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 |
꿈꾸는 노년 - 최일남의「풍경」
관리자(2011-12-01 16:40:11)
고위층 은퇴 노인의 현실 적응기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
은퇴의 미학
은퇴란 소유의 의미를 존재의 의미로 바꾸는 시간이다. 은퇴 이전에는 삶의 의도가 분명한 듯 보였던 사람도 은퇴를 계기로 삶이란 헤아릴 길 없는 것임을 절감하게 된다. 사회적 지위와 돈과 명예로 치장했던 과거의 이력이 아무리 거창하다해도 여러 사람 가운데 나름대로 부대끼면서 얻는 자잘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과거는 가당찮은 허영으로 정리되고 만다. 노년의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들은 이렇듯 우리의 삶을 새롭게 재해석할 수 있는 눈을 열어준다.
덧없는 과거
최일남의 단편소설「풍경」은 최상위의 관직에 머물다 정년 퇴직한 고위층 인사의 일상을 통해 소소한 삶 속에 숨어 있는 인생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직함이 없어진 노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낯선 타자들의 세계이다. 직함이 없었기에 혼자서 무엇이든 해내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과 직함 덕분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게 된 고위층 사람들은 은퇴를 계기로 역전된 삶을 살게 된다.운전기사를 둘 수 있었기에 운전면허를 딸 필요가 없었고 가정부가 있었기에 허드레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일상이 오히려 느닷없이 당하는 불쾌한 봉변처럼 짜증나는 삶이 되고 만다.「풍경」의 주인공인 정 총재에게서 보이는 것처럼,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기억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의 현재의 삶은 꺼림칙하게 되고 만다. 과거는 덧없는 관념일 뿐 현재의 실존을 어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정 총재는 젊어 한때는 고생깨나 했다지만 인생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고급 승용차가 상징하는 자리를 징검다리 건너듯 차례차례 거친 사람이다. 그는 한시도 쉴 겨를없이 사장, 회장, 이사장, 총장을 두루 역임하고 한 달 전까지도 현직 장관으로 있었다. 장관도 두 번째였다. 그가 비로소 보통 야인으로 낙착하는가 하자 어떤 민간단체에서 그를 제깍 명예총재로 추대하고 나섰다. 그래서 그의 현재 직함이 총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총재란 직함은 달에 한 번 얼굴을 비쳐도 그만 안 비쳐도 그만인 명예직인 까닭에 산 총재가 죽은 장관만 어림없다고 다들 여기는 허망한 직함이다. 이렇듯 은퇴는 단지 사회적 생산 활동으로부터 벗어나는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즉 은퇴는 직업적인 활동을 그만두는 정도의 단순한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정 총재처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노인의 짜증은 과거의 자랑스러운 이력이 현재의 삶에 아무런 효력을 미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상실감의 발로다.
분열된 자아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것만큼만 나이를 먹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숫자상의 나이보다 젊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퇴라는 형식으로 자신의 나이가 노년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통고받을 때 오는 충격은 개인의 중후반 생애 주기에서 주체성의 혼돈을 낳는다고 한다. 이때 은퇴를 맞는 당사자는 충격과 더불어 상실감, 패배감, 소외등이 혼합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고령 은퇴는 젊은 나이의 은퇴에 비해 새롭게 도전할 새로운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은퇴자의 깊은 상실감은 존재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긴 세월 직장생활에 골몰하다가 집 안에 처박히게 되면 대개 그런다고 들었다. 강퍅하게 굴던 사람도 여간해서 내색은 하지 않지만 깊은 밤 홀로 눈을 뜨고 있으면 듣는다고 한다. 야반삼경에 나는 집 안의 여러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장이 툭 하면 냉장고는 딱 하고 받는다. 텔레비전인들 가만히 있을손가. 타다닥하고 장단을 맞춘다. 요것들이 제각각의 체수나 규격에 알맞은 단발음을 내는 푼수로 실직한 가장도 제 몸 깊숙한 곳에서 간헐적으로 토해내는 신음을 듣는다고 한다. 둔감해서 못 들었다면 다행이지만 민감한 자는 깊이 잠든 처자식들의 숨결이 고우면 고울수록, 나팔꽃처럼 당나귀 귀처럼 한껏 열린 귀로 애간장이 녹아내리는 소리를 듣게 마련이라고 했다. 몸을 뒤척이면 뼈마디가 우두둑 비명을 지른다. 그게 두려워 잔뜩 숨을 죽이면 쇠잔한 내장 기관들의 음험한 아우성 같기도 한 소리가 괴괴한 야음을 타 한층 또렷하게 들린다고 경험자들은 입을 모은다.
-최일남, 「풍경」, 185~186면
이상과 같이 노인에게 있어 여유 있는 시간은 애물단지가 되기 십상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밤낮없이 일에 시달릴 때는 발견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은퇴로 인해 모든 것을 털고 난 뒤에는 구구절절 애닯은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은퇴 후의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노인들은 죽을 가능성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가능성이 없는 현실을 인지하면서 스스로를 천덕꾸러기 천민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은퇴 노인들은 소설 속의 정 총재처럼 어린아이들의 철없는 말 한 마디에도 자존심이 상하고 주변사람들의 자잘한 타박에도 분노의 감정이 이는 것이다.헌칠한 외모에 남근주의적 카리스마를 가진 고위층의 위신도 아랫사람이 있을 때나 가능한 관념이다. 아랫사람이 존재하지 않을 때는 노인의 밑바닥 자존심마저 까탈과 고집으로폄하되고 만다.노인으로의 예정된 여정은 어떤 인간이든 피할 수 없는 존재론적 숙명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노인 또한 사회적 권력망 구조에 의해 주변화되고 타자화되고 있다. 노인에 대한차별은 나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노인에 대한 차별적인식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억압 기제일 뿐이다.이제 노인 억압에 대해 침묵으로 묵인해온 관행을 깰 일이다. 그래서 노인의 분열된 자아를 단순한 노인 문제로 치부하는 대신 사회의 핵심 문제로 부각시켜야 한다. 작가는 고위층은퇴 노인을 통해 은퇴가 노인들에게 굴욕의 장으로 작동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경쾌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펼쳐 보임으로써 노인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제기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