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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9 |
[아름다운 당신] 미디어아티스트 탁영환
관리자(2012-09-07 15:31:57)
바닥에서 시작해도 꿈틀거리는 창작의욕은 버릴 수 없었어요 이세영 자유기고가 우연 혹은 필연 : 드라마‘신의’ 지역 작가의 한계를 깨게 한 그의 최신작은 SBS 드라마‘신의’의 도입부 애니메이션이다. 조조와 화타의 만남을 그린 2분 50초의 애니메이션의 시작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로 시작됐다. “5월쯤 SBS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처음에는 방송국 사칭 보이스피싱인줄 알았어요. 지방에서 이제 겨우 아는 사람이나 아는 저 같은 작가한테 SBS에서 연락할 일이없겠다 싶었죠. 멀쩡한 사람도 속는다는 보이스피싱에 안 걸리려고 경계를 하는데 대뜸 전주에 오겠다는 거예요. 황당했죠.”‘모래시계’를 기억하는 사람은 김종학감독의 이름값이 얼마인지 안다. 그도 그랬고, 같이 작업해보자는 이야기가 현실로 들리지 않았다. 담당PD와 만난자리에서 어찌 알았냐고 물었다.인터넷에‘수묵’,‘애니메이션’을 검색어로 넣었다고 한다. 인터넷의 힘은 역시 위대하다, 그에게 든 생각이었다. “SBS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다보니 작가의 욕심을 많이 부리지는 못했어요. 수술하는 장면, 장수와 화타가 대화하는 장면등에서 빠른 화면이 들어간 이유죠.‘채널 돌아간다’니 제 취향만 고집할 수는 없잖아요.” 3개월의 작업은 1천여 장의 원화를 그리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래도 그는 이 작업에 만족한다. 의뢰자와 어떻게 절충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어떻게 작품의 특성과 의뢰 내용을 조화롭게 해야 하는지, 모든 것이 그에게는 공부해야 할 일이었다.무엇보다 이전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차기작에 대해 숙고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준 고마운‘신의’다. 우연 혹은 필연 : 향 연기 수묵 애니메이션, 그 시작은 나만의 소재를 찾고자 했던 그의 노력의 결과다. 그가 주목한 것은 향 연기. 우연히 피어오르는 향 연기를 봤다. 소재의 쓸모를 골몰하느라 하루 종일 향을 태웠다. 향 연기를 촬영해 컴퓨터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줬다. 연기를 누이니 길처럼 보였다. 단색이지만 다양한 계조를 담고 있고, 공간과 여백이 있으며 원하는 데로 가지 않는 연기의 특성이 수묵과 닿아 있었다. 이것이다 싶었다. 연기 위에 수묵으로 그려진 사람을 배치했다. 그렇게 최초의 수묵 애니메이션‘환생(還生, Circle of Apolonius)’이 탄생했다. “실재와 허구와의 상관관계가 떠올랐죠. 역설적이게도 실재하는 것은 향 연기지만 본질은 왜곡돼 있고 그마저도 사라지는데 허구인 캐릭터는 영원하잖아요. 흩날리는 연기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계속 걸음을 걷는 모습으로 인생을 담고 싶었어요.” 연기가 주는 강렬한 인상은 차기 작품에도 계속됐다. 그의 또 다른 작품‘주유(舟遊)’도 연기를 색다르게 해석한 작품이다. 180도 돌려진 연기는 이제 폭포가 되었다. 높은 절벽사이를 멈춘 듯 흐르는 폭포가 연기다. 느리게 움직이는 배와 시점의 변화를 꾀하는 절벽의 움직임으로 한 폭의 산수화는 생동감을 얻었다. 우연 혹은 필연 : 드라이아이스 ‘주유’이후 그의 활동은 멈췄다. 연기와 수묵의 접점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유명한 작가들은 3부작을 하는데 3부작이 안 되는 거라, 아 이런! 작가를 그만 둬야하나”생각했다. 힘들고 고민도 많아졌다. 생활에 대한 압박도 심해‘접시를 날랐다.’사라질듯 하던 작가의 꿈은 우연히도 드라이아이스에서 이어졌다. “아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다 준 날이었어요. 컵 속에서 녹고 있는 드라이아이스가 폭포 같더라고요. ‘주유’에서의 실낱같은 폭포가 아닌 물이 많은 폭포, 유레카! 드라이아이스의 모습을 좀 더 관찰했어요. 퍼지는 모양이 흡사 구름과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앞뒤 잴 것도 없이 당장 실험에 들어갔다. 물어물어 드라이아이스를 구하고 모래를 쌓아 산을 만들었다.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드라이아이스는 구름을 만들만큼 많은 연막을 뿌려대지 않았다. 모래로 쌓은 산도 바로 허물어졌다. 드라이아이스를 잘게 쪼개고 뜨거운 물을 붓고서야 구름 모양이 만들어졌다. 모래는 커피 찌꺼기로 바뀌고서야 산다운 산이 되었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을 운해(雲海)라 이름 짓고 그의 세 번째 개인전‘수묵이 보이는 정원-운해지가(雲海之歌)’를 열었다. 운해 연작은 연기에서 시초한 작품의 결정판이다. 운해는 가장 전형적인 수묵의 화폭을 디지털로 담아내면서도 한국화가 지닌 맛을 그대로 살렸다. 수묵화의 디지털적 재해석을 통해 움직이는 수묵화를 만들어 낸 것은 그에게도 남다른 의미였다. “어릴 적 어렴풋하게 생각했던 창작의 길에서 비로소 첫 단추가 채워졌다라고 할까요, 작가로 부활한 느낌이었죠. 늦깎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지 6년 만에 애니메이션으로 가야할 길을 찾은 것 같았어요.” 우연 혹은 필연 : 시네마 키드 그의 영상에 대한 애착은 이미 유년시절 만들어졌다. 그의 큰아버지가 촬영기사 탁광이었던 덕에 그의 주위는 영화와 관련된 것이 지천이었다. 영사기, 영화포스터는 흔했고, 큰집에 놀려온 김희갑, 허장강, 박노식 등 당대의 내로라는 배우들도 볼 수 있었다. 큰아버지의 뒷배로 동네 극장을 놀이터 삼아 놀며 그는‘시네마 키드’로 자랐다.그러다 또‘우연히’영화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사건이 생겼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 친구가 준비하던 광고공모전에 응모했다. 인생길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 광고공모전에 당선되며 광고회사에 입사했다. 7년여의 회사생활은 영화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그의‘작가 유전자’에 있었다. “내 의도가 아닌 의뢰자의 의도를 담아야 하는 일에 싫증이 났어요. 경험이 붙어 일은 쉬워지는데도 제 자신은 점점 힘들더군요. 꺼내 쓰기만하고 채워 넣지 못하고 있구나, 좀 더 배워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쉽게 회사생활을 정리할 수는 없었다. 늦은 나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의 시간은 길어졌다. 상황은 체코대사관에서 열린 체코영화 특별전에서 급변한다. 얀 쯔반크마이어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영상이 표현할 수 있는 새로움을 봤다. 배우고 싶다, 창작하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주위사람 반대를 물리치고 보따리 싸서 일본으로 갔다. 우연 혹은 필연 : 일본 유학 일본 유학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말도 설고, 물도 선 타국에서 고생은 당연히 뒤따랐다. 염두에 둔 애니메이션스쿨마저도 현장경험이 있던 그에게는 색다를 게 없는 공부였다. 그러다 우연히, 또‘우연히’다, 실험영화 상영관에서 무사시노 미술대학을 알게 됐다. 맘에 들었던 영화의 감독이 그 대학을 나왔던 것이다. 무작정 대학에 지원했다. 말도 통하지 않았으니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가야할 곳이 보이자, 해야 할 일도 더 분명해졌다. 한 해를 더 준비해 무사시노미술대학 대학원에 입학했다. 자그마한 단과대학이었지만 배울 것은 사방에 있었다. 학내에서 전시하는 졸업 작품, 진급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움의 가치는 충분했다. 다른 학생들의 작품은 그를 더욱 자극했다. 늦은 만큼 더 뛰어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생텍쥐페리가 추락에서 살아남은 이후의 이야기를 졸업 작품으로 만들었죠. 연기는 그때부터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사로 촬영했어요. 물에 물감을 풀어 넣어서연기로 표현하고 사막도 다양하게 표현하려고 모래 한 트럭을 강의실에 채워 세트를 만들었어요.”담당교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1년여동안 작업을 진행했다. 인형 애니메이션‘a Dream of the Desert’은 상상과 환상이 이루어낸 수작이 됐다. 현재시도하는 작품들의 단초를 제공한 것도이 작품이었다. 우연 혹은 필연 : 전주 전주에서 작가생활은 힘들었지만 전주에 터를 잡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에게 전주는 매력적인 도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판타지한 공간이 전주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요술 같은 동네, 그가 보는 전주다.“한달음에 달려 오목대에 가고 철길을 지나면 경기전이, 그 앞으로는 당장이라도 발사될 것만 같은 로켓, 전동성당이 어린시절 기억에 남아 있어요. 한참 만에 돌아온 전주는 여전히 오밀조밀한 한옥이 반겨줬어요. 전주로 돌아오는 건 연어가 물을 오르듯, 필연적인 결과였죠.” 필연적인 공간, 전주는 그의 작품에서 새롭게 태어날 예정이다. 전주의 현재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로맨스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한다. 전주에서 첫사랑을 회상하는 설렘을 담은 그의 작품이 어떠할지 사뭇 기대된다. 전주에서 하고 싶은 일은 또 있다.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문화의 도시에 걸맞은‘애니메이션센터’를 만들고 아이들이 재미있게 공부하며 놀 수 있는 공간,‘아이들의 성’을 만들 생각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스타감독이 나와야 해요. 제 후배로 키우는 데는 전주 아이들이 가장 유망합니다.‘전주에도 서울만큼 많은 작가가 있어, 환경도 좋아’하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작가로서의 사명이라면 전주를 애니메이션의 천국으로 만들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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