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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 |
[기획특집] 지역문화 다시보기 - 김제 1
관리자(2011-11-04 16:21:09)
텅 빈 벌판에 새 씨앗을 뿌려라 황재근 기자 수확이 끝난 들판은 쓸쓸하다. 사료로 쓰일 짚단뭉치만 덩그러니 광야를 지키고 있다. “올해 같은 농사를 마당농사라고 하는겨.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은 말짱 꽝이란 거지.”농부의 한숨과도 같은 바람이 피할 곳도 없는 들에 불어온다.올 여름, 유난히 많았던 비로 올해 김제의 벼 수확량은 예년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열에 일곱이 농업에 종사하는 지역이니 만큼 그 해의 작황은 곧 지역 전체의활력과 연결된다. 풍년이 들어도 손해가 나는 농사가 된지오래지만, 실없는 낱알을 보는 농부의 마음이 평온할리 만무하다.이 땅에서 농업이 시작된 이래로 김제의 자연환경은 축복이었다. 너른 들판뿐 아니라 기후도 벼농사에 적합했다. 그러나 한반도 제일의 곡창이란 명성은 더 이상 김제사람들의자부심이 되지 못한다. 산업사회로 진행하면서 김제의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전주, 군산, 익산과 같은 큰 도시와접한 탓에 인근지역은 도시생활권에 편입돼버렸다. 막힌데없이 너른 들이 인구유출 또한 도운 셈이다.문화예술인력 역시 줄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서화의 전통이 내려오는 김제는 미협의 활동력이 왕성한 지역이었다. 지난 1989년 준공된 구 김제문화예술회관은 벽천 나상목 선생과 강암 송성용 선생을 비롯한 지역 화단의 원로들이 주축이되어 건립한 시설이다. 김제시에 기부체납 형태로 운영권을넘긴 후 부족분을 시에서 대긴 했지만 절반이 넘는 비용을예술인들이 직접 모금해 충당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정은다르다.김영곤 김제예총 회장은“회원 중 상당수는 전주 등 타지에서 활동하고 명단에만 올라있는 실정”이라며“가장 어린회원이 30대 중반이고, 40대가 막내 뻘이라 신진작가들을회원으로 영입하지 못한다면 앞으로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성공한 축제, 장기적 전망도 준비해야 여러모로 열악한 김제 문화계지만 축제에 있어서만큼은 개가를 올리고 있다. 13회를 맞은 김제지평선축제는 7년 연속최우수문화관광축제 평가를 받았다. 김제시는 올해 축제를 찾은 관광객은 약 15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시는 지평선축제가 한해에 약 565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미치고 있다고 발표했다.지평선축제의 강점은 풍부한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체험거리다. 7개 분야 71개의 프로그램은 수동적 관광객을능동적 체험객으로 만든다. 전통 농기구로 벼베기, 메뚜기 잡기, 우마차 여행, 새끼꼬기, 새총·활쏘기, 대나무 낚시 등 쉴틈 없이 즐길 거리가 배치돼있다. 특히 체험을 즐길 어린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이 지평선축제를 가족나들이로 선호한다.지난 10월 3일에는 세계축제협회(IFEA) 총회를 통해 2011년 세계축제도시 인증을 받아 그 명성을 더욱 높였다. 전 세계축제를 권역과 인구규모로 나눠 시민참여와 정부지원, 파급효과 등 6개 분야 66개 항목으로 평가한 결과, 지평선축제는 아시아권 인구 10만명 이하 도시의 대표축제라는 영예를 안았다.이러한 성과 뒤에는 김제시의 투자가 있었다. 시는 부서명을 문화홍보축제실로 바꿀 만큼 행정력을 기울여 축제를 진행해왔다. 현재 지평선축제의 주관은 김제지평선축제제전위원회가 맡고 있으나 실질적인 업무는 김제시에서 추진하고 있다.그러나 이런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도 없지 않다. 체험 위주로 진행되는 축제인 만큼 매년 반복되는 체험이 늘고 있고, 관주도의 축제로는 장기적 전망을 세울 수 없다는 의견이다. 김제의 한 문화예술인은“시가 지평선축제에 아낌없는 투자를하고 있지만 비슷한 축제를 반복해서 하다보면 컨텐츠가 고갈될 수밖에 없다”며“민간 참여를 늘리고 전문축제인력을 고용해 더 멀리 내다봐야 전통 있는 축제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벼고을을 지켜온 예술인들 농업이 기반인 지역인 만큼 농악의 뿌리도 깊다. 호남우도 농악으로 분류되는 김제농악은 쇠와 장구를 주악기로 사용하고, 큰북을 사용하지 않으며 평야지역의 두레굿이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타 농악에 비해 설장구의 비중이 높아 상쇠를 대신하거나, 상쇠와 호흡을 맞춰 굿을 이끌기도 한다.김제농악은 올해 큰 기둥을 잃었다. 김제 농악의 원로이자무형문화재 박판열 선생이 향년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것이다. 지난 9월 박판열 선생에게 사사받은 김해순 김제농악보존회장이 선생의 뒤를 이어 설장고 무형문화재로 등재되면서 슬픔을 추스르고 재정비의 기간을 갖고 있다.김제의 광활한 들판은 문학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했다. 특히 일제시대 만경평야에서 일어났던 수탈의 역사는 대하소설『아리랑』에 꼼꼼하게 기록돼있다. 김제시는 지난 2003년 생존작가의 문학관으로는 최초로 아리랑문학관을 건립해 이를알리고 있다.김제의 문학계에서는『아리랑』보다 먼저 일제시대 김제를기록한『갯들』과 작가 임영춘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하다는의견이 나오고 있다. 1981년 발표된 장편소설『갯들』은 김제광활면에서 벌어졌던 간척사업을 위해 이주해 온 사람들이일제에 의해 혹사당하는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김유석 시인은“『갯들』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철저한 자료수집을 통해 완성된 작품”이라며“조정래 선생이『아리랑』을 집필하기 위해 임영춘 선생을 찾아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임영춘 선생은 안타깝게도 15년전쯤 뇌졸중으로 쓰러져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있는 상황”이라며“그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제에서 100년이 넘은 옹기가마를 지키며 옹기를 제작해온 도예가 안시성 씨도 김제 문화예술계에서 빠트릴 수 없는사람이다. 그가 작업하고 있는 부거리 옹기가마는 조선말기천주교 박해를 피해 부창마을에 정착한 신자들이 만든 것이다. 지난 2008년 그는 파손돼가는 가마를 지키기 위해 문화재청에 등록을 요청했고 문화재청에서 이를 받아들여 등록문화재 제403호로 지정했다.전통방식을 고집하면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시성 씨는 옛스러우면서도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옹기작품으로 높은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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