로차 방문한 한국서련 관계자들은 이참에 다른 업종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기도 했다. 그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딸 아들도 다 크고, 돈도 살만큼 모이면 하던 일 접고 시골 가서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길문고가 다시 문을 열면 출판사에서도 음으로 양으로 도와줄 것이고 지자체나 의원들, 군산독자들도 응원해줄 것인데 한때나마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가책이 든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보다 열 배 백배 지역을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무겁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피시방이나 술집이 하나 더 늘어나는것보다 서점이 다시 생기는 것이 군산 시민들에게 더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도와주시는 분들도 다 그런 마음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기 때문이다.한길문고는 여전히 복구 중이다. 수마(水魔)가 휩쓸고 간 흔적이 쉽게 지워질리 없다. 지하매장바닥엔 흙탕물이 고여 있고 직원들은 젖은 책들을 출판사별로 분류하고 있다. 이 대표의 페이스북에는 새로운 공간에서 더 나은 모습으로 재오픈하기 위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와있다.“건물 2층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하고 업무가 가능해지는 대로 복구와 재오픈을 위해노력하겠다”는 글이다. 많은 페북친구들이 댓글로 응원을 보냈다. 기자도‘좋아요’를 꾹 눌렀다. 36시간 동안 물에 잠겼던 컴퓨터는 끝내 복구되지 못했다. 책만큼 소중했던‘9년 동안의기록’은 이제 머릿속에만 남았다.“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간 거지요.”그의 말이 어떤 상징처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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