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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7 |
[아름다운 당신] 독립영화감독 강지이
관리자(2012-07-05 11:30:26)
날개를 품고 있는 그의 내일이 기대된다 한규일 기자 <미친 김치>, <소나무> 등 여러 단편들로 상을 받고 영화제에 초대되는 등 그 실력을 인정받은 독립영화감독 강지이. 그는 줄곧 영화를 통해 여성문제를 천착해온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여성 영화감독이다. 1300만 관객 동원으로 역대 국내 개봉작들 중에서 부동의 흥행 1위를 지키고있는 영화 <괴물> 제작에도 참여, 블록버스터 영화현장을온몸으로 체험하기도 했던 그는 영화와 관련한 다양한 강좌의 강사로도 열정을 쏟고 있다. 단편 <원하는 대로>로전북여성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한지 10년. 함께 사는사회의 가치를 지향하며 이제 본격적으로 장편데뷔에 나선 그를 만났다. 불여낙지자(不如樂之者) 건축과 영화는 닮은 점이 많다. 건축이 컨셉에서 시작해 부지를 선정하고 설계도를 그리고 시공의 과정을 거쳐 완성되듯이, 영화는 시나리오에서 출발해 배우를 캐스팅하고 콘티를 짜고 촬영과 편집의 과정을거쳐 작품이 완성된다. 물론 건축에서는부지에 맞춰 컨셉을 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영화에서도 배우에 맞춰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는 자주 있으니까.국민윤리교육을 전공한 독립영화감독과 건축을 전공한 기자가 만났다. 장소는 도서관 옆 카페. 적어놓고 보니 영화제목 패러디 같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미술관 옆 동물원>은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여성 장편영화 감독인 이정향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마침 강지이 감독도 최근 장편 데뷔를 위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이다. 인터뷰는 최근 인기를 끌었던 화제작, <건축학개론>으로 출발했다. “저는 <건축학개론> 보면서 건축학개론 수업을 한 번 받아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수업 되게 재밌더라구요. 거의 인문학 강좌 같고, 선생님이 내는 숙제나 이런 것 때문에 주인공들이 가까워지고 이런 게 있거든요.” 강지이 감독의 말이다. 그래, <건축학개론>을 한 번 보긴 봐야겠다. 책도 영화도, 베스트셀러이거나 박스오피스 1위인 것들은 한 철 지나서야 보는 습관이 있어 아직 보지 못했던 참이다. 어쨌거나 현실은 현실, 자연스레 이런 답이 건네진다. “오래돼서 생각은 잘 안 나지만, 제가 들었던 건축학개론 수업은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개론’이잖아요.” 건축 전공자로서 현직에 있는 선후배와 친구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건축가에 대해 갖는 환상을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영화와 드라마가 심어준 환상의 후유증(?)은 의외로 크다. <시월애>나 <개인의 취향> 또는 <신사의 품격>등 건축가를 미화한 영화와 드라마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영화는영화일 뿐, 현실은 그렇게 환상적이지만은 않다. 그러고 보니 건축가와 닮은꼴인 영화감독에 대한 환상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저는 사범대 졸업했는데, 딴 일 하고 있는게 저밖에 없는 것 같아요(웃음). 선후배들 다 학교에 포진해 있고, 저만 이렇게 딴 일을 하고 있어요.” 교사는 최근 몇 년 동안 며느리 후보 1순위에 사윗감으로도 10위 안에 드는 매우 바람직한 직업이 아닌가. 좋은 직업 대신 힘들고 어려운 영화감독의 길을 가는 강 감독의 선택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과목이 바뀌었죠, 제가 국민윤리과를 졸업했거든요. 그래서 윤리 도덕을 가르쳐야는데. 사실 독립영화는 돈이 안 돼요, 아시겠지만, 돈을 다 쏟아 부어야 되는거라서 생계를 위해서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되잖아요. 그게 이제 영화 강사가 되는 거죠, 영화를 가르치는 거니까. 물론 부모님들은 답답해하시지만, 그래도 옛날에는 반대 많이 하셨는데 지금은 묵묵히 지켜봐주세요. 감사하죠.” 그는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대견해한다.“만약에 제가, 지금은 학교에서 윤리교사를 하고 있지도 않지만,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논어에 즐기는 사람이 최고라 했지 않은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사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영화감독의 길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환상적이지는 않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강 감독의 표정은 참으로 맑았다. 강지이, 우상을 만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영화감독을 인터뷰하러가면서 정작 그의 영화는 한 편도 못 봤다. 정말이지 무던히 애는 썼다. 그런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운영하는 전주디지털 독립영화관에서도 강 감독의 영화는 구할 수 없었다. “이것이 독립영화의 현실이에요. 영화는 극장을 통해서 배급이 되잖아요. 그런데 독립영화가 배급될만한 곳은 별로 없거든요. 제가 다 가지고 있어요. 제가 다 거둬들였죠(웃음). 그리고 거의 상영관에 걸리는 독립영화 같은 경우에도 영화제에서 상 탄 영화나 뉴스가 되는 영화들에 한정되어 있으니, 제 영화는 그 대상에서 비켜난 지 오래죠.” 강 감독의 우상은 봉준호 감독이다. 강 감독은 1996년 서울, 독립영화협의회의 영화제작 교육에서 봉 감독을 처음 만났다.“감독님은 기억 못 하실 거예요. 제가 그 때 감독님의 <지리멸렬>이라는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이미 우상이었는데, 감독님이 수업시간에 이 영화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 낱낱이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때 충격을 받았죠. 어떻게 자기영화를 저렇게 잘근잘근 씹을 수가 있을까, 자기 영화를. 그 태도 자체가 너무 대단해보였어요. 다들 자기영화 어떻게든 포장하려고만 하는데. 그 자체가 너무 쇼킹하고 존경심이 생겼죠.” 봉준호 감독에게 더 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렇죠, 너무 놀랐어요. 정말 좋은 감독님이구나. 그 자체가 첫 인상이었으니까. 농담도 잘 하고 유머도 뛰어나시고. 물론 수업도 재밌고.” 28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전 세계를 휩쓴 아바타도 무너뜨리지 못한, 1300만 관객의 역대 국내 개봉영화 흥행 1위 <괴물>. 그러나 이 영화를 만든 스타감독 봉준호에게도 단편영화를 찍던 시절은 있었다. 그런데 단편영화와 독립영화는, 같은 것인가.“독립영화라는 말 자체가 이제는 애매해져버린 말이잖아요. 80~90년대에는 독립영화가 충무로 바깥의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이기도 하고, 충무로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부분 정치적인 색깔을 갖고 있는 영화들이었어요. <파업전야> 같은. 근데 이게 이제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충무로 바깥의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의 통칭이 된 거 같아요.”그리고 디지털. 영화를 배울 곳도 많아졌고, 누구든지 감독이 되어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래서 다큐나 극영화 할 것 없이 심지어 예산도 굉장히 다양해진‘독립영화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것은 값싸고 편리하면서도 질 좋은 디지털의 덕분이라고 강 감독은 말했다.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끊겨가고 있거든요. 우선 중앙에서부터 그런 흐름이 시작되고 있죠. 그래서 지역에서 독립영화를 한다는 것이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전주에는 전주영상위원회가 있기 때문에 지원 받아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죠. 그 지원을 바라보고 있는 감독들이 굉장히 많아요.바람으로는 지역 차원에서도 지역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제도적인 지원이 (더 많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사실 저처럼 충무로에 있다가 내려온 감독들이 지역에 지금 많거든요. 자기 영화를 만들기에는 충무로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니까. 저도 진입을 해보려고 하다가 안 돼서 내려왔지만, 평생 독립영화만 하겠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죠. 그건 정말 투쟁이에요.” 그렇다고 독립이냐 충무로냐, 양자택일의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개봉한 <다른 나라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로 자체 제작 시스템을 갖춘 홍상수 감독이 자체 배급하는 영화로, 전주의 경우 개봉관이 아닌 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등 전국적으로겨우 33개관에서 개봉했다.그러나 개봉 5일 만에 1만, 한 달 이내로 4만관객을 동원하는 등 제작에서 배급까지 대형영화 중심인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가능성을보여주고 있다. 우선은 충무로 제작을 목표로장편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강지이 감독이지만, 그 역시 이렇게‘작은 영화지만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는 그런 영화’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인간적인 리듬의 영화가 좋다 “저는 영화 <시> 굉장히 좋아하는데, 길죠. 원래 상영시간도 139분이고 한 컷의 길이도 짧지는 않죠. 그걸 관객들이 견뎌낼 수가 없나 봐요. 특히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런데 저는 그 자체가 되게 신기하거든요.” <토리노의 말> 같은 영화도 그렇다.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조차 그런 영화들을 어려워한다고 강 감독은 전했다.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20대 그때 진짜 열심히 한 일이 영화 보는 일이었는데, 그런 영화들은 잘 못 봤었거든요. 그런 시적 영상들은 어쩐지 낯설고 지루하고. 잘 모르고 그랬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 리듬이 인간적인 리듬으로 다가오죠. 물론 느리게 만든 영화가 다 좋다, 그것은 절대 아니지만, 아주 천천히 사유할 수 있는 영화들은 계속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 지금 쓰고 있는 장편 시나리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대중성을 염두에 뒀다면 이런 느린 영화는 아니라는 말이 아닐까. 하지만 역시였다. 별로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강 감독은 그런 내용들을 다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단다.“정말 희한한 것은 10년 이상 충무로에서일하신 분들도 어떤 영화가 흥행할 것인가 흥행하지 않을 것인가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에요. <도가니>가 그렇게 흥행에 성공하고 사회적인 이슈가 될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거든요.”영화가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것일까, 아니면딱 맞아 떨어지는 뭔가가 있어야할까?“사회적인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살인의 추억>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영화 기사가 영화란에서 시작해서 사회면으로 갔거든요. 그 영화를 80년대를 읽는 텍스트로 본거죠. 그런 영화가 성공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하죠. 우리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되는 영화의 가치랄까. 그 영화들은 영화 자체의 완성도보다 우선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였다는 것이 중요하죠.” 강 감독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건 당연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구요, 지금 준비하는 영화가 그런 면이 있어요.”봉준호 감독 같은 경우에는‘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든다’고 인터뷰에서 얘기했는데, 봉 감독이 보고 싶은 영화는 사람들도 보고싶은 영화일까? “(웃음) 봉 감독님은 그게 행복하게도 일치하는 거고, 그래서 흥행감독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본래 갖고 있는 이미지가 강하니까, 이런 이미지가 관객들하고 잘 소통할 수 있겠다는 확신도 있겠죠.” 결국 영화는 혼자 보려고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이 강 감독의 지론이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 때는 늘 고민한단다.왜 이 이야기를 드라마나 연극, 뮤지컬이 아닌‘영화’로 만드는가를... 여성만의 감수성, 그리고 균열 강 감독은 <원하는 대로>로 2002년 전북여성영화제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이후에 작업한 <미친 김치>, <소나무> 등도 모두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여성감독, 여성영화로 읽히는것에 대한 경계를 나타내기도 했다.“워낙 범주화를 시키시니까, 범주화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렇죠.”그럼 앞으로는 어떤 영화를 만들 계획일까?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들이 여성문제가 많아요. 여성에게 일어나는, 여성의 감수성으로 바라봤을 때 문제가 되는, 너무너무 심각한데 이야기하지 않는 그리고 여성감독이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캐릭터들, 거기에 관심이 있어요. 남자 감독님들이 아직 보여주지 않은 캐릭터들이 있잖아요. 한국영화를 보고 나면 왜 여자 캐릭터들은 아직도 저럴까, 그것 때문에 사실 감독을 아직도 꿈꾸는거거든요. 아직 안 나왔으니까, 내가 보고 싶은 여자 캐릭터가.”지금 쓰고 있는 장편 시나리오도 이런 이야기일까. 여성의 감수성이 만드는 여성 캐릭터가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간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것도 부부.겉으로 봤을 때의 부부와, 그 두 사람만의 어떤 일은 사실 정말 모르잖아요. 그런 부부 얘기예요. 저는 또 균열 이런 거 좋아하거든요. 들여다보면 얘기할 게 많아지니까. 사회도 그렇고.”균열. 건축에서도 균열은 중요한 문제다. 간단한 예로 벽에 균열이 생겼을 때, 그 방향을보면 어느 쪽에 문제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그런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균열의 방향을 좀 보면서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있는, 사회 구조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현장에 있고 싶다 지금 작업 중인 장편 시나리오는 언제쯤 끝이 날까. “내년에 영화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항상, 내년에 영화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죠. 금년에 시나리오가 다 되고 내년엔 현장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현장을 떠나 있은지 너무 오래됐거든요.” 강 감독의 눈가에 그리움이 살짝 스친다.“그게 재밌는게요, 그냥 이런 공원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저희가 천막 치고 영화찍을 준비를 하잖아요. 그때 의자가 쫙 놓이거든요. 근데 감독, 디렉터라고 써진 의자가 있어요. 그 의자가 저기에 딱 놓이면 거기가 현장이 되는 거예요. 그 느낌이 굉장히 묘하거든요. 저는 <괴물> 때 제일 많이 갔던 현장이 진짜 지하에 하숫물이 흐르는 하수도였거든요. 감독님이 세트를 싫어하셔서 정말 하수구에서 찍었으니까. 한강 하수구들을 정말 다 들어가 본거 같아요. 근데 그 하수구, 물이 흐르는 거기에도 디렉터 의자를 딱 놓으면,‘아! 여기는 현장이야’라는 느낌이 확 들거든요. 그 의자에,빨리 앉고 싶어요. 그래서 제가 쓴 영화를, 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구현해줄 수 있는 배우를 만나서, 좋은 스텝들하고 같이 현장에서 치열하게 영화를 찍고 싶어요.”그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속도가 빨라졌다. 영화현장을 그가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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