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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7 |
[보는 영화, 읽는 영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관리자(2012-07-05 11:32:16)
동성애자들의 달콤쌉싸름한 현실을 만나다 김경태 영화평론가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한 게이 감독 김조광수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30대 게이들의 일상을 정밀하게 묘사한 퀴어 장편 로맨틱 코미디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로 돌아왔다. 그동안 단편 <소년, 소년을 만나다>로 십대 게이들을, <친구사이?>로 20대 게이들의 현실을 특유의 경쾌한 톤으로 그려낸 그의 솜씨는 이 영화에서 만개한다. 의사인‘민수(김동윤)’는 동성애자이다. 그는 동료 레즈비언 여의사 ‘효진(류현경)’과 1년 후의 이혼을 전제로 계약 결혼을 한다. 민수는 가족들의 결혼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효진은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이 결혼 사기극을 꾸몄다. 그들은 민수의 부모님으로부터 아파트 한 채를 선사받고 그곳에 신혼살림을 차리지만, 사실 효진은 자신의 10년된 애인‘서영(정애연)’과 맞은편 아파트에서 산다. 얼마 후, 민수는 미국교포‘석이(송용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들켜버린 석이는 혐오하는 그들의 눈길을 피해 한국으로 도망쳐온 것이다. 영화에서‘벽장 안에 숨어있는’게이인 민수는 직장 / 결혼 / 가족이라는 이성애적 테두리의 압박감과 자신의 끼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는 게이합창단(게이 커뮤니티)에서의 해방감 사이에서 갈등한다.‘다중이’로 살기를 강요하는 동성애 혐오적인 한국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로 점철된 그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안전하고 합리적인 수단으로 결혼을 택한 것이다. 즉 예정된 이혼 뒤에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주변의 아무런 의심 없이 (게이들의 천국으로 가정된) 프랑스로 떳떳하게(?) 도망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게이 친구들은 민수의 선택이 달갑지 않다. 그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친구들의 불만과 게이합창단 공연연습에 나오지 않으면 병원에 찾아가서 머리에 핀을 꽂겠다는 귀여운 협박에서 알 수 있듯이, 친구들은 민수에게 힘이 되어 주고자 한다. 따라서 그의 도피는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의 소중한 게이 친구들을 포기하는 선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결한장>의 가장 큰 미덕이 있다. 바로 게이 커뮤니티를 긍정적이며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노력이다. 그동안 한국의 동성애자 재현은 그들의 커뮤니티를 드러내는데 있어 인색했다. 박재호 감독의 선구적인 게이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1996)에서 잠시 등장했던 조력자로서의 게이 커뮤니티 역할은 이후의 퀴어영화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극단적인 예로,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2010)의 게이 커플‘태섭’과‘경수’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를 운명적인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한다. 게이 커뮤니티가 배제된 운명적 만남에는 게이들의사랑에 성애적 기운을 지워내려는 혐의가 짙다. 그나마 존재하더라도,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2006)에서의‘게이 호스트바’처럼온기 대신 살아남고자 하는 독기로 가득찬 공간이 전부였다. 반면에 <두결한장>의 민수는 동료 게이들의 응원 속에서 사랑을 키워간다.한편, 시종일관 편안한 웃음을 유발할 것 같은 게이 로맨틱 코미디에 노골적인 호모포비아의 등장과 그로인한 불행한 사건으로 관객들을 불편하게 한다. 장르에 균열을 일으키는 이러한 설정은 동성애자들의 현실을부여잡기 위한 의도된 포기이다. 물론 엄숙한 장례식장 장면을 유머러스하게 재현하며 침울한 분위기를 금세 반전시키지만. 어쩌면 감독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시선으로 게이들의 현실을 포착해내고 있는 것이다. 실존하는 게이 코러스팀‘지보이스’를 픽션의 세계에 소환했고‘대근 /티나(박정표)’캐릭터는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2011)의‘영수’를참조하며 실재의 힘을 차용하듯이 말이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외피는 이성애자 관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기 위한 선택이기에 앞서, 감독의 눈에 비친 게이들의 유쾌한 실제 삶이‘로맨틱’하고‘코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게이 하위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을 넘어게이 은어들을 애니메이션 효과까지 동원하며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동성애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그들 쪽으로 우리가한 발짝 더 다가가야 한다고 말한다. <두결한장>이 기존의 한국 퀴어영화와 궤를 달리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섹스에 대한 강박이 없다는 것이다. <후회하지 않아>를 비롯해 김경묵 감독의 <줄탁동시>(2011)에서는 게이의 몸이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그것이 인물들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소준문 감독의 <REC>(2009)에서는 게이섹스가 셀프 카메라 기법으로 포르노그래피처럼 재현되어 관객을 불편하게 한다. 반면에 <두결한장>에서 게이들은 돈과 권력에 결부된 섹스에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15세이상관람가’인 만큼 수위 높은 섹스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소위‘우정박’, 즉 친구끼리 부담 없이 하는 섹스에 대한 가벼운 농담이 오고가며그 가치관만큼은‘19금’을 넘어선다.“한번 대주지 그랬어? 금테 둘렀니? 난대줬다.”며 섹스를 환대의 의미로 변주한다. 끝으로 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차를 짚어 보겠다. <REC>에서 결혼 적령기의 게이가 여성이랑 결혼하는 것은 동성 애인과의 이별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성애적 결혼은‘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슬프게 치장하기 위한 필연적 사건으로 한정되어 있다. 게이감독이송희일의 <후회하지 않아>에서‘재민’의 어머니는 재민이 게이라는사실을 알면서도 정략결혼을 강요당한다. 어머니는“섹슈얼리티를 모를만큼 무식하지 않아. 네가 남자랑 자든 상관없어. 그래도 결혼은 해”라며 도착적인 태도로 재민에게 결혼을 강요한다. 여기에서 결혼은 성애적기반에서 비껴난 채 물신화 되어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혐오가 묻어난다. 반면에, <두결한장>에서는 그‘결혼’이 지닌 낭만적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성애자 간의 결혼을 축복하듯이, 서로 사랑하는 동성애자들이 맺는 혼인을 환영한다면 말이다. 영화가 현실적인 노선을 지향하다가, 막판에 민수와 석이, 효진과 서영이 합동으로 하는 동성결혼을 보여주는 판타지적 장면으로 무리수를 던지는 것은 감독의 그런염원이 담겨있기 때문이다.사족의 말씀 하나.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 퀴어영화 <백야>(2012)를 들고 온 이송희일 감독은 <후회하지 않아> 때나 지금이나 배우 캐스팅하는일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런 의미로 <두결한장>에 출연한 배우들, 주조연 배우들을 포함해 카메오 출연으로 무언의 지지를 보내준 모든 배우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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