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 |
[문화시평] 정은혜의 정정렬 바디 <춘향가> 완창 공연
관리자(2012-08-03 16:09:36)
정은혜의 정정렬 바디 <춘향가> 완창 공연(2012. 7. 7(토) 오후2시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
‘정정렬제 춘향가’ 운명 책임질 젊은 소리꾼
최동현 군산대학교 교수
판소리 완창은 본래부터 있던 공연 방식은 아니었다. 판소리의 전통적인 공연 방식은 부분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판소리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부분과 전체가 통일성을 갖지 못하고 앞뒤가 다른 부분이 많다. 또 부분적으로 개작을 하기도 한다. 판소리의 이러한 특성은 판소리를 부분적으로 부를 수 있게 하였다. 물론 공연마다 일부분만을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 자리에서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쉬어가면서, 여러 차례 나누어 불렀을 것이다. 전통시대의 공연은 사랑방이나 대청에서 했을 것이기 때문에, 쉬기도 하고, 음식도 먹으면서 불렀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며칠에 걸쳐서 완창을 하기도 했을 것이고, 부분만을 부르기도 했을 것이다. 판소리에서 완창이 시작된 것은 1968년 박동진의 <흥보가> 완창 발표회 때부터다. 이전까지 판소리 공연은 부분창 공연이 대세였다. 전통예술인들은이른바‘협률사’라는 단체를 조직해서 공연에 나섰는데, 이는 판소리뿐만아니라, 무용과 기악 등도 함께 공연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판소리는일이십 분 정도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므로 소리꾼들은 굳이 완창을 하지 않았고, 자기가 자신 있는 대목만을 불렀던 것이다. 그러다가 판소리가 거의 사멸지경에 이른 1960년대, 박동진은 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완창발표회라는 것을 열었고, 이는 곧 판소리 공연의 대표적인 양식이 되기에이르렀다. 그러므로 완창 공연의 역사는 50년이 채 안 된다.완창은 힘들다. 짧은 <흥보가>나 <수궁가>라면 그래도 낫지만,<춘향가>는 한 자리에서 한 번에 부르기에는 너무 길다. 다 부르려면 짧은 <춘향가>도 다섯 시간이 걸리고, 긴 것은 아홉 시간 정도 걸리기도 한다. 이번에 정은혜가 부른 <정정렬 바디 춘향가>도 일곱 시간이 걸렸다. 쉬는 시간이 두 번 있었으니 그 시간을 빼도 여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여섯 시간이나 전력을 다해 소리를 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겠는가? 완창은 판소리한 바탕 전체를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한 바탕 전체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템포나 강약 등을 전체를 두고 배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하게 부분과 부분을 합치면 전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는 안이한 발상이다.
이번 정은혜의 <정정렬 바디 춘향가> 완창 공연은 성공적이었다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우선 이번 공연에서 정은혜는 건강관리에 실패한 듯 하다. 일곱 시간에 걸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는 충분한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체력이 밑받침이 되지 않으니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없었다. 또 <춘향가> 전체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도 불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분만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바탕 전체를 두고 어떻게 템포나 강약을 배분할 것인지를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할 텐데, 이번 완창은 그러한 고민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판소리를 그대로 부르기에 급급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밋밋한 공연이 되고 말았다. 공연 공간 또한 성량이 작은 여성 창자에게는 극히 불리하였다. 소리꾼의 육성을 그대로 즐겨야 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공연장은 그 취지에 맞는 공간이 아니었다. 북소리의 음량을 목소리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서 북소리만 울리지 정작 소리꾼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청중들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생리적인 문제 때문에 공연 중에들랑날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2부, 3부로 갈수록청중이 줄어든 것은 창자에게는 힘이 빠지는 일이었을 것이다.물론 청중들만 탓할 수도 없다. 일곱 시간이나 앉아 있자니 힘이 들기도 했을 것이며, 중간에 다른 볼 일이 생겨서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이 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 공연은 창자와 청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추임새가 바로 청중이 공연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번 공연의 청중은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은혜가 여전히 가능성이 많은 소리꾼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우선 정은혜는 명창으로서의 좋은 자질을 타고 났다. 맑고 깨끗한 음질, 저음과 고음을 다 소화할 수 있는 성대, 빼어난 감정 표현 그리고 호감이 가는 용모까지 어느것 하나 명창의 자질로 부족함이 없다. 그러기에 그 어려운 <정정렬 바디 춘향가>를 사십도 되기 전에 다 익혀 완창 공연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공연도 세세한 부분을 낱낱이 떼어놓고 보면 별로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런데도 미흡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은혜가 이번 공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정정렬 바디 춘향가>는 현대 <춘향가>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판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춘향가>를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정렬의 소리를 이은 김여란이 작고한 후 오직 최승희만이 이 소리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전라북도에서 최승희를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하여 보존에 나선 결과 최근에는 이 소리를 배워 부르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도 많지 않다. 최승희를 능가하기는 고사하고 뒤따라가기에도 벅차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정정렬 바디 춘향가>라고 하는 귀중한 판소리 유산의 하나가 절멸의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은혜 같은 훌륭한 자질을 갖춘 소리꾼이 있다는 것은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더욱 정은혜에 대한 기대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처음 정은혜를 만난 것은 정은혜의 대학생 시절 어느 판소리 경연대회에서였다. 정은혜는 뛰어난 기량으로 그 어려운 <정정렬 바디 춘향가>를 출중하게 잘 불렀다. 스승 최승희 명창도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 마지않았다. 그 동안 정은혜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학위를 마쳤다. 그러다 보니 소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수도 있다.그러나 이제는 소리에 전념해야 한다. 소리꾼이 소리를 잘 못하면 석사학위, 박사학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우리는 산다. 정은혜에 대한 기대도 마찬가지다. 정은혜는아직 서른 살이 안 되었다. 젊은 만큼 발전 가능성도 많다. 정은혜의 어깨에 <정정렬 바디 춘향가>의 운명이 달려 있다. 정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