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 |
[보는 영화, 읽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관리자(2012-08-03 16:06:37)
당신의 오늘은 안녕하신가요?
송경원 영화평론가
얼마 전 인상 깊은 광고 한편을 봤다. 광고 속 직장인이 때려치우고 싶다고 불만을 토로할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백수는 때려치울 직장이나 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하고, 백수가 방바닥에 누워 직장인을 부러워할 때 그모습을 바라보는 군인은 편하게 누워있는 백수를 부러워한다. 마지막으로군인이 각을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직장인이 말한다.“아, 부럽다.저 때는 그래도 제대하면 끝이었는데.”,‘대한민국에서 OOO으로 산다는 것’이란 제목의 시리즈를 히트 시킨 이 유명 에너지 드링크 광고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결국 삶이란 별반 다르지 않고 특별한 사람은 없다며 우리를 위로하고 있었다. 진부하지만 백번 맞는 말이다. 또 다른 시점에서 이 광고는 우리가 품는 환상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청년들의 부러움이 단순히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심정이라 설명해도틀린 건 아니지만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마음들이 자리한다. 광고의마지막,‘세상사는 게 피로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문구가뜨는 순간 그들의 삶은 하나의 고리 안에 묶인다. 그 청년들, 그러니까 직장인, 백수, 군인은 명백히 서로의 과거이자 미래의 모습들이다.그들은 다른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과거 또는 미래를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환상이란 그와 같다. 우리는 늘 오늘을 만족스러워 하는 대신 어제를 그리워하거나 내일을 꿈꾼다. 그리고 그미래 또는 과거는 언제나 타인이 아닌 자신의 욕망과 바람에서 비롯된다. 당신이 진정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환상이란 현란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 소박하고도 절실한 기대에서 출발한다.
우디 알렌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러한 환상을 절묘하게 자극하고 건드리며 성찰하는 영화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환상을 자극한다.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익숙하지 않는 공기가 사방을 둘러 쌀 때거꾸로‘내’가 무엇인지 분명해질 때가 있다. 우리가 여행을 하는것은 어쩌면 바로 그 공기에 둘러싸이기 위함이기도 하다.‘지금이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는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걸음이다. 최근 우디 알렌의 행보를 보면 그러한 여행의 낭만과 환상에흠뻑 취한 듯하다. 뉴욕을 열렬히 사랑하던 이 냉소와 비관의 대가가어느 순간 훌쩍 유럽으로 건너가더니 유럽 각 도시에 관한 영화를 해마다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작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 이어 이번 <미드나잇 인 파리>를 거쳐 올해는 <투 로마 위드 러브>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세 작품 모두 이전 우디 알렌 영화에 비해발랄하고 희망적이며 꿈과 환상에 잔뜩 취해있다. 어딘지 불안하지만 왠지 설레고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기분. 여행이란, 그리고 환상이란 그런 것이다.
낯선 곳은 그 자체로 환상의 공간과 다름없으니 여기에 몇 가지 환상이 더 겹쳐진다 해도 무에 그리 달라질 게 있을까. 오히려 좀 더 깊이있는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약혼자를 따라 파리로 여행을 온 길팬더(오언 윌슨)에게 찾아온 마법 같은 시간여행 역시 그러하다. 할리우드에서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는 길은 사실 소설을쓰고 싶지만 확신이 없어 망설이는 중이다. 욕망과 현실의 괴리. 흔한일이다. 더구나 말도 안 통하는 약혼녀와 거만하고 재수 없는 그녀의남자친구, 시종일관 자신을 무시하는 장인장모까지.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파리여행은 단순한 휴식 이상의 낭만을 품고 있다. 길이 꿈꾸는 가장 아름다운 시대가 바로 예술가들이모여 서로 교류하던 1920년의 파리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1920년대로의 시간여행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길의환상이자 파리가 꾸는 꿈이다. 여기서 우디 알렌의 탁월한 재치가 발휘된다. 시간여행을 하는 여타 영화들처럼 화려한 이미지들로 치장하는 대신 파리 뒷골목에 20년대의 자동차 한 대를 슬쩍 등장시키는것이다. 판타지 영화의 범람으로‘환상’이라 하면 화려한 특수효과로 점철된 자극적인 이미지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진정한 환상은 도리어 보여주지 않는 지점부터 출발한다. 이 수수한시간여행이야말로 20년대의 파리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다. 기껏시간여행까지 해서 헤밍웨이, 피츠제랄드, 피카소 등을 만났는데 그저 술을 나누고 그들의 조언을 듣는 건 사실 시시해 보인다. 하지만흥분에 찬 길의 표정을 보노라면 그의 황금시대마저 따뜻하고 자유로우며 완전해 보인다. 결코 그럴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온전히 길의 욕망이며 과거의 위인들을 만나는 즐거움이라기보다 차라리 길이 꿈꾸는 자신의 미래이다. 길은 위대한 작가들을 통해 자신의꿈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영화는 모두가 꿈꾸는 황금시대가 다 다르다는 걸 보여주며 지금, 여기,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역설한다. 길이 20년대의 파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여인 아드리아나(마리온 코티아르)는 20년대가 황금시대라는데 동의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만의 황금시대를 찾아 떠나고 그곳에 머물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결심을 보는 순간 길은 깨닫는다. 진정한 황금시대는 자신 안에있으며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힘은 결국 스스로의 발걸음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환상은 그저 환상에머물고 여행은 끝이 난다. 타인을 통해, 생소한 공간을 통해, 자신의미래와 자신이 꿈꾸던 과거를 통해 진정한 자신과 오늘의 모습을 발견했으니 이제 여행을 끝낼 때가 된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환상적인 하룻밤 꿈을 꾸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결국 길은 파리에 머물며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파리, 그리고 작가의 꿈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환상이나 꿈이 아닌 현실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품고 있는 환상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단순한 부러움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의 자신을 사랑할 필요가 있다. 미래의, 혹은 과거의‘내’가 지금의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의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지 않을 이유가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