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7 |
저널이 본다
관리자(2012-07-05 11:30:39)
갑의 권위를 버리고 역지사지하라
한규일 기자
월드컵의 열기가 온 나라를 뒤덮은 2002년, 전주에서는 새로운 정책적 실험이 시작됐다. 공예품전시관, 역사박물관, 전통문화관, 전통술박물관, 한옥생활체험관(이상 가나다 순) 등 5개 문화시설에 대해 전주시가 민간위탁 운영을 결정한 것이다. 당시 민간위탁 방식은 전국적으로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어서 많은 논란과 우려가 있었다. 물론 전주시는 3개 청소년문화의집(전주·완산·덕진)과 2개 문화의집(진북·삼천)에 대한 문화시설 민간위탁의 경험이 이미 있었기에 그만큼 자신감을 갖고 추진했을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 5개 문화시설이 전주한옥마을과 전주시의 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의 이미지와 위상을 세우는 핵심으로서 견인차 역할을 했음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들보다 1년 늦게 개관해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최명희문학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문화시설 민간 위탁 운영에 대한 10년 전의 논란과 우려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 내용은 2003년 7월, 문화저널이 수요포럼을 통해 1주년을 점검했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5월 25일 전주한옥생활체험관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마련됐다.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세화풍류”가 바로 그것. 박남준 시인의 시낭송을 비롯해 송원진·송세진의 클래식 공연과 기린봉악단의 흥겨운 연주 등 풍성한 잔치가 열렸다. 전주전통술박물관도 6월 9일‘전통가양주 품평회’와‘전통술박물관 퀴즈 이벤트’를 시작으로 8월과 10월 세 차례에 걸쳐 개관 1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전주역사박물관은 6월 15일‘목산 이기영의 삶과 학문’을 주제로 개관 1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기념전시를 시작했으며, 이보다 앞서 5월부터 박물관 10번 가기 이벤트‘나도 조선의 왕’을 진행하고 있다.
살림 좀 나아지셨습니까?
공예품전시관, 역사박물관, 전통문화관, 전통술박물관, 한옥생활체험관 등 5개 문화시설이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이했다. 동시에 전주시의 문화시설 민간위탁도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다. 각 시설들은 개관 날짜에 맞춰 즐거운 생일잔치를 펼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예산은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전주시 예산안을 기초로 만든 연도별 위탁예산 변화 그래프를 보면 지난 10년 동안 5개 문화시설의 예산은 예외 없이 전부 줄었다. 비교하기 위해 제시된 문화의집의 경우 수치상으로는 다소 증가했고(3~4억 원의 예산을 5개 문화의집이 나눠 쓰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건비 수준이지만), 참고로 넣은 최명희문학관이나 5개 문화시설 중 전통술박물관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37.7%라는 지난10년 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예산 역시 상대적으로 현상유지 정도이거나 삭감된 것을 알 수 있다.보다 정확한 금액을 연도별 위탁 예산 현황 표에 정리했다. 2003년 처음으로 1년분 예산을 받았을 당시 전통문화관 10억8,000만원, 공예품전시관 2억4,000만원, 한옥생활체험관 2억6,000만원, 전통술박물관 1억 원, 역사박물관 4억8천600만원이었던 예산은 올해 전통문화관 5억 원(-54%), 공예품전시관 7,200만원(-70%), 한옥생활체험관 6,300만원(-76%), 전통술박물관 9,300만원(-7%), 역사박물관 4억 3,000만원(-12%)로 최고 1/3 이하까지 줄어든 상태다. 위탁 예산 삭감의 폭이 50% 이상인 전통문화관, 공예품전시관, 한옥생활체험관 등 3개 문화시설의 경우 수익사업을 통해 운영비 일부를 충당하고 있다는 것이 예산 삭감의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지난 해 전통문화관의 한벽예술단 해체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 3개 문화시설의 살림은 여전히 빠듯한 상황이다. 게다가 건립 10년이 지나면서 시설 개보수에 대한 예산 부담도 증가하고 있고, 10년 전과 달라진 주변 환경에 의해 경쟁력 약화와 수익 악화도 감수해야 한다. 별다른 수익사업을 하지 못하는 나머지 문화시설들의 경우엔 상황이 더 좋지 않을 수밖에 없고, 결국 문화시설들은 자연스레 돈이 되는 수익사업으로 내몰리고 있다.전주시의 문화시설 민간위탁 예산 현황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 또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예산 총액이다. 지난 10년 동안 시설 숫자는 2배로 늘었는데 예산 총액은 거의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중앙정부지원금과 지방세 수입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전주시의 살림이 녹록치 않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전주시가 여전히 개발논리와 성과주의의 구시대적 행태를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시설만 늘리다보니 밑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부실한 운영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행정 편의적 위탁에서 벗어나야
현재 5개 문화시설은 3년에 한 번씩 위탁 운영 주체를 새로 정한다. 예산만큼 큰 문제는 바로 이 위탁 운영 방식이다. 이로 인해 고용불안의 유발, 장기적 비전수립 불가, 운영과 업무의 노하우 단절, 정량적 성과에 치우친 평가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제기된 것도 이런 문제점들이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전주시의 문화시설 민간위탁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5개문화시설 중 한옥생활체험관은 전통문화사랑모임이 2003년 위탁 받은 이래 10년 동안 동일한 운영주체가 지속적으로 운영해왔다.현재 위탁 운영을 맡고 있는 사회적기업 이음은 전통문화사랑모임을모태로 설립됐다. 전통술박물관의 경우 2008년 제3기부터 전통문화사랑모임에 이어 전통술연구회가 위탁 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이 단체의 경우 기존의 운영인력을 대부분 승계하고 있다. 역사박물관과공예품전시관은 전주문화사랑회와 전주대학교가 2005년 제2기 위탁 때부터 현재까지 재위탁을 통해 각각 운영하고 있으며, 전통문화관은 제1기 우진문화재단, 제2기~제3기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을 거쳐2011년 제4기부터 풍남문화법인이 위탁 운영을 맡고 있다.참고로 최명희문학관의 경우에도 처음부터 혼불기념사업회에서 운영을 도맡아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3년 단위 재 위탁 과정은 형식적인것이 되었다. 이러한 실질적 장기 위탁 운영이 긍정적 결과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이들에 대한 평가에서 잘 나타난다.‘문화시설 경영 평가’(2009~2011)에서 역사박물관, 최명희문학관, 공예품전시관이 나란히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공예품전시관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90% 이상으로 높아졌다. 장기적 비전수립까지는 어렵겠지만 운영과 업무의 노하우가 단절되지 않은 결과로 짐작된다.탄력적 위탁 운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이런 현실을반영한다. 박물관이나 문학관 등 특별히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뿐만아니라 일반 문화시설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으나 위탁예산 삭감으로 수익사업에 급급해 실현하지 못하는 공공성을 살리기위해서는 행정 편의적 위탁에서 벗어나야한다.“운영에 대한 감사? 당연히 해야죠. 성과에 대한 평가 또한 충분히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평가에서 나타난 문제점들, 운영 주체들이 요구하는 개선점들에 대해서는 행정에 전혀 반영이 안 된다는것입니다.”한 위탁운영 문화시설 관계자의 말이다.“전주의 민간위탁 문화시설들이 그동안 얼마나 큰 성과를 냈는지보세요. 같은 예산으로 공무원들이 직접 했으면 가능했을 것 같습니까?”문화시설의 민간위탁 운영은 갑과 을의 주종관계를 이용해 적은 돈으로 편하게 시설을 운영하거나, 경쟁을 부추겨 고효율의 성과를 내기위한 것이 아니다. 전문가에게 맡겨 최고의 질 좋은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