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 |
[문화현장] 가을날의 뜨락음악회_열다섯 번째
관리자(2011-11-04 16:42:04)
가을날의 뜨락음악회_열다섯 번째(전주 향교 뜨락, 10월 22일)
판소리와 인디, 通하였느냐
황재근 기자
고즈넉한 가을밤, 옛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전주 향교에 개성 만점 인디밴드들이 출현했다. 드럼이 묵직하게 가슴을 울리고 전자기타의 강렬한 음색이 밤하늘에 퍼진다. 이윽고 보컬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노래는, 바로 판소리 사설. 이 어색한 조합이 한 데 뭉치니 이상하게 참 잘 어울린다.올해로 열다섯 번째를 맞이한‘가을날의 뜨락음악회’가 지난 10월 22일오후 7시 전주향교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사)마당에서 주최하는‘가을날의 뜨락음악회’는 생활 속에서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을만들기 위해 지난 1997년 처음 시작됐다. 올해 공연은 <인디, 판소리를탐하다Ⅱ>를 주제로 인디밴드와 판소리 사설의 독특한 만남을 선보였다.
<인디, 판소리를 탐하다>는 (사)마당에서 추진하는‘판소리재발견 프로젝트’다. 한국, 그리고 전주가 내세우는 대표적 공연예술인 판소리에 인디밴드의 젊음과 도전정신으로 새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6팀의 인디음악인들이 판소리 다섯바탕의 사설 중에서‘만남’을 주제로 한 눈대목을 하나씩 골라 자신들의 색깔대로 새로운 음악으로재탄생시켰다. ‘만남’은 이 프로젝트의 숨은 주제이기도 하다. 신·구 세대 간의 만남, 전통의 상징 향교와 도전의 상징인 인디음악의 만남, 그리고 이 낯설고 새로운 음악과 관객들의 만남까지 이번 공연을 관통하는 주제였다.<인디, 판소리를 탐하다>는 지난 6월 2011전주대사습놀의 기획공연으로 이미 무대에 올라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 공연에는 당시에 참가했던‘니나노 난다’,‘ 빅팀’,‘ 고구려밴드’,‘ 스타피쉬’에더해새로운팀들이합류했다. <메이드인전주: 더밴드>라는 제목으로 전국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전주토종밴드‘레이디스 앤 젠틀맨‘과 ’S.T.M.B’두 팀이다. 전주대사습놀의 당시의 공연과 이번 공연이 달라진 점은 출연팀만이 아니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새로 만든 곡 뿐 아니라자신들의 음악도 함께 연주해, 각 팀의 개성이 보다 뚜렷하게드러나도록 했다.
6팀 6색, 새로운 해석의 판소리
무대에 오른 6팀은 각자가 고른 판소리 눈대목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가장 실험적인 무대는 퓨처판소리듀오‘니나노난다’의 공연. 이들이 선택한 대목은 적벽가 중 조조가 관운장을 만나 목숨을 애걸하는 대목이었다. 고수대신 디제이가, 북 대신 믹서(mixer)를 잡고 넣는 반주 위로 관운장의 호통소리가 장쾌하게 울려 퍼지자 관객들도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힙합과 판소리의 퓨전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힙합은 판소리와 마찬가지로 멜로디보다 박자를 타고 부르기 때문에 가장잘 어울릴 수 있는 조합으로 기대를 모았다. 힙합듀오‘빅팀’은 흥보가 중 흥보를 찾아가는 제비의 노정기를 선택했다. 흥겨운 비트에 얹힌 힘 있는 랩이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다.락 음악에 국악을 접목하는 시도에 익숙한, 아라리락의 선구자‘고구려밴드’는 그야말로 원숙한 무대를 선보였다. 심청가 중 심청이 용궁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대목을 맡은 이들은,판소리 사설을 거의 그대로 가사로 차용하면서도 강렬한 하드락 반주가 전혀 모나지 않게 어울렸다. 판소리의 발성법과도유사해 보이는 내지르는 목소리가 듣는 이를 압도했다.우리 지역의 고참밴드‘스타피쉬’역시 독특한 해석의 곡으로 갈채를 받았다. 이들은 수궁가 중 별주부가 토끼를 만나는대목을 랩과 노래, 나레이션으로 재구성해 별주부와 토끼가대화를 주고받는 형태로 만들었다. 래퍼가 별주부의 입장에서토끼를 꼬드기고 보컬은 흔들리는 토끼의 마음을 노래로 불렀다. 익살스럽고 신나는 무대에 관객들도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공연을 만끽했다.새롭게 합류한 지역밴드들도 관심의 대상. 모던 락밴드‘레이디스 앤 젠틀맨’은 춘향가 중 광한루에서 몽룡과 춘향이 마주치는 대목을 두 곡으로 나누어 불렀다. 첫 번째 곡인‘SheMeets The Sky’는 춘향이 몽룡을 만나 그로인해 겪게 될 고난을 굵직한 남성 보컬의 목소리로 무겁게 내리 깔았다. 두 번째 곡인 ’Let Me Fly’는 발랄한 여성보컬의 목소리로 연분을만난 두 사람의 기쁨을 표현했다.20대 젊은 피로 구성된‘S.T.M.B’는 흥보가 중 놀부가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목을 선택했다. 제비가 가져다 줄 재화를 기대하는 놀부의 탐욕이 역설적으로 신나는 사운드를 타고 울려 퍼졌다.
새 옷 입은 판소리, 세대의 벽 넘다
‘S.T.M.B’의 보컬 윤준홍 씨는“판소리 대목이지만 판소리 색깔이 나지 않도록 새롭게 만들어 보려 했는데 신기하게도베이스나 드럼에 자꾸 한국적 사운드로 가게 되더라”며“어려웠지만 재미있는 작업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친구와 함께 공연을 관람한 송지은(26)씨는“다소 난해한팀도 있었지만 판소리가 젊은 세대도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음악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고 말했다.<인디, 판소리를 탐하다Ⅱ>를 통해 발표된 곡들은 각 팀들의 공연과 앨범 등을 통해 더 많은 대중을 만나게 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