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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5 | 연재
꿈꾸는 학교 행복한 교실
관리자(2012-05-14 10:57:19)


 아이 한명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황성희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강사 내 아이에게 닥친 성장의 시련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아픔과 슬픔을 느꼈다. 그 아이가 겪었을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들, 아이의 부모님들이 평생 안고 갈 기막힌 아픔의 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래도 일주일 정도 지나면 그 아픔은 다른 일상사에 밀려 잊혀져갔다. 학교 폭력은 우려되는 사회 문제지만 내 발 앞에 당장 떨어진 일은 아니었기에 매달려 고민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게도 '일'이벌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에 갓 올라간 딸아이가 연일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새로 시작해서, 새로운 반에 친한 친구들이 없다보니 적응 과정의 불만이겠지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2~3주가 지나도 '반 아이들이 싫어. 못 됐어. 다른 학교로 전학가면 안 돼?" 등강도 높은 불만들이 이어졌다. 급기야 혼자 체육시간을 보내고 쉬는 시간에도 아무도 말 거는 사람이 없어 입 다물고 있다가 홀로점심을 먹는 날을 맞게 되었다. 하교 때도 손잡고 교문 나설 친구없이 학원으로 갔다고 했다.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가 혼자 쓸쓸하게 보낸 자신이 가엾고 초라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일의 시작은 미미하고 단순했다. 서로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던 중 아이들과 함께 동영상을 찍자는 한 친구의 제안을 딸아이가거절했던 것이다. 그 친구 입장에서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것이괘씸했는지 다음 날부터 딸아이 주변의 친구들을 '걷어가고' 놀이에 끼워주지 않으면서 고립시키는, 이른바 '은따'로 분노를 표현했던 것이다. 분위기가 그렇게 잡히자 다른 아이들도 우리 아이와놀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딸아이가 왕따가되는 구도가 굳어질 것을 염려하여 아이의 담임선생께 전화를 했다.상황설명을 들은 담임선생은 일단 왕따 문제에 대한 자신의 단호한 입장을 밝히고 우리 아이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모르고, 자기 자신을 내주면서, 말하자면 망가지면서 친구들과 어울릴 줄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가 너무나 완벽해서 징그러울 정도다. 아이가 아이 같지 않다. 기능적인 면은 뛰어난데 관계에 약하다'는 내용의평가를 덧붙이며 이런 사태에 우리 아이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투의 발언을 했다. 양비론적인 태도였다. 화가 난 나는 양비론보다 왕따의 폭력적 본질에 집중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말씀을 너무 어렵게 하는 스타일이다. 담임을 믿고 맡겨라. 작고 간단한 일을 크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식으로 대화를 정리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엄마에게 너무 많이 의존하는 것 같다. 그런 일은 담임한테 말해야지 왜 엄마한테 그러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도 담임을 못 믿는 것 같다' 고 말해 힘든 마음이 더 힘들어졌다. 아이와 엄마가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긴밀히 이야기 하는 것이 의존적이란 말인지... 아이와의 대화를 권장하는 통신문을 보내면서 부모가 아이 일에 지나치게 개입하여 별 일 아닌 걸 크게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또 어떤 경우인지... 담임선생과의 전화로 마음만 더욱 황망해졌다. 마치 말기암환자가 간절한 마음으로 의사를 찾아갔는데 이런 환자들에게 익숙한 의사가 암을 감기 정도로 취급할 때 느낄 것 같은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래, 담임선생 말대로 두고 보면서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할걸 그랬어. 괜히 전화해서 애를 문제아 만들고나는 극성이 되어버렸잖아'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당시로서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하고 일단 관망세로 돌아서기로 했다.그러는 동안 아이는 유사한 상황에 몇 번 더 놓였고 소풍가서는 여학생들이 두 그룹으로 나뉠 때 어디에도 끼워주지 않아단 한명과만 다녀야 하는 굴욕(?)을 겪었다. 좀 더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자기도 그룹에 끼고 싶다고 애원했으나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소풍을 다녀온 후 또 두세 차례 왕따비슷한 상황에 놓였었다. 그럴수록 엄마인 내 마음은 타들어갔다. 아침에 승용차로 아이를 태워다 주는데 학교로 걸어가는아이 뒷모습이 마음을 짓눌렀다. 집에 와서도 '지금쯤 혼자만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아이의 하교를 마음 졸이고 기다렸다가 그날 학교에서 있던일을 자세히 들었다. 둘이서 아이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보고, 다른 아이의 공격적인 태도에 혹시 그럴만한 이유는 없는지 등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정리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학기 초라서 모두 예민하고 또 혼자 남게 될까봐 두려워 서로 무리 짓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상황을 정리해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건 자신의 일이라 스스로 헤쳐 나가야하며 엄마의 도움은 한계가 있다고 했다. 될 수 있는 한 전학을 가는 사태를 만들지 말고 적응해 보자고도 했다. 물론 아이의 왕따 탈출 성공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3월과 4월, 아이의 새 학년 새 학기 적응과정을 지켜보면서두 배로 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이른바 왕따라는 학교 폭력이 일어나는 맥락 하나는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이들은, 특히 사춘기가 막 시작될 무렵에는 사소한 문제로 집단적인 분위기를 형성해 몰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기들과 좀 다른 행동을 하거나 다른 복장을 하는 것 자체가 낯섦의 대상이될 수 있다. 우리 아이는 말하자면 '범생이'라서 사춘기 여학생들의 작은 일탈, 예를 들어 '화장실 같은 칸에 들어가서 초코파이 먹기' 등에 동참하지 않으니 이질적인 존재로 보였던 모양이다. 복장 면에서도 '무채색의 야상 자켓, 짧은 청 팬츠에 나일론 스타킹, 고데 머리를 빗질하고 다니는 유행'에서 비껴난 모습을 하고 있으니 '얼라' 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엄마가 골라주는 유채색의 '유치한' 옷을 입고 스타킹 아닌 타이즈를 신고 다니니 말이다. 그러니 나도 내 스타일을 아이에게 관철시킬 게 아니라 적어도 아이가 튀지 않을 옷을 골라야 할 모양이다. 아이도 관계에서 비껴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함께 울고 웃고 부대껴야 하는 걸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모녀도 아이의 학급 분위기와 타협 중이다. 왕따는 그 조짐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손을 써야 불행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왕따는 주모자와 공모자, 방관자 모두가 다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이므로 집단적인 참여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결해야지 피해자와 가해자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의 부모까지 문제 해결에 반드시 동참시켜야 한다. 힐러리 클리턴이 쓴 교육 에세이 제목처럼 '아이 한명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한국어 번역본 제목은 '집밖에서 더 잘 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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