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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 |
[서평] 「문화로 먹고 살기」 - 우석훈 지음, 김태권 그림
관리자(2011-10-10 14:21:47)
청춘들이 좌절하지 않고 일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이미경 전북대학교 강사 방송, 책, 영화, 음악, 스포츠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성공해서 인기를 얻으면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참 배고픈 직업이라는 점이다. 혹자는 그들만큼 호사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하지만, 그건 극히일부분만을 보고 하는 소리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것처럼 화려함의 뒷면에는 춥고 어두운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지난 2010년 11월, 1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반지하 자취방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뒤이어 2011년1월에는 시나리오 작가 겸 연출자인 최고은씨가‘쌀과 김치를 얻을 수 없겠냐’는 쪽지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문화예술인들 대다수가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무명을 딛고 일어선 배우나 가수들의 인터뷰에도 종종 나오는 것처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건 일상다반사이고, 차비가 없어 먼 거리를 걸어 다녔다는이야기는‘그땐 그랬지’라는 추억담으로만 들어 넘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출판계에서는 신인 작가들의 저작권을 원천봉쇄한 매절계약이 횡행하고, 영화판에선 소위 막내라 불리는 신참내기 스태프들의 1년 연봉이 고작 200-300만원에불과하며,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연봉으로 운동을 그만두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이다. 나 역시 몇 년간 독립영화제에서일했던 경험이 있다. 일은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으며, 게다가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늘 주머니는 비어있었다. 일에 미쳐있는 동안 내 통장은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빈약한 내 경험에만 비추어 봐도 그들의 삶이 얼마나 퍽퍽했을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얼마나 좋니? 부럽다”라는말을 남발한다. 이런, 끝도 없이 찍혀있는 통장의 마이너스부호를 보고도 그 말이 나올까 싶다.달빛요정이나 최고은 씨의 죽음 앞에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은 열악한 그들의 작업환경에서 어쩌면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연이은 두 사람의 죽음은이 사회의 루저들을 대변했던 달빛요정의 노래가사처럼 절룩거리는 우리 문화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문화로 먹고살기』(반비, 2001)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듯하다. 우석훈은 한국 경제가 더 튼튼해지고 장기적인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분야, 하지만 이대로 두면 시들어버리고 말분야 중 하나인 문화를 분석하고 있다. 성장의 시대를 넘어삶의 질을 고려하는 현 시대에 재생산을 위한 기반으로 문화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발전의 기반이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돈과는 상관없는 분야이긴 하지만 삶의 질 차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분야이다. 더군다나 최근 젊은 세대들이 꿈꾸는 영역이기도 하다.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부모세대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받고자란 이들은 문화생산자로서의 삶을 지향한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담론이 지배적인 우리 사회에서 문화판의 현실은 젊은이들이 꿈꾸는 화려하고 즐거운 곳만은 아니라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이미『88만원 세대』의 초고를 완성했을 당시부터 문화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그는 특유의 응용경제학의 입장에서 방송, 책, 영화, 음악, 스포츠 등 각 문화산업 현상에 접근하고 있다. 2003년과 2004년을 정점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문화산업은 신자유주의의 영향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토건경제와 수출주도형 경제, 그리고 그에 따른 신빈곤현상에 의해 완전히 질식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는 문화를 경제적, 산업적 측면을 강조하여, 영화산업과 자동차산업을 수익률로단순 비교하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즉, 토건시대‘뽀다구’문화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어, 문화 역시 그외형상 규모를 키우는 데만 급급할 뿐 그 내용적 측면을고려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문화의 지속가능한 발전, 즉 지속적인 딴따라질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으로 우석훈은 다양한 방식의 보조금제도를 제안한다. 문화다양성, 지역드라마, 청년고용지원을 가능하게 하는 드라마 보조금 제도, 출판인들의 전문성과 경험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지원제도, 동네 서점을 부활시켜새로운 문화공동체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 배우와 스태프들의 생계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임금제도, 스포츠를 매개로 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 등 인권과 복지 차원을 고려한 보조금 등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말한다.우석훈이『문화로 먹고살기』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종합하면, 문화정의는 문화 영역에서 고른 소득분배로 먹고살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기반을 마련하고, 젊은이들이 진출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를 발굴해 내며, 각 분야들이 사회적 기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라할 수 있다.방송, 책, 영화, 음악, 스포츠 등 대표적인 문화산업 영역들의 현황을 분석하고, 문화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세끼 밥 제대로 챙겨먹으며 일할 수있는지 고민했다는 점에 어쨌든 호감이 가는 건 사실이다.그러나 그가 제안하는 대안이 꽤 매력적임에도 크게 와 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석훈이 제안하는 다양한 형태의 보조금제도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석훈의 지적처럼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뿐만아니라 자율성을 보장받아야할 문화영역이 이데올로기에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그러한 다양한 보조금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문화, 스포츠계의 대대적인 구조개편이 필요하다. 그러나문화의 각 영역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구조개편은 단순 개편이 아니라 판 자체를 완전히 갈아엎어야 하는 수준일 것이다. 게다가 이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난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핫이슈로 떠오른‘영구아트’의 심형래 씨의 사례는 문화에대한 지원체계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한 편의 <디워>를 만드는 것보다 열편의 <디워>를 만들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즉 사회적 기반 자체를 확장시킬 수 있고,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지속적으로 활동 가능하도록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여전히 문화판은 살아남기 힘든 곳이다. 모 증권회사의카피처럼 훌륭한 부모님을 만나거나, 현명한 배우자를 만나지 않는 한 버티기 힘들다. 어쩌면『문화로 먹고살기』는역설적으로 점점 더 문화로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현실을강조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석훈이 말하는 문화로도 먹고살 수 있는 세상, 열정을 바쳐 시나리오를 쓰고, 대본을 쓰고, 촬영하면서도 비정규직 신분으로 불안에 떨지 않는 세상. 20대 청춘들이 좌절하지 않고 일 할 수 있는 최소한이 보장되는 그런 세상. 나 역시도 그 세상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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