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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 |
[문화칼럼] 국민국가사(史)조차 쪼개는 사람들
관리자(2011-12-01 16:32:42)
국민국가사(史)조차 쪼개는 사람들 오항녕 전주대학교 교수 몇몇 대학교가 퇴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실정을 보면 퇴출당해도 싸다는 생각도 들지만, 주무 부처인 교육과학부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은 듯하다. 예술대학에서 취업률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듯이 대학평가의 기준이 갖는 타당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이른바 대학 운영에 대한‘감독’기관으로서 그동안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책임이 바로교과부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헌데 대학도 대학이지만, 곳곳에서 학과 단위의 퇴출이 나타나고 있다. 여러 학과가 있지만 그중 심한 곳이 인문대학에 속하는 학과들이다. 역사학과나 철학과가 피해갈 리 만무하다. 이미 지방 여러 대학에서 역사학과는 관광 계통 학과쪽으로 통합되든지, 무슨 콘텐츠학과라는 식으로‘시대와 호흡하며(!)’, 가 아니라, ‘시류에 영합하며(!)’생존하고 있다.그러면서‘인문학의 위기’라고 한다. 아니다. 대학 강단의역사학과 교수, 철학과 교수들의 위기이다.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역사학과의 위기는 예견되어 있었다. 현대의 오만이기는 하지만, 역사학 역시‘진보사관’과‘근대주의’의 오만 속에서 협애해졌다. 고대-중세-근대라고 부르는 순간 작동하기 시작하는 진보사관과 근대주의는 사실 역사학의 무덤을 파는 일이었다. 사실과 가치두 측면 모두 현대의 삶이 지고의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누가 지난 경험을 진지하게 현실로 끌어 오겠는가? 과거 또는경험은 기껏해야 호고(好古) 취미일 뿐이다. 마치 사극(史劇)이나 유사 역사평론이 역사학을 대신하듯.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학이 비실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현재 대학에서 이루어지고있는 역사교육은 국민국가사로 한정되어 있다. 19세기국민국가의 완성에 충실히 시녀노릇을 했던 역사는 국민국가 탄생과 유지에 기여했지만, 한편으로는 국민국가의 아이덴티티에 방해가 되는 기억은 지워버렸다. 전국 모든 대학의 역사학과(국사학과)는 고대사, 고려사,조선사, 식민지 및 현대사로 되어 있다. 국사(國史)다.스테레오타입의 교과가 국민국가답게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다.사람은 여러 차원의 역사를 만들며 살아간다. 가족사는 누구나 쓰게 되어 있다. 학교에 다니면 학교의 역사를 구성한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은 교회나 절의 역사를, 또 자연스럽게 자기 고장의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국사는 가족사에 대해 봉건적이라는 굴레를씌워 봉쇄한다. 그 외에 학교나 사회단체, 지역 등 사람들이 곳곳에서 만들어가는 역사는‘역사교육’의 대상이아니다.20세기‘근대’역사교육이 들어선 이래 지금까지, 역사학은 근대주의에 입각한 진보사관을 통해 역사학의바탕인 과거의 경험을 부정했고, 국민국가사로 자신의정체성을 제한하면서 역사학의 문채(文彩)를 지웠다.게다가 역사학이 해줄 수 있는 풍부한 일, 즉 자료발굴과 정리, 번역과 해설의 책무는 한갓 허드렛일로 버려두고 줄창 논문만 요구했다. 재미없는 논문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시간의 문제일 뿐, 현재의 역사학을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학과는 차례차례 망할 것이다. 왜 망하는지도 모른 채. 여기에 위험요소가 하나 더 늘었다. 한국현대사학회라는, 뉴라이트와 인적 구성과 지향이 상당히 겹치는 어떤 학회를 중심으로 역사교과서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게 또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위 학회의 건의와, 역사교육과정 개발추진위원회(위원장 이배용),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이태진), 교과부(장관 이주호)가 주체가 된 개정작업이다. 발단은교과부가 지난 8월 9일“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과 교육과정”을 고시하였는데, 그 고시에 당초 교육과정심의회를 통과한 초중고 역사교육과정안(한국사 부분)의 원안이 바뀌었고, 그중 하나가‘민주주의’개념이 모두‘자유민주주의’로 바뀐 것이었다.절차 문제는 차치하고, 굳이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liberal-democracy)로 표기하려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민주주의를 시장경제 중심의 자유주의 베이스로만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평등한 시민권에 방점을 둔 민주주의와 소유권의 자유와 시장우위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의대립과 조정의 역사가 배어있다. 자유민주주의 개념은 당연히 복지, 사회정의, 이런 거 생각하는 사회민주주의(socialdemocracy)와 다르다. 전자를 채택하면 후자는 역사교육에서 배제되는 것이다.현행 헌법에 나오는‘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the basicfree and democratic order’로 번역되기 때문에 이번 교육과정에 집어넣으려는 자유민주주의(liberal-democracy)와애당초 기원과 맥락이 다르다. 이런 논의가 오고가는 중에논리가 궁색해지자 자유민주주의론자들은 자유민주주의는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그럴 거면 그냥 민주주의라고 하면 되지, 왜 굳이 자유민주주의라고 쓰고, 거기에는 사회민주주의의 개념도 포함되어있다고 설명까지 해야 하나?이렇게 해서 국민국가사로 편협해진 역사학으로도 부족해서, 이제는 그 국민국가사의 일부만으로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보편적 공감이 아닌 특수한 배제로작동하는양상, 공익이아닌사익이우선하는양상,《 서경(書經)》의 표현대로 하면 도심(道心)이 아닌 인심(人心)으로작동하는 양상이 요즘 정부 정책의 기조라는 건 누구나 알고있던 바이지만, 역사교육까지도 이렇게 세심하게 관리할 줄은 몰랐다.현재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사연구회 등 11개 연구단체가개정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목격담 추가. 10월 28일, 서울 서대문 4.19혁명기념도서관 강당에서, “보수와 진보가 보는 민주주의-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론, 헌법, 역사”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역사교과개정 논란의 원인이 된‘자유민주주의’개념을 토론하는자리였다. 발제를 맡은 박명림 교수(연세대)의 발표에, “임시정부 이래 이승만 정부까지 어떤 헌법, 연설, 인터뷰에도 자유민주주의는 없다”는 내용이 구체적인 사료와 함께 제시되어 있었다. 발표문에서 시종일관‘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의도적으로 썼던 김용직 교수(성신여대)는 단 하나의‘자유민주주의’에 대한 1차 사료도 제시하지 못하고, 모두 연구서에서 근거를 차용했다. 일단 현재까지, 역사학자인 내가 볼때 임시정부부터 이승만 정부까지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기본방향이라는 걸 보여준 사료는 없다.목격담을 추가하는 이유는, 박명림 교수에 대한 토론 패널을 맡았던 권희영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의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역사학에서 사료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해석이다. 이는 역사학의 기본이다. 그런데 박교수는 사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없었다고 말하고있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그의 말대로, “역사학에서 사료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역사는 해석이다.”그러나“역사학은 사료가 없이는 말을 할수가 없다.”이것이 더 역사학의 기본이다. 알고 보니 그 분이 현대사 전공인 역사학자시란다. 그리고 그 분이 마침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이신지라 그날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했는데, 한국현대사학회는 학술단체이지 운동단체가 아니라고하셨다. 학술이 운동보다 그리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학술이라도 제대로 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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