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 |
옹기장이 이현배의 생활의 발견
관리자(2011-10-10 14:15:41)
지난여름
지난여름, 더위와 상관없이 가마에 그릇을 넣고 불을 지펴야했다. 그런데 더위가 아니라 비가 문제다. 여러 날 넋을 놓고 비를 바라보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가마까지, 그 사이에툭하고 놓인 능소화가 유난스러웠다.함석지붕 위로 복숭아나무 잎이 한쪽을 덮었고 능소화가올라타기 시작하더니 한 무더기 꽃을 피워 물었던 것이다.그 능소화는 뿌리를 아래 건조장과 이 자리 사이에 두고 있다. 그곳은 여기 옹기점에서 매우 묘한 곳이다. 아 사람에게는 실험적인 곳이기도 하다. 돌담과 돌계단을 쌓으면서‘불편’하게 설정한 곳이기에 눈에 좋은 곳, 그러면서 아주 작은가게의 입구가 되기도 하고 이런 저런 물이 모이는 습한 곳.집사람의 취향으로 꽃이 하나 둘 심겨 있는 곳. 능소화도 그렇게 자리 했더랬다.꽃 소화가 그날 새삼 유난했던 것은 아니다. 아침에 그 돌계단으로 일을 나가자면 제 몸을 떠나 떨어져 있으면서도 지지 않는, 꽃 소화에 대한 묘한 충동이 일었다.어쩌면 그 자리. 뜨거운 여름날엔 가장 돋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한 두 걸음 더해 햇볕에 나가면 무덥고, 가게 문턱을 넘어서면 습에 팡이가 나 역하니 꼭 그 자리가 으뜸인 게다. 꽃 소화가 그것을 알았던 가 보다. 기꺼이 제 몸을 떠나자리하니 말이다.생각이 그 지경을 넘다 문득 책 <능소화>(조두진/ 2006/예담)를 기억하게 되었다. 무슨 책을 사다가 배송비에 조금더해 끼워 산 책. 혼란스러운 책방에서 어쩌고저쩌고 하면거의 찾아지는, 그렇게 찾았다. 의자에 앉아 보다가, 누워서보다가, 잠깐 자고 일어나 보다가 비가 주춤해서는 송가정이로 산보가며 마저 보았더랬다.세상에 잊지 못할 슬픔은 없다는 이야기와 잊혀지지 않는슬픔에 관한 이야기였다. 후지와라 신야가 이야기한‘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처럼 슬픔이 그렇게 자리하고 있었다.산보 다니는 송가정이 까지는 무궁화가 심겨있고 그 뻣뻣한 나무가 무더운 여름날, 꽃 귀한 시절에 꽃을 피워 지친 삶을 위로한다. 제 몸에서 꽃을 피웠다가 자기 마무리를 확실하게 하고 툭 지는 무궁화를 보면서 이 삶이 그래야 좋겠다싶었다. 늘. 그런데 그 길을 슬픔의 뿌리가 피워 올린 지지않는 꽃, <능소화>와 같이 걷자니 저기 크게 흔들리는 나무처럼 괜히 숨이 가쁘고 머리가 띵하다.불 지피는 일이 불이 난 일이 되었을 때 타지 않은 흙벽을그대로 두면서 그냥 그대로 두자 싶어 굴집을 높이 두었더랬다. 비는 피해야겠지만 풍경을 가리지 않게, 상황을 가리지않게. 그러자니 바람을 타는 비까지 막아내지 못하는 불편이있다. 세상일은 하나로 해결할 수 없나 보다. 하나를 취하면 다른 하나를 감수해야하는. 불편이라면 익숙한 줄 알았는데 상황이 꼬이면서 강박이 되니 그 어떤 가치마저 혼란스러웠다.지난 봄 앵글로 후벼 파듯(?) 작업하는 이가 내게서 포착했다는 ‘슬픔’과 대면하면서, 아니 처음 솥내로 자리했을 때찾아 준 목사선배께서‘이제 슬픔 같은 거 떨치고 살아보자’고 했을 때부터 어찌 슬픔이 이 삶을 압도할 수 있겠느냐며그대로 살아 내리라 해왔다. 여름의 끝, 결과물들은 지난여름의 과정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꽤나 헛심을 썼나보다. 하지만 그래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상실로 인한 그 어떤 지경을 넘어야했다. 다만 딸애들에게서 나눠 물들인 새끼손톱의 봉숭아물로 첫눈을 기대한다. 겨울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