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 |
마을이 희망이다 - 장수 하늘소 마을
관리자(2011-11-04 16:35:58)
산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닿을 수 있는 그곳
장수 하늘소마을로 가는 길. 갈평마을회관에 이르러 문원산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디에 계신지요?”하늘소마을에 가기 위해서는 마을회관에서 조금 더 올라와야 한단다. 설명을 해주시고는 길이 복잡할 거라 여기셨는지 한마디를 덧붙인다.“저희 마을에 오시려면 산을 바라보고 올라 오셔야 합니다.”산 중턱에 있을 하늘소마을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한 말이었지만, 참 울림이 큰 말이었다. 산을 보지 않고서는 다다를 수 없는 마을. 삶 속에서 자연을 이정표 삼아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차보다는 사람과 친했을 법한 길을 따라 해발530m 하늘소마을에 도착했을 때 문원산 위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산을 바라보고 살았을 사람들, 산을 닮은 사람들의 마을. 하늘소마을과의 첫 만남이었다.
도시민들, 귀농공동체를 조성하다
이곳 하늘소마을은 처음부터 마을이 조성되어있던 곳은 아니었다. 1970년대에 마을조성을 위해 개간되었지만 활용하지 못했던 곳. 이곳에 본격적으로 마을이 조성된 건 2003년 경. 귀농을 꿈꾸던 10개의 가구가 인터넷을 통해 뜻을 모으던 이들이 장수군에서 순환농업 시범단지를 조성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이곳에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다. 살던 곳도 비단 장수뿐만 아니라 서울, 부산, 수원 등 살아온 터전도 다르고 각기직업도 다른 이들이었다. 당연히 경운기 운전이며, 농기구를다루는 법도 서툰 초보 농부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귀농을 통해 많은 것을얻을 수 있었다.무엇보다 큰 장점은 아이들의 교육문제였다. 요즘처럼 경쟁과 서열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제대로된 학원 하나 없을 것 같은마을이 교육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그 룰을 애써따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생활하고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이 큰 공부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다.문원산 위원장은 자신의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고 나면, 자신은 아랫마을로 내려가고 집은 아기가 있는 젊은 부부에게물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 환경이 아이들이 자라기에 너무도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아기들은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걸음이 서툴러 설령 넘어져도 쉽게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없는 길. 오직 흙과 풀이 있는 이곳에서 주변 환경은 경계와 주의의 대상이 아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란다. 자연스럽게 상생(相生)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또한 가구마다 여러 가지 작물을 재배하다보니, 남는 것들은서로 나누어 먹게 되었다. 따로 시장에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농사에 필요한 것은 공동으로 구입하고, 고가의 농기계들도 공동으로 사용하니 농사가 한결 쉬워진 건 당연하다. 물론시행착오도 많아서 처음에는 생산량이 부족하기 일쑤였지만,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변화들이 마을에는 큰 기쁨이 되었다. 이제는 생산한 작물들을 도시에 팔아 소득을 올리고 있다.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는 직거래 방식을 주로 택한다. ‘모듬야채꾸러미’라 불리는 상품을 회원제를 통해 도시에 공급하는 것이다. 주로 근거리인 전주나 인근 지역에 마을 한 가구당50~60가구 가량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근거리 유통은 마을주민들의 고집이기도 하다. 장거리 유통과 신선도 유지를 위해 자연을 역행하는 농사 방법을 이들은 지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흙에서 얻어 온전히 흙으로 돌려보내기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하늘소마을에도 없는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계면활성제’가 들어간 샴푸나 치약, 세제 같은 것들. 그리고‘수세식 화장실’이다. 그 이유는 하늘소마을이 만들어질 때 마을사람들끼리 맺은‘하늘소마을 주민들의 약속’때문이다. 하늘소마을에서 생산되는 작물들은 오직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된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순응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그러니 이들은 흙에 해가 되는 일을 결코 할 수가 없다. 흙에주어지는 물을 더럽힐 수 없으니 일상 생활에서‘계면활성제’는 당연히 제외의 대상이다.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흙에 힘을더해주기 위해 이들은 스스로 재래식 화장실을 택했다. 직접퇴비를 만들어 사용하니, 인분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가지 않고 흙으로 온전히 돌아간다. 사람을 위해서도 자연을 위해서도 이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물론 이와 같은 생활이 불편한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조금 편하기 위해 세제를 쓰려거나 수세식 화장실을 지으려 하지 않는다. 약속 때문이다. 단지 마을 사람들 간의 약속이 아닌, 흙과 맺은 약속. 흙에서 얻은 것들을 온전히 흙으로 돌려 보냄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대지와 자연을 어지럽히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이다.그 밖에도 마을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하수구도 자연정화가 되도록 길게 도랑을 만드는가 하면, 집안에서 물이 정화되도록 연못을 만들기도 한다.흙에 대한 예의. 굳이‘순환농법’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떠올리고, 외우지 않더라도 삶 속에서 자연과 오래도록 함께 살아가고픈 이들의 작은 마을. 하늘의 맑음과 소의 우직함을 간직하고 산을 바라보며, 산과 닮아가는 사람들의 마을, 장수하늘소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