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 |
[기획특집] 로컬푸드 3
관리자(2012-09-07 15:30:54)
건강밥상 꾸러미에 담긴 즐거움
전수경 주부(경기도 수원시)
“네, 여보세요? 아 그래요? 그럼 어쩌죠?” 늘 저녁때 배달되던 건강한 밥상 꾸러미가 이번엔 오전에 도착했다는 택배 기사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신선 식품이어서 이번엔 일찍 배달하려고 왔는데 하필이면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점검 중이라네요. 저도 18개월 된 딸내미를 안고 21층을 걸어 내려갈 수 없어서 서로 방법을 찾다가 택배 기사님이 일층에 있는 어린이집에 맡겨 두시기로 했답니다. 애를 안고 멀리 경비실에서 무거운 상자를 들고 오지 않아도 되니 저는 감사할 따름이었어요. 오늘은 뭐가 왔나 얼른 열어보고 싶어서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자마자애를 업고 얼른 꾸러미를 받아왔습니다. 꾸러미를 식탁의자에 내려놓자마자 딸내미 가윤이가 얼른 열어보라고 상자를 두드리며성화입니다.“응, 알았어, 엄마가 얼른 열어볼게.오늘은 뭐가 들었나요~ 짜잔!”이렇게 건강한 밥상 꾸러미가 오는 날은 오늘은 뭐가 들어있을까두 모녀가 앉아서 구경하는 게 첫 번째 큰 즐거움이에요. 물론 건강한 밥상 홈페이지에 가면 어떤 상품이 올 지 미리 알 수도 있고다음엔 어떤 품목이 옵니다 하고 같이 오는 편지에 예고도 해주시지만 일일이 찾아보거나 기억하지는 않거든요. 또 모르고 열어보는 게 더 재미있기도 하고요. 가윤이가 이제 한창 궁금해 하는 게많아져서 하나하나 직접 보여주면서 과일 같은 건 냄새도 맡게 해주고 만져보게도 하고 이름도 얘기해주면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다음에는 오늘 저녁에는 뭘 해먹어야 겠다… 생각도 해보고요.완주군 로컬푸드 건강한 밥상을 알게 된 건 TV를 통해서였어요.언뜻 들어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라는 점, 소비자 입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생산된 믿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희 집은 신혼 때부터 매일 꼬박꼬박 집 밥을 해 먹어서 늘 반찬 걱정도 있고 또 애가 생기니 이유식 때문에 먹거리에 대한 고민도 생겼는데 이거다싶더라고요. 완주군 로컬푸드로 인터넷 검색을 해서 찾아간 건강한 밥상 홈페이지에서 일단은 월 2회짜리 한 달 체험 꾸러미를 신청했어요. 4월 말 첫 꾸러미를 받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꾸러미를 열자마자 먹을거리란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가윤이가그 작은 손으로 포장 사이에 손을 넣어 카스텔라를 뜯어먹는 바람에 일일이 보지도 못하고 카스텔라를 먹였거든요. 유정란에 우리밀로 만들었다고 해서 안심하고 주었고요. 그러고 나서 찬찬히 살펴보니 냉장고에 없으면 서운한 콩나물, 두부, 계란 삼총사와 각종 채소들이 상자에 빼곡히 들어있었어요. 상품마다 생산일, 생산자, 주소까지 적혀있어서 더 믿음이 갔습니다. 상태도 싱싱하고 좋았고요. 상품의 질과 신선함은 지금까지도 만족해요. 특히 두부는 시중 제품과는 비교가 안 되게 단단하고 커서 정말 반가웠답니다. 그리고 그 날 쑥갓이 한 봉지 왔는데 사실 마트나 시장에 갔을때는 잘 사지 않는 채소였어요. 양도 꽤 되어서 찌개에 좀 넣고도남을 양이라 처음으로 살짝 데쳐서 같이 온 두부를 넣고 무쳤는데 정말 맛있었던 기억도 있네요. 그래서 한 달 체험 후에 월 2회짜리 정식 꾸러미를 신청했습니다. 달랑 세 식구인 저희에게는 딱맞는 양이었어요. 이렇게 건강한 밥상 꾸러미를 받게 되면서 생긴두 번째 즐거움은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데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평소에 안 해먹어서 조리법을 모른다거나 싫어한다거나 해서 제가 직접 장을 보러 가면 사지 않는 채소들이 있어요. 그런데꾸러미에는 그런 게 꼭 하나씩 들어있는데 그냥 버릴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해먹게 되거든요. 인터넷도 찾아보고 친정 엄마께 여쭤도 봐서 뚝딱뚝딱 만들다 보면 의외로 맛도 있고 (물론 맛이 없을 때도 있어요.) 늘 그 반찬이 그 반찬이던 식탁 위도 좀 풍성해지는 뿌듯함도 있습니다. 남편도 이런 것도 했냐며 신기해하고 잘먹고요. 초보 주부 실력 좀 키우는데 한 몫 하고 있어요. 지난번엔열무김치도 난생 처음 담가봤답니다. 또 생각했던 것보다 꾸러미안에 품목이 다양해서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맛보는 즐거움도있습니다. 전 처음엔 채소 종류로만 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유색미나 찰보리쌀 같은 곡류와 한우, 닭 같은 육류, 오미자 감식초,쑥개떡, 카스텔라 같은 가공식품도 같이 들어있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블루베리 생과도 받았는데 멀고 먼 다른 나라에서 온 언 블루베리만 먹다가 싱싱한 블루베리를 맛보면서 아 블루베리가 원래 이렇구나… 어떻게 보면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네요. 덕분에 재배 농가도 알게 됐고요.
단순히 먹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쏠쏠한 즐거움이 있어요.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대형 마트에 가는 게 일이었어요. 냉장고를 보면 괜히 만들어 먹을 게 없는 것 같아서 한 보따리씩 사오면 기본 5만원은 훌쩍 넘기고 보통 7-8만원까지 쓸 때가 많았죠. 그런데 꾸러미를 받은 후부터는 꾸러미의 상품을 기본으로 잡고 필요한 걸 가까운 곳에서 그 때 그 때 사는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당연히 마트에 가는 횟수도 절반 이하로 줄고 지출도 줄었습니다. 제가 그리 꼼꼼한 주부는 아니어서 일일이 가계부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나 좀 알뜰해졌나봐~ 흐뭇할 때도 있어요. 꾸러미 덕분에 알뜰 주부 되어가고 있다… 뭐 이것도 네 번째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섯 번째는 늘 꾸러미 속에 들어있는 손 편지를 읽는 즐거움이에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시에 사는 저는 모르는 농촌의 오늘의 이야기를 알 수 있다는 점이죠. 한동안 남자분이 쓰시나 보다 오해할 정도로 시원시원한 필체와 어찌나 필력도 좋으신지 술술 읽어 내려가면서 늘 감탄합니다.전 하나도 모르는 농가의 일인데도 막 상상이 되는 걸 보면 대단하시지 않나요? 우리가 먹는 농산물들이 이렇게 많은 분들의 수고와 땀방울을 통해서 만들어지는구나 싶어서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또 단순히 농가의 일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으로꼭 알아야 하는 내용을 담으실 때도 많아서 생각할 거리도 주시고요. 아, 대체 어떤 분이 쓰실까 한 번 뵙고 싶을 정도로 궁금해요.사실 저는 이제 석 달 남짓 건강한 밥상 꾸러미를 받은 새내기 소비자입니다. 이렇게 꾸러미에 대해 막 쓰다 보니 장점만 쓴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 동안 꾸러미를 받아서 먹고 살면서 받은느낌을 최대한 그대로 적었다고 생각해요. 굳이 단점을 꼽으라면알이 고르지 않을 때도 있고, 예고 품목을 잘 기억하지는 않아도변동이 있다거나, 여름이 되니 두부는 받아볼 수 없다는 점 뭐 이런 정도 인데 상황에 따라서 어쩔 수 없으니 감안 할 수 있는 점이라고 보고요. 알이 크고 작은 채소들이 한 봉지에 담겨 있는 걸 보면 농사지으시는 큰아버지 댁에서 마음 놓고 얻어오는 채소들 같아서 친근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가격에비해서 양이 좀 적나 싶기도 했지만 제가 따로 나가서 살 때와 비교하니 상품의 질과 믿고 먹는 다는 차원에서 볼 때는 가격도 합리적이더라고요. 더구나 시중에서 파는 건 직거래가 아니라 긴 중간 유통 과정이 있으니 생산하시는 분들이 수고에 비해서 너무나적은 수익을 얻고 있다는 점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소비자는 제 값을 주고 믿고 먹고, 생산하시는 분들도 합리적인 수익을 얻어서 더 좋은 상품을 생산한다면 이게 바로 상생의 모습이겠죠. 한마디로 로컬푸드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 글을 쓰는 중에 마침 건강한 밥상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꾸러미 연장 신청을 할지 물으시네요. 이 글 마무리 하고 얼른 주문하러 가야겠습니다. 다가오는 가을 밥상은 어떨지 시쳇말로 왕왕 기대 중이거든요. 저희 집은 꾸러미 하나에 이렇게 많은 즐거움이 있는데 제가 먹는 농산물을 생산해주시는 분들도 제 꾸러미 하나로 조금이나마 즐거움이 있으시다면 그 즐거움도 하나 더 보태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