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 |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관리자(2012-08-03 16:06:11)
여기는 병원학교, 미·친·공을 소개합니다
고혜림 방과후 미디어교사
전북대학교 부속병원 본관 9층, 꼭대기 층 맨 끝 작은 방 하나. 그 곳에 있는 한누리 병원학교를 처음 방문했을 때가 아직도 어제 같은데 벌써 세 학기가 지났습니다. 아픈 아이들이 있는 학교라 왠지 칙칙하고 우울할 것이라는 나의 상상과는 달리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병실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교실, 벽에 붙은 아이들의 사진과이름들, 그리고 아이들의 그림과 글씨들...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유치원과 피아노 학원, 교회또는 개인 레슨 등으로 아이들을 많이 가르쳐 온 나에게도 아픈 아이들이라는 선입견이 나를 좀 두렵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만, 첫 수업을 마치고 난 후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그런 선입견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백혈병이나 골육종 같은 무서운 병과 싸우고 있는 아이들. 학교도 다닐 수없고, 함부로 외출도 잘 못하고, 먹고 싶은 음식도 가려먹어야 하고 또 때로는 항암치료 때문에 우울해 하기도 하지만 정말 이 아이들은 제가 만난 어떤 아이들보다도 순진하고 착하고 열정적인 아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함께할 수업의 매개체는 바로“미디어”였습니다. 미디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어서 무조건 제한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또 그대로 노출시키기에는 위험한, 그런 매체이기에 아이들이미디어를 올바르게 접하고 또 건강한 관점과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우리의 미디어 수업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미디어 결과물들을 직접 제작할 수 있도록 활용교육과 함께 광고나 드라마, 뉴스, 인터넷등을 접할 때의 관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도 많이 가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디어와 더욱 친밀해지고 더나아가 스스로 미디어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수업의 제목을 <미디어와 친구 되는 공간 - 미.친.공.>이라고 정했습니다. 병원학교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아팠기 때문에 학교에 잘 다니지 못한 아이들이 많아서 사회성이 떨어지거나스스로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신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가진 아이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업에는 오히려 좋은 점이 더 많이 부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매체나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좀 서투르고 엉성하지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그대로 결과물에 담기 때문입니다.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성이 약간 부족한 아이들이라서 공동 작업에는 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개인 작업으로 하는 결과물들은 너무너무 재미있게 만들어내는 반면 협동심을 요구하는 작업들은 굉장히 힘들어해서 나중에는 대부분의 결과물을 개인 작업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않고 자신의다양한 감정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준비한 감정카드로 여러 가지 감정언어들을 배우고 스스로의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에는 항암치료를 할 때 겪는 여러 스트레스와 짜증에 대해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그렇지만 병원학교에 와서 친구들을 만나 행복하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디카 주무르기>란 제목으로 여러 사진을 찍는 수업들을 진행하는데, 교실 안에서 찍기도 하고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한번은 다같이 4층 병실로 내려가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는데 한 친구가 병실 문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선생님은 여기 들어오면 안돼요, 우리는 백혈병 걸려서 괜찮은데, 선생님은 안돼요!”라고 말입니다. 순간 그 말이 웃겨서 푸하하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완전 천진난만한 표정과 말투로“우린 백혈병 걸려서 괜찮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얼굴로 웃었지만 마음은 조금 짠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만들었던 시간이 기억납니다. 음악을 전공한 제가 곡을 하나 써서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노랫말을 만들어 붙이기로 했습니다. 병원학교 아이들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수업이 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가사 쓰는 일을 어려워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2명의 중학생 남자아이들이 계속해서 노랫말로 장난을 하기 시작해서였습니다.그 아이들이 쓴 노랫말의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저기 저 앞에 앉아있는 친구를 좀 봐. 골육종에 시달리고 있어. 골육종~~ 골육종~~”둘 다 골육종에 걸린 아이들이었는데 대부분 수업시간에 활달하고참여도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본인들의 병을 희화화하는 노랫말로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그게 이 아이들의 요즘 마음상태인 것 같아서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결국 병원학교 담당 선생님의 도움으로 건전한 노랫말이 탄생되긴 했지만 지금도 그 노래가 생각날 때마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음 한켠이 씁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매 수업시간마다 키워드를 정합니다. 매일의 키워드를 선생님이 외치면 그때 가장 먼저 손을 들며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친구에게 스티커를 한 장씩 줍니다. 또 수업시간에 열심히 참여하거나 선생님의 질문에 좋은 답변을 했을 때, 출석했을 때 등등 여러 칭찬할 만한 순간에 스티커를 줍니다. 그 스티커를 가장 많이 모은 친구에게 학기말에 선물이 돌아갑니다. 아이들은 스티커에 굉장한 집착을 보입니다. 심지어 스티커를 모으려고 미디어 수업이 있는 목요일 아침마다 수업시간인 10시 이전에 오려고 엄마를 달달 볶아서 학부모님의 원성을 산적도 있습니다. 지각을 안 하면 스티커가 무려 3장이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아이들의 목표가 선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고 열심히 참여해서 받은 선물인데도, 아낌없이 다른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선물 그 자체를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참여하는 그 자체를 목표로 해준 아이들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모릅니다. 카메라를 던져주고 사진을 찍어오라고 하면 미친 듯이 열정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아이들. 선생님이 찍은 사진과 똑같은 사진을 찍어오라는 미션에 이 방향 저 방향에서 다양한 구도와 앵글을 사용해 고민 고민하며 사진을 찍어오는 아이들. 아이들이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가끔 행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도 저와함께 미디어와 친구가 되어가는 그 공간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꿈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꼭 사진가나 앵커, 피디, 기자 같은 미디어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미디어 수업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알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잠깐 아팠던 기억이 불행하게 만은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꼭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