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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7 |
클래식 뒷담화
관리자(2012-07-05 11:31:29)
천상의 음악을 완성한 팔레스트리나 문윤걸 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영상창업대학원 교수 팔레스트리나. 어떤 분들에게는 낯선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과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이 생각나신다구요?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트리나는 유럽 르네상스 후기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유럽 클래식 음악사에서 절대 빼어 놓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랍니다. 팔레스트리나의 본 이름은 지오반니 피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ia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1594)랍니다. 아주 이름이 길죠.‘팔레스트리나 지방사람 지오반니 피에르루이지’라는 뜻입니다. 팔레스트리나는 로마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왜 원래 이름 대신 지역명인 팔레스트리나로 불리고 있는 것일까요? 1600년 이전 시대에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의 이름에 출신 지역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원래 이름은 사라지고 출신지인 팔레스트리나만 그의 이름으로 영원히 남게 된 것입니다. 마치‘안성댁’이라고 불렀던 것과 비슷한가 보네요. 팔레스트리나가 왜 유럽의 음악사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인물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활동하던 시기 유럽의 정세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팔레스트리나가 활동하던 시절 유럽은 극심한 혼돈에 빠져 있었습니다. 팔레스트리나가 전성기를 보낸 16세기 중후반, 유럽에서는 백여 년 전부터 시작된 르네상스 열풍이 휩쓸고 있었고, 지동설과 신세계의 발견같이 지금까지 종교적인 신념에 바탕을 둔 지식과 믿음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하는 여러 사건들 때문에 변화의 바람이 심하게 일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트리나가 태어나기 직전 유럽을 혼돈으로 몰아넣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면죄부 비판 대자보로 시작된 종교개혁이 그 것입니다. 가톨릭의 부패에 대항하는 종교개혁은 전 유럽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지방의 작은 소란 정도로여겼던 교황청에서도 이것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는 것을 보고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독일의 종교개혁 운동에 대항하여 교황이 직접 주도하는 가톨릭교회 자체의 종교개혁 운동(이것을 반종교개혁운동이라고 합니다)이 일어나게된 것입니다. 교황청 스스로 그동안의 부조리와 부패는 물론 경건하지못했던 모든 종교적 행동을 직접 개혁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교황은 1545년부터 1563년까지 이탈리아의 북부도시 트렌트에서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을 모아 공의회를 열었습니다.이 회의에서는 가톨릭의 세속화에 대한 반성과 함께 종교적 정화를 위한 많은 주제들을 다루어졌습니다. 급기야 트렌트 공의회 기간 중인1555년, 교황 바울 4세는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모든 것들은 가차 없이 추방한다는 엄격한 칙령을 발표했습니다(이 칙령으로 우리가 잘 아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훌륭한 벽화가 나체라는 이유로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어 옷을 덧입혀 그려 넣는해프닝이 일어났지요).트렌트 공의회에서는 당시 교회음악에 대해서도 심각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첫째, 미사 음악에 샹송이나 세속적인 선율(대중음악이나 민요 같은)을 사용하여 교회음악이 세속화되고 있다는 점, 둘째, 지나치게 많은 성부로 다성음악을 사용하여 가사를 전혀 알아들을수 없고 의미파악이 안 된다는 점, 셋째, 전례에 사용되는 음악이 지역마다 자기 마음대로 변형시켜 통일된 전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점, 넷째, 소리가 큰 시끄러운 악기들을 지나칠 만큼 과도하게 사용한다는 점, 다섯째, 교회의 음악가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해 불경스럽기까지 하고 음악적으로도 발음이나 창법이 엉망이라는 점 등이었습니다(이때 팔레스트리나 역시 성직자가 아님에도 교회음악을 다루는 이가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교황 성당인 베드로 성당에서 쫓겨났습니다).당시에 유행하던 음악적 양식이 바로 다성음악인데 다성음악이란 여러성부가 하나로 어우러진 음악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4부 합창이라고 하면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처럼 4개의 성부가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다성음악이 이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다성음악이 오늘날 합창하고 다른 점은 합창음악은 여러 성부가 화성적으로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반해 당시의 다성음악은 전체적인 조화나 구도를 무시하고 그저 여러 개의 선율을 함께 부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쓰일 미사곡은 그레고리안 성가의 선율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일반 민중들이 부르는 세속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았고, 또 하나의 가삿말을 가지고 각 성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내용의 가삿말을 동시에 불러서 무슨 말인지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심하게는 한 성부는 라틴어로 부르고, 다른 성부는 프랑스어로, 또 다른 성부는 그 지방 토속말로 부르는 등 정해진 음악적 규칙 없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요즘 합창이야 주로 4성부, 즉 4개의 파트로 노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당시의 다성음악은 8성부, 12성부, 그보다 더 한 것들도 많았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8명, 12명이 모두 제각각 자기 노래를 다른 파트와 상관없이 마음껏 부른다고 생각해 보면 그 음악이 얼마나 시끄럽고괴상할지 짐작이 가시겠지요. 더욱이 가장 경건해야 할 가톨릭교회의미사에 이런 음악이 사용되었다고 하니 그 미사 분위기가 어땠을까요?그래서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회에서 사용되는 음악에 대해 뭔가 단호한조치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하였고 모든 다성음악을 금지하고 오직 단성부 미사곡만 허락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음악의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단히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단성부 미사음악만 허용된다면 그것은 100년 전 음악적 양식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었거든요. 당시의 다성음악이 비록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 와중에서음악가들은 여러 가지 소리들이 겹쳤을 경우 그 중에서 잘 어울리는 소리들을 골라내어 선율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알아가기도 했고, 어떤 음들을 서로 겹쳐질 때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지를 찾아내기도 하면서 선율의 전개방법과 화성의 규칙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교회의 간섭으로 유럽 음악의 발전이 기로에 서 있을 때 이를 구해낸인물이 바로 팔레스트리나입니다. 팔레스트리나는 다성음악이 가톨릭교회의 권위를 위협하지도 않고 가사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진실한 신앙심과 경건함을 담아 천상의 음악을 만들어 낼 수있다는 것을 직접 작품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트렌트 공의회의 마지막 해인 1563년에 6성부 미사곡인‘교황 마르첼루스 미사’를 작곡하여 연주하였습니다(이 미사곡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쉽게 들을 수있습니다. 꼭 들어보세요). 이 작품은 물 흐르듯 유려한 각 성부의 선율들이 중세음악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아주 순도 높은 경건함을 잘 표현하고 있어 다성음악 양식이 얼마나 경건한 신앙심을 표현할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팔레스트리나의 이 한 작품은 다성음악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트렌트 공의회의 결정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마침내 트렌트 공의회는교회음악의 작곡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단지“하느님의 집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올바르게 불려지기 위해서 불순하거나 음탕한 것은 무엇이나 제거되어야 한다”정도로 결론을 내려 다성음악은 폐지되지 않고오히려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저는 유럽음악사의결정적 10대 명장면을 꼽으라면 그중 하나로 이 장면을 꼽고 싶습니다).이렇게 팔레스트리나는 천상의 음악을 완성한 교회음악의 구세주, 가톨릭 음악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흔히‘a cappella’(아 카펠라)를 반주가 없이 목소리로만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아 카펠라’의 원 뜻은‘교회 풍으로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이때‘교회 풍으로’란 바로 팔레스트리나의 작품을 말합니다. 이만큼 팔레스트리나는 무반주 성악으로 이루어지는 교회음악의 대가였습니다.그러나 팔레스트리나의 진짜 가치는 그가 가톨릭 음악의 대가였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베토벤이 고전주의 이전의 음악적 어법을 공부하기 위해 팔레스트리나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팔레스트리나는 그 이전에 있었던 모든 음악적 어법, 즉 중세 이전의정통 가톨릭 선법과 르네상스 시대에 이루어진 다양한 음악적 기법을다음 세대로 전승한 인물로 음악의 아버지라는 바흐 이전의 작곡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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