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 |
[서평] 「문화는 정치다」 장 미셀 지앙 지음
관리자(2011-12-01 16:45:33)
문화시대, 프랑스의 문화정치가 남기는 과제
원도연 전북발전연구원장
1959년 프랑스 제5공화정이 시작되고 샤를르 드골이 대통령에 오른다. 드골은 정부에 처음으로 문화부(문화사업부)를 만들고 그 유명한 작가 앙드레 말로를 초대 장관으로 앉힌다. 이 시기를 프랑스 문화사는 문화정치가 시작된 시점으로 본다. 앙드레 말로는 처음 만들어진 문화부의 영역을 제도적으로 넓혔다. 예상대로 예산확보에 능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순수문화의 진흥과 문화향유 기회를 높이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했다.앙드레 말로로 대표되던 프랑스 우파의 문화정치는 68혁명과 함께 막을 내리고 그 뒤를 이어 등장하는 의미있는 인물이 자크 뒤아멜이다. 뒤아멜은 문화정책을 공급과수요라는 측면에서 봤다. 문화예술을 만드는 사람들과 이를 소비하는 대중들간의 관계를 정책에서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의 관점에 섰던 능수능란한 행정가였다.자크 뒤아멜의 시대에 문화예산은 앙드레 말로 시대의0.4%대에서 0.55%로 급증했고 퐁피두센터의 건립도 급진전되었다. 자크 뒤아멜에 대한 가장 강력한 평가는“문화가 문화부라는 계토 안에서만 머무는 것을 피하고, 프랑스 행정 전체가‘문화를 다루어야 하는’절대적인 필요성”을 확산시켰다는 점이다.뒤아멜의 시대가 가고 어정쩡한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 드디어 1981년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프랑스 문화정치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이른바‘모두를 위한 문화’의 시대. 이 시기를 이끌었던 이는 자크 랑이다. 여러모로 앙드레 말로와 비교되는 이 사람은 훗날‘앙드레 말로는 문화정치를 만들었고, 자크 랑은 기존의 문화정치를 뒤엎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크 랑이 직면했던 과제는 프랑스의 자존심을 건 순수문화와 빠른 속도로 상업화되는 문화산업과의 팽팽한 긴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크 랑은 프랑스 문화정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문화를 또 하나의 정치적 자산으로 인식했고 특히 건축분야에 많은 성과를 낸 미테랑 대통령이 그의 파트너였다. 자크 랑은 문화예산을 1%대로 끌어올렸고 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소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으며 미술지방기금과 축제와 과학기술문화센터를 만들었다.
장 미셀 지앙이 쓴 <문화는 정치다>(이하 문화정치)는 프랑스 문화정책의 역사에 대한 개관이다. 드골 시대의 앙드레말로와 미테랑 시대의 자크 랑과 같은 인물들이 어떻게 프랑스 문화를 고민했는가, 그리고 각 분야별로 프랑스 문화를 지키고 융성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등등이 이 책에 소개되는 내용들이다. 당연히 무지무지 재미있거나 사상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문화강국 프랑스가 문화정책을 어떻게 키워왔고 이면에서 어떤 논쟁들이 있었는가를 이해하는데는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 문화정치의 발달사가 한국의 문화정치 발달사와 많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드골시대의 앙드레말로는 노태우시대 초대 문화부장관이었던 이어령장관을 연상케하고, 1971년 자크 뒤아멜은 김대중시대 박지원장관을 떠오르게 하며, 미테랑 시대의 자크 랑은 노무현대통령과 이창동 장관이 오버랩된다. 그러나 프랑스는 우파와 좌파가 번갈아가며 문화(정치)를 발전시키는 선형적 축적을 이루었다면, 한국은 계승이 없이 늘 단절과 반복만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문화정치가 발전해가는 과정이라 여기고 참아야 하는가. 이 책이 굳이 문화정치라는 부담스러운 이름을 붙여놓은 이유는 문화가 정치만큼이나 예민하고 넘어야 할 난관과 난적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197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문화정치의 단면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1970년대의 지적, 문화적 열광은 1980년대에 와서 전 방위에 걸쳐 전례 없이 전개된 노력으로 완성되면서 문화가 제도권 내에 영입되도록 하는 선물을 선사한 반면, 1990년대에 와서는 자신이 고유한 지위에 문화가 스스로 갇혀버리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27쪽) 말하자면 70년대의 문화적 열광, 80년대의 제도화, 90년대의 고립인 셈이다. 이 워딩을 한국에 그대로 이입한다면 90년대의 문화적 열광, 2000년대의 제도화, 지금의 고립이다. 90년대김대중 정부에서 문화정치는 만개했다. 워낙에 특별한 대통령이었고 충성되고 투쟁심있는 문화부장관이 있었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이창동 장관은 한국의 문화정치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문화부의 문을 열었고 각종 기금과 위원회를 문화예술인에게 돌려주면서 문화정치의 깃발을 올렸다.그러고 나서 지금의 문화정치는 다시 갈등과 고립이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한번 열어놓은 문화정치의 장을 닫지도 확대하지도 못한채, 즉 뺏지도 주지도 못한채 갈등만 양산하고 있다. 그와중에 상업화된 문화산업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폭격 수준에 가까운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문화정치>의 저자가 프랑스 문화를 두고 한탄에 한탄을 거듭하는 것은 바로 상업화된 문화산업의 공격에 문화예술이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도 그렇다. 영상매체의 무차별적 확대는 문화정치의 기회가 아니라 기회의 원천봉쇄가 되고 있고, 문화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연예산업은 문화예술을 더 왜소하게 만들고 있다. 문화계의 영원한 숙제이자, 지금 2012년 전북도의 핵심적 과제로 잡힌 문화향유권 확대문제에 대해서도 이 책은 의미심장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결론은 문화적 민주화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문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가장 큰 문제인 비용을 국가가 해결해준다 하더라도 대중은 쉽게 문화에 다가가지못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민주화를 위한 장치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민 중 55%는 공연장에 전혀 가본 적이 없고, 71%는 클래식 연주회에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잘 읽어보면 해결의 단초가 있다. 교육에 대한 깊은 관심과 노력이다. 프랑스 문화부가 성장의 한계에 부딪친데는 세 가지 정책결정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청소년과 대중교육분야, 둘째는 영상과 음반분야, 셋째는 건축이다. 프랑스 문화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와 끊임없는 협의를 해왔고 공동규약을 맺고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문화가 문화부라는 계토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행정 전체가 문화를 다루어야 하는 절대적인 필요성이 확산된다면 해결의 단초가 있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와 프랑스의 결정적 차이. 바로 지방정부의 문화에 대한 태도다. 적어도 문화부문에서 지방정부는 역사적으로 늘 중앙정부보다 더 큰 투자, 더 큰 열정을 쏟아왔다. 프랑스의 지자체장들은‘문화가 사회에 현존하는 큰 문제점에 대해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 없으나 프랑스에 있는 것이다. 그네 리자르도라는 그르노불의 활동가는“지역이란 공간은 대학과 테크놀로지, 경제, 커뮤니케이션들에 대한 개발에서 더 설득력이 있는 지점”이라고 주장한다. 이 관점이 창조도시론의 핵심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 바로 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한 통계.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정말 큰 차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져가야 하는 또 하나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