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꿈꾸는 우리의 전통시장 유희중 객원기자 2008년부터 시행되었던 문전성시 사업이 마침내 그 막을 내린다. 문전성시란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 활성화 시범사업의 줄임말로 문화를 통해 전통시장을 지역문화공간이자 일상의 관광지로 조성하는 사업을 일컫는다. 즉,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사람들의 소비패턴의 변화로 침체를 겪고 있는 우리 전통시장을 문화 콘텐츠를 활용해 새로운 소통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선정된 시장은 세부적으로 시장별 전통과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환경을 조성하며 건축, 지역개발, 커뮤니티,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시장콘텐츠를 개발하게 된다. 지난 2008년 수원 못골시장, 강릉 주문진시장을 시작으로 2009년 목포 자유시장, 서울 수유마을시장, 대구 방천시장 등에 이어 2010년에는 서울 우림시장, 광주 무등시장, 순천 웃장, 부산 부전시장 등 전국 25곳의 전통시장이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수행했거나 진행 중이다. 전라북도에서는 2010년 진안시장을 시작으로 2011년 남부시장까지두 곳에 걸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 지붕 50가족 진안시장 진안시장의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포지셔닝은 좀 특별하다. 시장의 현대화가 완료된 직후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도입된 것이다. 이는 전국적으로도 매우 드문 케이스로 이런 경우 시장은 대게‘관계’형성의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가게를 운영하거나 좌판을 벌였던 사람들이 시장이라는 울타리 안에 하나로 뭉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지붕 아래 갑작스레 50가구가 뭉쳤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들에게 공동체란 낯설었으며 지켜야할 스스로의 규칙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한 차원에서 진안시장의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핵심은 바로‘관계’형성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시행 첫 해는 마을문화와 시장문화의 결합을 위해 힘을 쏟았다. 이 역시 관계형성의 과정과 일맥상통한다. 진안은 최근 귀농 등으로 외지인이 많이 늘어나면서 일대 전환기를 겪고 있기도 하다. 지역의 현실을 반영해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마을 문화를 시장과 접목해 시장문화와의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시장 내부의 결집에도 힘을 쏟았다. 사업 초반 상인들의 갈등과 내부 문제를 극복하고 역량을 결집해 진안만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동체 의식 형성이 반드시 필요했다. 진안시장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밥 한 끼’에서 찾았다. 상인들이 각자 준비해온 음식으로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중앙광장에 꾸민 텃밭을 소통의 장으로 활용했다. 마음을 나누고,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공동체적 경험을 강화하고 동기를 부여했던 것이다. 2차년도에는 이렇게 형성된 관계를 바탕으로 상인들의 복지와 시장 공간의 공공성 강화에 초점을 두었다. 시장이 물건을 사고파는 영역을 넘어 주민들의 공간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1차년도에 만들었던 시장 공동브랜드 리모델링 작업도 진행했다.‘진안의 부엌’은 진안시장의 먹을거리를 외부에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개발한 공동브랜드다. 시장 내 49개 상점을 패션, 식당, 식품, 잡화 등의 분야로 나눠 자체적으로 상품을 선별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비해 대표 먹을거리가 취약한 시장 구조로는 브랜드의 지속성을 장담하기가 힘들었다. 먹을거리 위주로는 시장 전체의 호응을얻기가 힘들었을 뿐 아니라 이름 자체도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수요를창출하기가 힘들었다. 곧바로 이듬해‘마이산의 선물’이라는 브랜드를런칭했다. 말하자면‘진안의 부엌’확장판이다. 실제 시장 상인들이 직접만든 티셔츠나 머그컵, 손수건 등 다양한 상품들에‘마이산의 선물’이란 상표를 부착해 판매하는 것이다. 이는 시장의 상품을 상인들이 직접 만든다는 데큰 의미가 있다. ‘진안의 부엌’이 외부로의 판매에 초점을 두었다면‘마이산의 선물’은 상인들 역량이나 내부의 공동체 의식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진안시장 문전성시 박종석 프로젝트 매니저(이하 PM)는 문전성시 사업의 최대 자산은 역시 시장 상인들의 인식변화라고 강조했다. “처음 개인화 되어있고, 개별적 관습에 젖어 있던 상인들이문전성시 프로젝트를 통해 공동체 문화를 경험하고 체득했다는데 큰 의의가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앞으로 시장을 이끌어 가는 자생력의 밑거름이 될것입니다. 시장의 미래는 결국 상인들이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동시에 진안시장은 추진해왔던 사업을보다 시장에 맞게 전환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박종석 PM은“문전성시사업 자체만으로 시장을 활성화 시키는것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보다 진안의 색깔을 살리고 진안시장만의스타일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했던 거죠”라며“프로젝트 이후의지속가능성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당장 지원 없이 자생할 수있는 환경이 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사회적 기업이나 마을 기업으로의 전환을 위한 준비를 착실히 해 나아갈 예정이다. 청년 장사꾼들의 희망 장터 남부시장 남부시장의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진안시장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남부시장의 경우 이미 다양한 사업을 통해 상인들과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2003년부터 현대화사업이 이루어졌으며 깔끔한 간판과 각종 문화콘텐츠 사업 등으로 시장의 정비와 시스템은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상태였다.즉, 이미 많은 변화를 겪고 있던 남부시장에 어떠한 콘텐츠를 심는 것인가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남부시장은 축구장 세 개 크기에 달하는 전라북도 최대 규모 상설시장이다. 시장 내 상인 수는 1200여명에 달하며 점포 수만 800개에 이른다. 이러한 대규모 시장에서 전체를 하나로 묶는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다른 문전성시 사업이 상인 동아리나 벽화 작업 등 기초 문화 기반을 다지는 것에 집중했다면 남부시장은 이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즉, 변화를 이끌기 위한 수단이 문화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부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주목한 것이 바로‘청년’이었다. 시장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청년 장사꾼’들을 직접 유치해 기존 시장과의 시너지 효과를 내자는 것이다. 지난해 8월 6일부터 8월 20일까지 진행되었던‘청년야시장’은 남부시장 문전성시 사업의 핵심 프로젝트다. 전국에서 모인 청년 장사꾼들은 저녁무렵부터 자신들의 재능과 아이템을 활용해 공예품이나 음식 등 다양한 것들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사실 남부시장은 딱히 밤문화가 없는 인근의 한옥마을 관광객들을 유치할 수 있는 훌륭한 환경을 갖고 있다. 청년 야시장은 바로 그러한 점을 정확하게 간파한 행사 중 하나였다. 실제로 여름이면 순대국밥과 같은 뜨거운 음식의 매출은 줄기 마련이지만 야시장이 열렸던 기간 동안 매출이 껑충 뛰기도 했다. 문화를 통한 시장 활성화가 마침내 시장에 간접적 효과를 준 것이다. 또한 15일간의 시끌벅적했던 시장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바로 다가온 추석에는 시장 공영주차장이‘만차’를 이루기도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청년장사꾼들의 살 길을 모색하고, 시장 점포의 매출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발생하기시작한 것이다. 물론 거대 시장 전체에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능하나 젊은이들이 모여 전통시장을 통해 다양한 고민을 함께 했다는 경험들은 앞으로 긍정적인 연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남부시장은 올해 청년장사꾼 프로젝트를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사람들의 반응도 좋다. 2월말, 3월초 2회에 걸쳐실시했던 모집 설명회가 대성황을 이루며 그 성공을 예감케 했다. 청년 가게를올해 10개 이상 늘리고 야시장을 정기프로그램으로 정착시키며 공정여행 시장 투어 코스도 개발할 예정이다. 또한 사업 종료 이후 지원 없이도 자립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 설립, 사회적 기업, 청년사업단으로의 전환 등 공동의 대응을통해 그 지속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다.대규모 시장의 명맥을 이어갈 사람도결국은 젊은 청년들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청년 장사꾼 프로젝트는 단순히젊은 사람이 시장에 와서 물건을 파는것이 아닌 미래를 위한 대물림 그리고세대 간 어울림이라 할 수 있다. 즉, 다른 시장의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현재시장의 행복을 꿈꾼다면 남부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보다 앞을 내다보며멀리 보는 가치를 실현해 가고 있는 것이다. 획일화된 프로그램 등 문제점 노출 하지만 이러한 눈에 띄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내부 속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걱정거리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 먼저 꼽을 수 있는 문제가 바로 프로그램의 획일화다. 프로젝트가 지속되면서 각종 소프트웨어나 컨셉이 매뉴얼화 되면서 시장의 경계나 개성을 찾기가 모호해진 것이다. 정해진 기준과 틀에 맞추다 보니 시장 자체의 특수성이 사라지고, 때에 따라서는 스스로의 장점을 포기해야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또한 제도의 특성상 외부인력이 시장에일시적으로 들어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도 부작용이 발생한다. 문화란 기존에 있던 것이 쌓여가며 제 색깔을 내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프로젝트는 정해진 기간 동안 프로그램을 강제로 이식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시장을 대상화함에 있어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깊은 고민과관계들이 고려되어야 하지만 외부의 것이 일방 통행식으로 들어오다 보니 프로그램 자체의 깊이를 둘 수 없고 이를매끄럽게 품어내기가 어려운 것이다.즉 기획 단계부터 시장 상인들이 참여해 함께 고민하고 그에 따른 진행과정을 통해 상인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진안시장은 이때문에 작년 2차 사업 때 문전성시 사업의 스탭을 모두 상인들과 주민들로 바꿨다. 그리고 스스로의 독립과 자생구조 정착을 위해 나머지 사업을 자의로 포기하기로 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바로 실제 시장상인들의 반응과 생각이다. 어떤 상품을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포장했지만 소비자들이 실제로 손에 쥐는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알맹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과 훌륭한 기획이시장에 펼쳐졌다한들 시장에서 활동하는 내부 구성원들의 만족과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포장만 그럴듯한 상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전성시’라는 걸출한 이름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가 과연 시장 상인들에게 실질적인행복을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사업 이후 지속가능성은 앞으로의 과제 문전성시는 콘텐츠를 시장에 녹여내는 문화사업이다. 따라서 그 성과가 지금 당장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이 그렇듯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와 성과 측정을 위해 수치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진안의 부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평가에서는 실제 매출이라는 수치가 중요했지만 그 보다 더욱 중요했던 것은 실제 상인들이 물건을 직접 생산해 낸다는 자부심과 공동체 의식이었던 것이다. 판매에 집중했던‘진안의 부엌’이‘마이산의 선물’로 바뀌며 시장 상인들의 것으로 재탄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짧은 기간 실행된 프로그램들은 시간을 두고 정착될 것이며 아울러 상인들의 인식이나 문화적마인드 역시 서서히 개선될 것이다. 즉,지금은 시장의 울타리 안에서 만드는 공공적 인식으로의 업그레이드를 위한시행착오의 과정인 셈이다.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역시 지속가능성이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 훌륭한성과를 이뤄냈지만 이들이 떠난 자리시장에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얼마나 마련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이필요하다. 실제로 2009년부터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대구 방천시장의 경우 사업 종료 후 시장이 그대로 방치되면서 심각한 지역문제로 남고 말았다. 남부시장 청년장사꾼 프로젝트 역시 많은 기대와 관심에도 청년가게의환경은 여전히 척박하기만 하다. 아직도 수도시설, 건물 등이 노후해 기반 시설 자체가 취약하며 경제적 문제의 현실도 고민스럽다. 기존 상인들의 인식부족이나 소비자들에게 덜 알려진 탓도있겠지만 이제 서서히 마케팅을 도입하고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은데 손님이 없어서 걱정이야. 저러다상심할 것이 겁나.”청년가게 바로 옆에서 보리밥을 팔고 있는 최순자(72) 씨의걱정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이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문전성시 사업의 종료를 앞두고 그들이떠나간 자리, 시장 상인들 스스로의 자립을 위해 어떤 노력과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지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고민들이 모여 지금껏 이뤄냈던 훌륭한성과들을 바탕으로 시장 문화의 꽃을활짝 피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