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 |
2011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 작가와의 만남
관리자(2011-11-04 16:39:46)
2011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 작가와의 만남(10월 22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전시관 내)
1mm안에 우주를 담다
전통사경 기능전승자, 외길 김경호
대한민국 최초의 전통사경 기능전승자
올해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서는 특별한 전시가 기획됐다. <사경전>이다. 전통사경을 재현하고, 재해석한 작품을 통해 우리의 찬란했던 사경문화를 돌아보자는 취지가 담겼다. 지난 10월 22일 <사경전>의 대표작가인 김경호씨가 관객과 만났다. 관객들의관심이 뜨거웠던‘작가와의 만남’현장을 찾았다.김경호씨는 한국사경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해 대한민국 전통사경 기능전승자 1호로 선정됐다. 불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한글을 깨치면서서예를 시작했고 중학생 시절부터 불교 경전을 옮겨썼으니 그의 인생은 서예와 함께 흘러왔다고 해도과언이 아니다. 사경 제작과 연구에 대한 맥이 끊어지다시피 했던 때에 김 회장은 독학으로 사경을 공부해 국내 사경의 최고 권위자에까지 이르렀다. 작가의 호‘외길’에는 사경에 대한 한 길 만을 바라보는 본인의 소신과 그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외로움이 담겨있다. 그의 뛰어난 사경작품활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알려져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에서‘사경특별전’을 가졌으며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는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우리 전통‘사경(寫經)’은 불교 경전을 옮겨 적는 것이다.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경전의 보급을 위해 필사했지만 나중에는 수행으로까지 의미가 확대되었다. 사경은 인쇄술의 발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세계 최초의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경도‘사경’의 결실이다. 사경문화가 가장 활짝 꽃피웠었던 고려시대에는 사경원이 따로 설치되고 사경전문가들을 원나라에 수차례 파견하여 사경기술을 전수해주었다.김회장은 이 날 작가와의 만남에서 관객들에게 사경예술의역사적·문화적·예술적인 의의와 가치를 설명했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쇠퇴의 길을 걸어온 사경이 그 유물까지도 손실되는 등 찬란하게 꽃 피웠던 고려사경의 가치가지켜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1mm 공간 속에 장엄하고 정교한 불교 세계가 담기다
이번 사경전에 내놓은 <감지금니 불설아미타경>은 부처의 공덕과 극락의 일을 적은 경전이다. 작년 10월에 시작하여 올해 3월까지 6개월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만들었다. 그는 동양불교미술의 집약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이 작품을 “세계의 성경사경, 코란사경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전통고려사경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고싶었다”고 소개했다.6개월 동안의 작업과정은 마이크로렌즈를 이용한 사진과영상물로 기록되었다. 사경 제작 과정을 기록한 영상물이 상영되자 전시장은 고요해졌다. 0.1mm 두께의 붓에 금가루를묻혀 불경을 새기고 그림을 그리는 정교한 작업에 모두 숨을죽인 까닭이다. 가느다란 붓끝으로 단 1mm에 5~10개의 금선을 새겨 넣는 모습에 탄성이 새어나온다. 1mm 공간 속에서 부터 장엄하고 정교한 불교 세계가 표현되는 것이다. 사경 작업에 가장 적절한 상태는 35도의 온도, 90%의 습도가갖춰졌을 때다. 보통 사람이면 잠깐도 견디기 힘든 작업환경에서 온 신경을 기울여 정교하고 섬세한 글자와 그림을 새기는 작업이 몇 달 동안이나 계속 된다. 그의 사경작업은 그야말로‘수행’이다. 오랜 시간 이러한 작업에 몰두하다보니 어느 날은 생니가 빠지기도 했단다.
느림의 미학, 사경
예술성과 종교성 외에 사경이 지닌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성인의 말씀을 옮겨 적는 사경은 필연적으로‘느림의 미학’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천천히 정성껏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옮기다 보면 온 정신이 나에게 집중되며 자연스레성찰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단편적이고 피상적인것들이 넘쳐나는 요즘, 사경은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김 회장은 국내 전시들이 마무리가 되면 프랑스 파리건너가 전시를 기획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뉴욕초대전이 예정되어 있다. 활발한 해외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사경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또 하나, 그가가진 바람은 전통사경이 제대로 전승되고 발전할 수 있도록후배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전통사경이 지닌 가치에비해 아직은 전문교육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전문가 배출이 어렵고 이 때문에 사경의 활발한 전승이 이루어지지 않고있다.“사경 전문가들이 여럿 나온다면 다작이 어려운 사경 작업을 공동으로 하는 프로젝트도 가능합니다.”그의 바람은 체계화·전문화된 사경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