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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
[아름다운 당신] 미술품 전문운송 ‘예술사랑’ 주호영 대표
관리자(2011-12-01 16:35:58)
그가 움직여야 비로소 전시가 열린다 황재근 기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완전히 준비된 작품들이다. 동선을 고려한 배치, 시야에 맞는 높이, 작품이 돋보이는 조명. 이런 조건들이 갖춰졌을 때 관람객은 작품에 몰입해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작품들이 원래부터 그자리에 그런 모양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의 오랜 노력이 들어가야 한번의 전시가 치러질 수 있다.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작가가 있고, 전시를 기획하고 총괄하는 큐레이터도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을 운반하는 사람도 있다. 섬세한 관심이 필요한 미술품과 유물들을 아무에게나 맡길 이는 없다. 주호영 예술사랑 대표는 미술품 전문 운송을 전북에서 최초로 시작한 사람이다. 그와 인터뷰 약속 시간을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전화를 걸 때마다 통화중일 때가 다반사였고, 잠깐 만나고도 길게 이야기할 짬이 나지 않았다. 어렵게 만난날, 그는 예술중 학생들의 작품을 운송하고 있었다. 유명 미술가의 작품이나 유물들을 나를 때보다 수월한 작업 아닐까.“어떤 작품이든 작가의 정성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름 있는 작가든, 학생들의 작품이든 작가가 혼신을 다해 만든 작품인 건 마찬가지에요. 그런 선입견을 가지면 이 일을 못합니다. 미술품은 워낙 예민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가볍게 먹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대개는 미술품이라 하면 작가나 가격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똑같이 소중한 운반품이다. 끝까지 안전하게 전달해야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도전하다 지금은 오랜 경험으로 작가들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베테랑이 됐지만 그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1997년 IMF의 한파는 물류영업사원이었던 그에게도 불어 닥쳤다. 직장을 나온 그는 용달트럭 하나로 운송업을 시작했다. 물류 쪽 일을 했던 터라 운송에 대해서는 사전정보도 있던 터였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에 서울로 가는 액자를 나르게 됐다.“실으려고 보니까 그냥 액자가 아니라 작품이더라고요. 그 작업을 하면서 작가들과도 알게 됐고,서울에 가서 그쪽의 전문운송업자들을 만나 이야기를하다 보니‘아예 이쪽으로 전향해서 전문으로 해보는게 어떻겠냐’고 권하더군요.”모험이었다. 미술 전공자도 아니었고, 이쪽 시장에대해 알고 있는 바도 없었다. 하지만 남들이 안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이 그의 관심이 쏠리게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전북지역에는 미술품 전문 운송업에 종사하는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미술품도 지붕이 없는 일반 운송차량으로 나르기 일쑤였다. 만약 전문업자가 필요하다면 타지에서 더 비싼 비용으로 불러야 하는 형편이었다. 꼼꼼한 시장조사를 해본 후, 결정을 내렸다.“미술품을 전문으로 운송하는 사람들이 서울 쪽에는 많았어요. 지방에서도 광역시와 같은 대도시에는이미 직업으로 정착해 있었구요. 그런데 전북에는 없으니까, 장비를 갖춘다면 충분히 수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죠.”탑차를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미술품 전문 운송을 시작했지만, 이전에 없었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일반 운송차량으로 미술품 운송을 계속해왔던 작가들은 전문운송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영업과 홍보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생계를 꾸려야했기에 이 일만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처음 2~3년간은 힘든 시기를 맞아 외유를 하기도 했다.하지만 한번 시작한 일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직 젊은 나이였고 한 번쯤은 더 부딪쳐봐야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성격상 쉽게 접지를 못해요.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니까 미련이 남기도하고. 사업을 할 때 힘든 시기에 더 투자를 하라고 하잖아요. 그때가 그런 때가 아니었나 생각했어요.”포기라는 말이 머리를 맴돌 때 그는 오히려 과감하게 앞으로 나갔다. 차량과 장비를 새로 구입하고 본격적으로 전문 운송에 매달렸다. 반환점은 머지않아 찾아왔다. 2004년 도립미술관 개관전에운송을 맡으면서부터 그에게 일을 부탁하는 작가와 전시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깐깐한 원칙이 신뢰를 만들다 그의 일은 단순히 운송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술품 또는 유물을 나르는 일은 단순한 배달과는 차원이 다르다. 재질도 형태도 크기도 각기 다른 작품들을 특성에 맞게 포장하고, 운반해서 설치하기까지가 모두 그의 몫이다. 전시가 끝나면 역순으로 반복한다.“장르별로 재료별로 포장방법도 운반방법도 다 달라져요.어떤 작품은 고무장갑을 끼고 만져야하고 어떤 작품은 면장갑을 껴야하죠. 평면포장인지 입체포장인지에 따라 파손을막기 위한 부자재도 달라지고요. 유물의 경우에는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서 중성지 사용해야 해요.”복잡다단한 포장 운송과정을 위해서는 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다. 의뢰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일이 모두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는다. 전시가 많은 철에는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 탑차 한 대에, 별도의 사무실도 없는 1인 기업이지만 더 많은 인력이나 장비가 필요할 경우에는 바로 섭외할 수 있도록 전국의 전문 운송업자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이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에요. 철저하게 계획한 시간대로움직여야 해요.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하면 좋겠지만 그렇게일을 맡아서 하다 마음이 급해지면 작가에게 폐를 끼치게 됩니다. 일을 맡고 있는 중이라면 다른 의뢰가 들어오더라도거절할 수밖에 없어요.”탑차 한 대를 끌고 전국 팔도 안 가본 곳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 2006년 찾았던 울릉도.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역사와 의식, 독도진경전>을 마치고 다음 전시장소인 울릉도 독도박물관으로 작품을 운송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전국 60여명의 작가가 함께했던 대형 전시였던 터라 서울의 운송업체에 먼저 견적 의뢰가 먼저 들어갔고, 전북 유일의 전문운송업자였던 주대표에게도 문의가 왔다. 경쟁입찰을 하게 된 셈.“그 쪽 업체에서는 저보다 가격을 싸게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철저하게 원가만 계산해서 했는데도 가격이 더 높았어요. 어떤 차이가 있었냐면 그쪽 업체는 포항에서 쾌속선에 작품을 옮겨 싣고 울릉도에서 다른 차로 옮겨서 운송하는방식이었고, 저는 7시간 걸리는 카페리호를 이용해 탑차에 작품을 실은 채로 바다를 건너서 박물관까지 가는 방식이었어요. 당연히 시간과 돈이 더 많이 드는 방법이었죠.”작품을 옮기는 횟수가 많을수록 파손의 위험은 커진다. 주대표는 평소 원칙대로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고, 작가들은 그를 인정해 일을 맡겼다. 포항에서 배를 타기까지 준비기간만 3일이 걸렸지만, 무사히 책임을 완수했고 지금까지도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요령 없다 느껴질 만큼 원칙적으로 일하지만 한번 그에게 일을 의뢰한 작가들은 전적으로 그를 신임하고 다시 찾게 하는 것, 주대표의 영업 노하우다.“만약 제 실수로 작품을 파손하거나 한다면 제 성격상 다시는 이 일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만큼 철저히 해야죠. 그런 각오로 하고 있어요.”그런 신뢰가 쌓여 지난해에는 새로 건립된 경기전 어진박물관에 태조어진을 모시는 일을 맡기도 했다. 모든 작품이 똑같이 소중하다 철저하게 작품을 중심으로 생각하다보니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볼 때도 다른 이들과는 다른 시각이다. “박물관과 전시관은 유물과 작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전시해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설계부터 다른 건물들과 달라야 해요. 작품의 이동경로도 확보해야하고, 작품 전용 출입구와 승강기도 갖춰야죠. 지역의 전시관과 박물관들은 그런 부분을 신경 쓰지 못한 곳이 많아 아쉽습니다.”그의 원칙 중 또 하나는 자신이 참여한 전시의 오픈에 가지 않는것이다.“ 바쁘기도 하지만 초청을 받더라도 작가분께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가지 않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돼서 참석할수 있지만 다음에 다른 작가의 오픈 때는 또 참석 못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제가 어떤 작가의 작품은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다른 작가의 작품은 소홀하게 생각한다고 비춰질 수도 있거든요.”전시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그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때로는 그런 점이 서운하지는 않을까?“글쎄요. 공연도 마찬가지잖아요. 화려한 무대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음향팀, 조명팀, 설치팀이 있듯이 저도 전시에서 그런 역할이죠. 전국을 다니고, 좋은 전시를 보니 부럽다는 말도 들지만 사실 운반을 마치기 전까지는 마음을 졸이느라 그런 여유가 없어요.” 미술에 문외한이었지만 현장의 경험과 꾸준한 공부를 통해 쌓은 그의 식견은 이제 전공자들도 자문을 구할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작품을 좋아하느냐고 가볍게 물었더니 생각지 못한 답변이 돌아온다.“보면서 눈에 들어오는 작품들은 있죠. 그래도 그런 선입견을 가지면 안돼요. 다 똑같이 중요한 작품들이니까요.”참으로 철저한 원칙이다. 그는 최근 10년간 정들었던 애마대신 새로운 차량을 구입했다. 그동안 아쉬웠던 특수장비들을 가득채운 차량이다. 물론 모두 작품의 안전에 관련된 장비들이다. 여유가 생겨 투자했다기 보다는 앞날을 위한 새로운 도전이다. 앞으로는 유물 운송 쪽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 생각이라고. 자기분야에서 신뢰받는 전문가로 꼽히길 원한다는 주호영 대표. 그와 그의 애마는 오늘도 소중한 작품을 실고 어딘가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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