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2.7 |
[임안자의 내가 만난 한국영화]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그리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 2
관리자(2012-07-05 11:32:48)
우리 영화에 쏟아진 로카르노의 기립박수 비냘디의 욕심과 그 후유증 2002년이 되면서 로카르노 영화제는 A급 영화제로 바뀌었다. 전 집행위원장 뮐러가 오랫동안 시도했으나 스위스 영화계의 반대로 이루지 못한 소원을 비냘디는 일 년 만에 실현한 것이다. 사실 로카르노 영화제는 아름다운 주변 환경이나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높은 수준 그리고 관객의 높은 참가율 등으로 큰 영화제가 될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영화산업이 약한데다 언어권의 분리로 인한 영화시장의 한계 그리고 정부나 시의 불충분한 지원 때문에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러기에 역대 집행위원장들은“작은 규모의 행사에 알찬 프로그램”을 미덕으로 삼고 주로 젊은 감독의 초기작품에 힘을 기울였던 것인데 국민성의 차이였을까? 이탈리아 출신인 뮐러 집행위원장도 그랬지만 비냘디 역시 A급 영화제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빨리 모험에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그가 2001년에 발표한 경영목표는 대부분 쓸모가 없게 됐다. 예를 들어 그는 내 인터뷰에서“영화제를 더 키울 생각은 없다”던 말과는 달리 불과 일 년 사이에 영화제의 몸집을 두 배로 늘렸다. 그가 미리 발표한 인더스트리 오피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기존의 주상영장‘훼비’(3천2백석) 옆에‘라 살라’(960석)와‘라 알트레 살라’(5백석)의 두 상영관이 새로 문을 열었는가 하면 훼비 뒤의 빈터에는 관객과 영화인들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텐트와 목조의 이동식 포럼 스페이스가 들어섰다. 그리고 구조 확장에 따라 영화제 부문은 15개로 나눠지고 선정 영화의 숫자는 2년 사이에 1백 편이 더 늘어나 2003년에 초청된 영화는 모두 440편에 이르렀다. 지금까지는 구조적 변화에 대해 말했지만 질적 변화도 적지 않았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졌던 변화는 프로그램의 중점과 방향이 바뀐 점이다. 비냘디는 독립제작의 작가영화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전통을 뒤집어“나는 영화는 꼭 예술 형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의 여러가지 기능 가운데‘소통의 영화(communicativecinema)’를 중요시 한다”며 예술성 보다 소통에 무게를 두는 쪽으로 프로그램의 방향을 잡음과 동시에 정치성 테마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 결과 2002년에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들이 대대적으로 소개됐으며 15편의 아프카니스탄 영화 특별전이 처음으로 열렸다. 아무튼 로카르노 영화제는 A급 영화제가 된 이후 관객증가율이 20%를 넘을 정도로 팽창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관객을 수용할 상영관이 충분치 못해 세 번 상영할 영화를 2회에 그쳐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그러자 뷰에나 비스타 스위스 대표는 어느 인터뷰에서“로카르노 영화제는큰 영화제 가운데 작은 영화제가 되느니 보다는작은 영화제 가운데 큰 영화제로 남는 게 훨씬낫다”며 급성장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한마디로 로카르노 영화제에 A급이 어울리지 않다는 소리였는데, 그의 비평에 동조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그러나 가장 큰 어려움은 칸, 베를린, 베니스,상, 세바스챤 등 오랜 정통을 가진 A급 영화제들과의 치열한 경쟁이었다. 특히 로카르노 영화제와 2주 간격을 두고 시작되는 베니스 영화제와는 비냘디의 말마따나“피나는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다.”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세계초연의 영화를 빨리 찾아내느냐인데 고질적으로 예산부족에 시달리는 로카르노 영화제로선 아무래도벅찬 일이었다. 베니스 영화제가 수상금액을 올리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로카르노 영화제도2001년부터 5만 프랑에서 9만 프랑으로 올렸고정부와 시에서도 지원비를 두 배로 올렸다. 그럼에도 전체 경비의 반절을 후원금으로 충당을 해야 할 정도로 경제적 조건이 충분치 않았다.그런데다 A급 영화제가 되려면 좋든 싫든 허리우드의 영화와 스타가 절대 필요한데 실용주의에 깃든 스위스 영화인들은 비싼 스타들을 불러들이는 비냘디의 인기위주의 비싼 행사 치레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김기덕 감독 영화에 쏟아지는 박수 앞에서 말했듯 2003년 로카르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도 들어있었다. 부집행위원장 테레사 카비나의 말에 의하면“이미 상 세바스찬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를 김 감독이 로카르노에 우선권을 줌으로 겨우 로카르노에서 세계초연을 할 수 있었다.”아무튼 카비나는 비냘디를 대신하여 부산영화제에 해마다 들렀을 뿐 아니라 4월에 중국과 일본을 방문할 때도 영화진흥위에 들려 새로운 작품의 선정작업을 했다. 그런 면에서 일본과 중국을 돌면서도 한국에 들르지 않았던 뮐러 집행위원장에 비하면 비냘디는 한국영화 발굴에 관심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아무튼 90년대에 박광수 감독의 <그 섬에 가고 싶다, 1993>와 <이제수의 난, 1999>이후 거의 잊혔던 한국영화를 로카르노에서 다시 만나는 건 기쁜 일이었다. 2001년에 문승욱 감독의 <나비>가 경쟁부문에 초대되어 기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2년에는 비경쟁부문에서 김응수 감독의 <욕망> 시사와 더불어 전주영화제 3인3색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문승욱, 스와니 노부히로, 왕샤오 솨이 감독의 <전쟁 그 이후>가 비디오 작품 부문에서 미국의 두어르킨 감독의 <사랑과 다이아나>와 공동으로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2003년에 초청된 영화는 세 편으로서 <봄 여름…>과 함께 박경희 감독의 <미소>와 김진아 감독의 <그 집 앞>이“오늘의 시네아스트”부문에서 상영됐다. 현재 하버드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김진아 감독은 작위적인 다큐멘터리 작품 <김진아의 비디오 일기,1996-2000>로 유럽의 주요영화제에서 크게 주목 받은 젊은 세대의 유망주로, 전적으로 미국에서 만들어진 극영화 <그 집 앞>은 상영시간대가적절치 않아 관객이 많이 들지는 않았으나 평론가들로부터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다.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은 8월 13일 오후 2시 기자들의 전용상영관‘크르스’에서 첫 상영식을 가졌다. 그날 아침“김 감독과 고바야시마사히로 감독들의 작품이 대상으로 예상된다”는 AFP 통신의 기사가 나갔는데, 그래서 그런지상영관 앞에는 많은 기자들이 38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을 무릅쓰고 미리부터 줄지어 기다리고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11시에 열린 김 감독의 공식 기자회견에는 국내외의 많은 기자들과 부산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 이건상 영진위 국제부장과 국제영화제 담당자 김하원, 씨네21 정한석 기자 그리고 <봄 여름…>의 해외 배급사 시네클릭의 서영주 대표, 판도라 제작사의실무자가 참가했다. 김 감독은 기자회견이 끝난뒤 영화제의 집행위원들과 간단이 점심을 한 다음에 오후 2시 15분 주상영장 훼비에서 관객들과 만나는 첫 상영을 가졌다. 그날 훼비(3천석)는 관객으로 꽉 차있었으며 상영이 끝나자 청중은“브라보!”를 외치면서 몇 분간이나 기립박수를 했다. 김 감독은 관객의 긴 박수에 감동한 듯 관중을 향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여러 번 고개를 숙였다. <봄 여름…>은 관객의 인기가 높았던 만큼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도 많았다. 내가 통역한 인터뷰 기자는 모두 23명으로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이들은 하나같이 김 감독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면서“대상은 당신의 것”이라고 장담했다. 한국에서는 김 감독이 해외영화제를 노리고 오리엔탈리즘의 또는 엑조틱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비평이 떠돌았지만 현지 기자들의 반응에서 그런 낌새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기자들은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와 비교하면서 훌륭한 불교주제의 영화는 항상 한국이 앞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에 대해 통역자로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김 감독은 23명 기자들의 비슷비슷한 질문에 한 번도 같은 대답을 되풀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한번은 그에게“당신의 순발력에 깜짝 놀랐다”고 하자 그는“통역하는 사람이 지루하지 않게 해주기 위해서”그랬다고 가볍게 넘어갔지만, 그보다는 그의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반복을 싫어하는 그의 천성 때문인 것 같았다. 여성 테마에 빼앗긴 대상 로카르노 영화제는 8월 16일 수상자들의 이름을 발표했다. 대상은 파키스탄 출신의 여감독 사비하 수마르의 영화 <누가 처음 돌을 던질 것인가?(키모스 파니)>에 주어졌다. 그러나 영화제동안 내내 대상의 수상작품으로 여겨지던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은 본상이 아닌 네팻상(아시아 영화에 주는 상), 청년비평가상, 돈키호테상(영화클럽상), 국제평론협회상을 받는 것으로 그쳤다. <키모스 파니>는 1970년대 말 군사정권밑에서 힌두족에 속한 한 어머니가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된 아들의 학대에 시달리다 자살에 이르는 비극영화다. 대상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발표문에는“영화생산이 전무하고 여성차별이 심한 파키스탄에서 여성감독이 이슬람 근본주의로 희생된 여성의 운명을 유연하게 재조명한 고발정신”이 선정 이유로 적혀있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대상작은 파키스탄과 직접 상관이 없는 영화였다. 수마르 감독은 오래 전부터 서구에서 살고 있는데다가 어머니 역의 주인공은 인도 출신의 배우였다. 그리고 영화의 모든 작업은 서구의 제작진을통해 서구의 자본과 기술로 가능했다. 그럼 감독의 연출력이 뛰어난 수작이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상작으로 뽑힌 것은 비냘디의 영화 정책과 무관하지 않았다. 2003년의 영화선정을 보면 종교적 대립과 분열, 소수민족과여성에 대한 차별대우, 청소년 문제 등 한마디로사회성이 짙은 영화들이 많이 초청됐고 동남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동유럽 영화들이 경쟁부분의 다수를 이뤘다. 비냘디는 기자회견 자리에서“올해 새로운 경향은 없다. 다만 유럽에서 멀리떨어져 있는 지역의 서구에 알려지지 않은 감독들의 영화에 관심을 두었고, 사회적, 정치적으로위기를 맞고 있는 인간문제를 중요시했다”고밝혔는데, 비냘디는 2002년에 인권부문을 새로열고 인권에 관한 심포지엄을 주선하고 특히 이방면의 여성감독 영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에 대해 어느 기자는“로카르노 영화제가 유엔을 닮아간다”고 비아냥거렸으나 비냘디는 거기에 아랑곳없이 더욱 제3세계 문제, 특히 여성문제에 파고들었다. 물론 인권문제는 시대와 장소를 가릴 것 없이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예술적으로 설익은 영화를 가지고 인권이나 여성억압 문제를 들먹이는 건 어불성설이며 자칫하면 정치적 도그마에 빠질 우려가 많다.2003년 8월 16일, 로카르노 영화제의 페막식은대상작품의 선정문제로 어수선했다. 특히 선정작업 과정에서“비냘디의 입김이 들어갔다”는소문이 나돌면서 여기저기서 항의가 터졌다. 그런가 하면 피아짜 그란데의 무대에 오른 비냘디를 향해 청중은 과거처럼 큰 박수를 치지 않았고 대상을 받는 여감독을 향해서는“푸이!”(불쾌, 혐오의 표시)를 외치며 조롱의 휘파람을 불었다. 그뿐 아니라 수상 발표가 나던 날“버라어티”의 기자는“공식상영 때 기립박수를 받고기자 시사 때조차 박수갈채를 받은, 올해 경쟁작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았던 <봄 여름 가을 겨울그리고 봄>은 심사위원들에 의해 배제되었다”는 글을 발표했고 스위스의 국영 텔레비전과 라디오 그리고 주요 일간지“츄리히 자이퉁”에서는“심사위원들이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고비평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제네바의 일간지“트리뷴 드 제네브”의 기자 엠마뉴엘 쿠에노는“최근 로카르노에서 행해지는 우수작품을 곡해하는 잘못된 경향을 불신해야 한다. 지난 해에구스트 반 산트의 영화에 대한 오판이 있었음에도 이번 김기덕의 <봄 여름…>에서 또 실수를 한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영화야말로 경쟁부문에서 제일 우수했을 뿐 아니라 2003년에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주요한 작품이었는데 말이다.”라고 적었다.결론적으로 말하면, 비냘디는 로카르노 영화제를 한 수준 더 높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한 게사실이다. 보수적인 스위스에서 여성영화인의위상을 높인 점과 여성 감독의 작품발굴에 힘을기울였던 점은 높이 평가될 만했다.하지만 2003년의 대상 스캔들이 터지면서 그의 평형을 잃은 영화정책과 팽창위주의 급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그에 실망한 비냘디는 결국2005년 로카르노를 떠났다. 그리고 로카르노 영화제는 A레벨에서 벗어나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