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 |
[문화칼럼] 자립의 길을 함께 꿈꾸다
관리자(2012-09-07 15:30:09)
자립의 길을 함께 꿈꾸다
이은진 ㅣ 신나는문화학교 자바르떼
올해는 UN이 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이다. 작년에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었고, 올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시민사회 영역에서는 작년부터 협동조합법 제정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왔고, 올해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사회운동으로서 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시민사회 뿐 아니라 정부 부처와 지자체도 협동조합 육성에 앞장서서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교육, 컨설팅과 설립지원을 준비하며 협동조합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어째, 그 분위기가 5년 전과 비슷하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되고, 현재까지 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이 600여개에 이르고 지자체별, 정부부처별 예비사회적기업도 엄청 많아졌다. 사회적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이야기되더니, 이제는 또 협동조합이다. 사회적기업은 지원 때문에 시작한 곳이 많다보니 지원 종료이 후 제대로 자립하여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어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협동조합인 걸까? 아니면 거꾸로 사회적기업을 고민하다 너무 어렵고 또 자신이 없어 포기한 사람들이 협동조합은 좀 쉽게 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고민해 보라고 할만한 일인 걸까? 그런데 협동조합은 사회적기업과는 달리설립을 위한 교육, 컨설팅 외의 정부지원은 없기 때문에 자주성을 상실하거나 지원이 끝난 이후를 염려할 일도 없다.또 공동체 정신을 복원하고, 관계를 재설정하여 보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작은 시도들이 모이고 전국적으로퍼져나간다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니 굳이 시비를 걸 이유도없거니와 설립도 도와준다는데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뭔가 의문이 생긴다. UN이 왜 2012년을 세계협동조합의해로 지정을 했을까? 협동조합은‘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해, 사람들의 공통의 필요를 해결해 가는 자주적인 결사체’이다. 이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이긴 하나 기본적으로 자본의 논리가 아닌 자조와 협동, 상부상조로 운영되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UN이 시민사회를 대변하는 기구이거나, 자본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이었나?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거기다 또 올 대선에서 경제 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가 쟁점으로 부각되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일단 여기까지 하고, 어찌되었든 정부와 지자체가 협동조합을 육성하겠다고 분위기를 띄우는 건 본질이 무엇이든 간에별로 나쁘지 않다. 협동조합을 해서 손해볼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부화뇌동하지는 말자는 이야기이다. 주체적 의지로 움직여야지, 들러리나 설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협동조합은 누가 하라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 필요를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해결의 의지를 모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그렇지만 꼭 협동조합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건 아니다. 다른 길이 있다면 그걸 선택하면 될 것이고 지금과 같은 방식도 별로 나쁘지 않다면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면 지금 나의 활동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하더라도 후배들도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사회는 예술가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보면서도 자신의 아이가 예술가가 되기를 원하는 부모는 보기 드물다. 그건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게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년에6만명에 가까운 전문예술가 지망생을 쏟아내는 한국사회에서 예술가들의 안정적인 활동을 보장받을 길은 요원할 뿐더러, 잘나가는 연예인이나 세계적인 스타만이 한국의 문화의발전에 기여하는 것처럼 추앙받는 현실과 타협할 길조차 잘보이지 않는다. 문화예술활동은 갈수록 시장논리에 포섭되어가고, 또 대자본의 횡포에 밀리고, 지역에서, 일상에서 치열하게 현장과 결합한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그나마도 더소외되어 있다. 그리고 개인들 뿐 아니라 단체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 후반, 함께하던 문화활동가들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각각 다른 선택을하고는 떠나갔다. 문화예술단체 내부의 전문화, 분업화로 인해 기능인이 되어 예술활동이 보장되는 장을 찾아 이리저리몰려가기도 했다. 단체는 점점 규모가 축소되거나 이름만 남았고, 소수의 활동비는커녕 공간을 운영하는 것조차도 어려웠다. 대부분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개별활동을하게 되었고, 창작의 결과물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나 시공간을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인들이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그게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시도해보는 것, 그러나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우니 모여서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것,그것이 협동조합을 시도해 보자는 이유이다. 허나 사회적기업을 5년간 운영해보고, 지금 또 협동조합을 준비하다보니,협동조합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운 것 같긴 하다. 몇몇운영진만이 아니라 전체 성원들이 정말 같은 꿈을 꾸고, 미래를 준비하면서 함께 책임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별 창작 작업에 익숙한 예술인들에게는 사회적기업 만큼이나 협동조합은 사례도 별로 없고 낯선 영역이니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디를 따라 배워가야 할이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역사가 있다. 90년대 중반까지 문화예술운동 단체는 경제적인 가치보다는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고 대부분공동체적인 생활을 했다. 무엇을 하던 함께 논의해서 결정하고 함께 일했으며, 또 여기서 얻어진 이익도 공평하게 분배했다. 또 새로운 사업을 위해 자금이 필요하면 자신이 갖고있는 그 어떤 것도 서로를 위해,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주저 없이 낼 수 있었다. 지금도 음반을 준비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사전주문을 통해 음반제작비를 감당하기도 하고,후원이나 출자를 받아 공간을 만들어 가는 사례는 많이 있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문화 마인드를가지고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해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것은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이고, 또 늘 필요한 일이다. 협동적 방식으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가고, 우리의 활동을 사회적인노동, 공공적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해 볼만 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문화예술창작자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활동으로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만들어갈 것인지 방향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되고, 또 많은다양한 사례들이 만들어진다면...
그래서 다시 꿈을 꿔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