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 |
[기획특집] 내가 읽은 이책
관리자(2012-08-03 16:04:41)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지만 언제나 닮고 싶은 당신, 명사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때면 궁금한 것이 참 많습니다. 2012년 여름 문화저널은 그 많은 것들 중에서 마음의 양식에 대해 명사들에게 물었습니다.
곽동석 국립전주박물관 관장 - 『소리꾼』 최동현 저, 문학동네 펴냄
다양한 소리꾼의 일화와 소리의 현장을 그대로 옮긴 듯한 사설(“판소리 한 대목”)은 판소리를 멀게만 느꼈을 독자와의 간격을 바짝 좁혔다. 판소리학회장을 역임한 저자는“소리꾼”을 키워드로 전승예술로서의 판소리가 지닌 특징을 보여준다.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광대가 갖춰야 할 요건으로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를 꼽았다. 이 중에서 소리꾼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바로 득음이다. 저자는 소리꾼이 득음하기까지의 혹독한 과정을 생생한 일화를 통해 보여주고 득음후에도 계속되는 독공(소리공부)의 노력을 묘사했다. 또한 진정한 소리꾼은 자신만의 사설을 창조하여 독창적인 바디를 가짐으로써 비로소 예술가의 반열에 올랐음을 강조한다.
김형석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작곡가 - 『은교』박범신 저, 문학동네 펴냄
이적요는 자신의 늙음과 대비되는 은교의 젊음을 보며 관능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자신을‘할아부지’라고 부르며, 유리창을 뽀드득 소리 나게 닦는 은교의 발랄한 모습을 보며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던‘청춘’을 실감하기도 했다. 한편, 서지우는 은교를 바라보는 이적요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은교에 대한 집착이 커져갔다. 정에 넘치던 사제지간이었던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는 은교를 둘러싸고 조금씩 긴장이 흐르기 시작하고, 열등감과 질투, 모욕이 뒤섞인 채 아슬아슬하게 유지된다. 그리고 서지우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후, 이적요는 조금씩 생명력을 잃어갔다. 이적요는, 정말 서지우를 죽인 걸까. 이적요는, 정말 한은교를 사랑했던 걸까.
박성우 시인 - 『적막 소리』 문인수 저, 창비 펴냄
서정시의 새로운 경지를 열어온 문인수 시인의 여덟번째 시집. 불혹을 넘긴 나이에 늦깎이로 등단한 이후 미당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황혼의 전성기”(정현종 시인)에 이른 듯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주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폐경기를 모르는 시인”이라는 젊은 시인들의 존경 어린 감탄에 걸맞게 “한편 한편 아름답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신경림 [추천사])는 빼어난 시편들을 선보인다. “꿈틀대는 삶의 현장”(황동규 시인)에 밀착된 문인수의 시에는 무엇보다도‘사람 냄새’가 배어 있다.“사람하고 헤어지는 일이 늙어갈수록 힘겨워진다. 자꾸,못 헤어진다”(‘동행’)고 말하는 시인은“맹지(盲地) 위 옛 폐가”(‘새들의 흰 이면지에 쓰다’)나“2011년, 아직도 폐목을 때는”“교외 취락지역”(‘퀵서비스 사내’)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주변인들을 애틋한 눈길로 지켜보면서“울음이 울음을 거뭇거뭇 삭이고, 어둠이 어둠을 그렇게 잠재우”(‘개펄’)며“내리막엔 다시 한번 박차를 가하고 싶은 힘이있”(‘내리막의 힘’)는 삶의 의미를 찬찬히 되짚어본다.
박칼린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뮤지컬 음악감독 - 『뉴욕이 사랑한 천재들』 조성관 저, 열대림 펴냄
뉴욕을 무대로 활동한 여섯 명의 천재들을 통해 도시 뉴욕을 들여다본다. 센트럴파크 옆‘뮤지엄 마일’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을 비롯해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줄지어 있다. 엄청난 규모의 센트럴파크와 허드슨 강은 뉴요커의 삶에 자유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지하철역에서조차 팝아트의 거장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20세기 미국 예술을 대표하는 앤디 워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4분 33초>라는 혁명적인 음악을 작곡한 존 케이지,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이자 피아니스트 빌리 조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작가 아서 밀러, 청소년의 소외와 순수의 상실을 그린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J. D. 샐린저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직접 찾아다니며 담아낸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변영주 영화감독 - 『흑백』,『안주』 미야베 미유키 저, 문학동네 펴냄
가슴 속 큰 상처를 간직한 소녀 오치카. 숙부를 도와 가게 일을 돕는 어느 날, 우연히 손님 도키치와 바둑을 두게 된다. 도키치 역시 남에가 말할 수 없는 아픈 과거를 간직한 남자였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치카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엔 갖가지 불행과 죄와 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흑백의 방에서 이야깃거리를 가진 손님을 초대해 괴담대회를 열게 된다. 그리하여 초대된 손님들은 저마다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자신의 아픔을 치유해 간다. 흑백의 방에서 벌어지는 말하고 듣는 행위는 놀라운 힘을 갖는다. 사랑하는 마음,미워하는 마음, 부끄럽고 껄끄러운 이야기들을 말을 통해 치유 받는다. 오치카 역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해 간다. 일본 에도시대 흑백의 방에서 펼쳐지는 상처와 치유 이야기는 오싹하면서도 아련한 괴담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유영대 고려대학교 교수 - 『아프리카의 뿔』 하상훈 저, 문학동네 펴냄
탄탄한 구성과 안정된 문장, 거침없는 전개와 폭깊은 내공으로 무장한 신인 작가 하상훈의 첫 장편소설 <아프리카의 뿔>. 하종산의 <코끼리는 안녕?>과 함께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으로 공동수상한 작품이다.“가장 모범적인 장편소설” 이라는 평으로 심사위원들을 사로잡았다는 후문. 우리에겐 너무 먼‘소말리아’이야기를 우리 이야기처럼 풀어놓은 이 젊은 작가의 공력이 새삼 놀랍다. 강대국의 지배 욕망에 의해 약소국이 일방적으로 피해자로 전락하거나 경제적으로 이용되는 현실을 박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이 작품이 가진 미덕 가운데 하나다. 원양어선 동일13호를 추격·납치하면서 전개되는 소말리아 해병대의 해적 활동은 우리나라 어선 동원628호 피랍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인질로 잡힌 선원들의 비참한 시간을 그려내고 있으면서도 그 너머를 보고 있다.
이휘현 KBS전주방송국 PD -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저, 노마드북스 펴냄
저자는, 한국은 전쟁 이후의 황무지에서 약 30십 년 동안 초고속 압축성장을 통해 세계적인 경제발전은 가져왔지만, 상대적으로 인문학적 교육을 소홀히 해 삶의 질과 정신적 가치를 상실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의 예전의 찬란한 인문학적 자산과 문화유산을 요즘 시대에 맞게 다시 새롭게 부활하자고 초지일관 주장한다. 그는 한국에서 인문학 교수로 살아오면서 느낀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곁들여 인문학적으로 풀어낸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장자의 나비, 시대통찰의 <홍루몽>, 다산 정약용의 인문서들, 프리모 레비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 등이 그 감성적 읽기의 대상도서들이다. 특히‘하버드에서 만난 사람들’편에서는 저자가 하버드 대학원 시절에 만나 함께 연구하며 인연을 맺어온 세계적인 예술가와 학자들에 대한 일화와 대담들을 소개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요요마, 현각 스님 그리고 노암 촘스키 MIT교수 등과의 대화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성환 전 전라북도 홍보기획과장/귀농 준비 중 - 『삼저주의』 구마 겐고, 미우라 아쓰시 저, 안그라픽스 펴냄
미우라 아쓰시는 최근 일본에서 인기 있는 남성이 키 크고, 연봉 높고, 고학력인 사람이 아니라 수입이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삼저적인’사람이라는 조사 결과에서‘삼저’라는 콘셉트를 떠올렸다. 막연했던 생각은 오늘날의 도시와 건축을‘삼저’와 관련지어 바라보는 작업으로 구체화됐다. 이들은 건물을 새로짓는‘신축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예고한다. 그리고 그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방법으로‘리노베이션’과‘재사용’을 권한다. 미우라 아쓰시는 발품을 팔아 발견한 고택의 내부를 필요한 부분만 리노베이션해서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앞으로는 이러한 고택이 많은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고에 대한 반성은 한국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그동안의 뉴타운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집은 많아지지만 정작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집을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거권을 인권 차원에서 다루며 무분별하게 진행된 도시 재개발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