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 |
[기획특집] 지역문화 다시보기 - 순창 1
관리자(2011-12-01 16:33:04)
다양한 맛의 역사와 문화, 장류에 다 묻힐라
황재근 기자
순창에는 고추장밖에 없다고?
깊은 산만큼이나 깊은 맛을 내는 장류는 오늘날 순창을 상징하는 특산품이다.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만나러 순창 만일사를 향하던 중 민가에서 먹은 초시(고추장의 전신으로 추정) 맛을잊지 못해 조선을 개국한 후 진상하라 했다는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전래된 것은 조선 개국 하고도 한참 후이니 지금과는 다른 맛과 형태였겠지만, 순창의 장이 임금에게 진상될 정도로 절품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순창의 장은 좋은 물과 재료, 장 담그기에 적합한 기후 그리고 훌륭한 솜씨가 어우러져 숙성시킨 맛이다.순창의 장을 테마로 한 순창장류축제는 지역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했다. 6회를 맞이한 장류축제는 2년 연속 문화체육관광부 유망축제로 선정됐다. 축제위원회는 올해 축제 방문객을 17만여명으로 잠정집계했다.순창군은 장류축제를 박람회 형태의 산업형 축제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순창군의 문화관광역량이 고추장과 장류축제에만 집중되는 데 대한 문제제기도 나오고 있다. 서편제와 동편제의 시조를 배출한판소리의 고향, 하서 김인후로부터 내려오는 유림의 맥 등 순창문화의다양한 면모들이 고추장으로 획일화된 이미지에 가려진다는 지적이다.다른 농촌지역과 마찬가지로 순창도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인한 고민을 안고 있다. 특히 순창은 인구의 30% 이상이 65세를 넘는 초고령화사회로 진입한지 오래다. 전주, 남원, 광주 등 인근 도시와의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중·고등학교 때부터 고향을 떠나는 인구도 늘고 있다.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면 문화계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지역문화계에서 활동해온 장교철 순창문인협회장은“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순창만의 문화를 말한다면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장회장은“지역 재정이 약하고, 군이 한정된 자원을 투자하면서 관광과 상업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하다보니 순창 지역문화의 색깔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한 순창의 문화예술인은 또 다른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지역 대부분의 단체와 조직에서 관료출신이나 지역유지들이 장을 맡고 있다. 문화관련 단체와 기관도 마찬가지”라며“실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역 유력인사들이 단체를 맡다보니 실질적인 활동보다는 외형에 치우치게 될 수밖에 없다”고비판했다.또 다른 문화예술인은“축제 등 지역행사에서도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찬밥취급을 당하기 일쑤”라며“물론 프로 공연자들을 부르는 것이 당장은 좋겠지만 멀리 내다볼 때 지역의 자생적인 동호인들에게도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산과 강에 깃든 예술인의 맥
교통이 불편해‘육지의 섬’이라 불렸던 순창에는 예로부터 은거한 선비들이 많았다. 이들이 자연을 벗 삼으며 남긴 시문은 순창에 흐르는 문(文)의 전통을 상징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한국문인협회 시분과장, 한국펜클럽 부회장 등을 역임한 故권일송 시인이 순창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장교철 회장은 빨치산 시인, 리어카 시인으로 알려진 김영 시인을 재조명이필요한 순창 문인으로 꼽았다.김영 시인은 국방경비대의 가혹한 토벌을 보고 전북 유격대를 찾아가 입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인은1952년 전염병으로 낙오돼 20년형을 언도받고 1964년 가출옥 한 후 빨치산 전력으로 인해 여러 직업을전전하다 결국 과일행상으로 생계를 꾸렸다. 그 중에서도 문학에 대한 꿈을 놓지 않고 <깃발 없이 가자>와 <리어카의 시인> 등 시집과 수필을 통해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이태의「남부군」과 영화 <남부군>에도현실과 이상에 갈등하는 문학청년으로 등장한다. 장회장은“김영 시인은 어릴 적부터 순창의 수재로 이름날렸고, 이념적인 동기보다는 인도주의의 신념으로 입산했다. 출소 후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중에도 문학활동을 계속하시다, 1995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소개했다.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좌우로 갈려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었던 대립의 역사는 아직 순창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김영시인의 안타까운 죽음 이후 순창문인들이 그를 기념하는 백일장대회를 열고 시비 건립 등을 추진했으나 예민한 지역정서로 인해 1회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장 회장은“회문산은 분단 역사에서 상징적 공간이다. 통일의 염원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가꿔가야 한다”며“그 역사의 산 증인인 김영 시인에 대해서는 시간이 흐른 후라도 그의삶과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순창의 농악은 호남좌도 농악의 범주에 들어간다. 현재는순창국악원에서 임실필봉농악과 남원농악을 전수하고 있다.90년대 중반부터 임실필봉농악을 전수해온 박연숙 씨는“순창 독자적으로 전래해 내려오는 가락은 없는 상황에서 가까운 임실과 남원의 가락으로 복원된 것”이라며“현재 순창에는 필봉굿을 치는 지역과 남원굿을 치는 지역이 약 반반 가량이다. 정읍과 가까운 쌍치·복흥에는 우도농악인 정읍농악이 들어온 상태”라고 설명했다. 박씨는“여러 지역의 굿이 이식되다보니 갈등과 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존중하며 공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섬진강 지킴이들, 문화제로 다시 뭉치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한 섬진문화제는 민간에서 주도 하고 있는 문화행사로 의미가 크다. 섬진문화제는 지난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논란이 됐던 섬진강댐 반대 운동 이후 당시반대 운동에 참여했던 순창지역 단체와 주민들을 중심으로시작됐다.재식 섬진문화제 제전위원장은“조용히 있으면 언제 또개발의 움직임이 있을지 몰라 섬진강의 가치를 알리고 보존을 위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게 됐다”며“처음에는 군에서도지원을 해주지 않아 최소한의 예산만으로 진행했고, 잠시 중단한 기간도 있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민간주도의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고 소개했다.현재 섬진문화제는 순창군 농민회와 지역 농협노동조합 등시민사회단체가 제전위원회를 꾸려 진행하고 있다. 섬진강을 주제로 한 사생대회와 글짓기대회를 비롯해 강가에서 즐길 수 있는 나룻배 타기와 물 수제비 뜨기, 짚공예 체험 등다양한 체험 거리와 순창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공연단체들이 꾸미는 무대로 구성된다.선재식 위원장은“순창 내에서 섬진강과 접해있는 4개 면에서 돌아가면서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며“내년에도 자연의정서에 맞는 음악과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전통 문화체험을중심으로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순창에는 잘 익은 장만큼이나 풍부한 맛의 역사·문화 컨텐츠가 살아있다. 특성화와 역량집중도 좋지만 한 가지 맛으로만 획일화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