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 |
꿈꾸는 노년 - 최일남의「고도는 못 오신다네」
관리자(2011-10-10 14:15:30)
노인들의 대화 엿듣기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
부조리한 노년
실존철학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독일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근대의 극복을 위해‘신은 죽었다’고선언했다. 신이 사망한 결과 가치 기준이 되는 신의 부재로 인해인간은 물질적인 풍요와 대조적으로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방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과학의 발달과 논리적 합리주의 사상의 진전은 1·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전쟁 이후에 남은 것은 가공할만한 파괴와무질서한 혼란뿐이었다. 1·2차 세계대전의 비참한 참상은 현실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으로 이어졌고 정치, 경제, 역사, 문화,예술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허무주의를 낳았다. 불합리, 무의미, 무질서로 특징지어지는 허무주의는 니체가‘신의 죽음’으로표현한 형이상학적 세계관 또는 이를 원인으로 한 이분법적 세계관의 붕괴를 의미한다.현대극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사무엘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의「고도를 기다리며」는 1·2차세계대전의 극한 상황에서 생겨난 허무주의를 연극으로 표현해낸 부조리극이다. 부조리극의 주제는 불합리 속에서 존재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부조리극은 인간의 고독과소통의 부재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인간은 존재의 부조리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위치나 역사와 연관 지을 수 없는, 즉 환경에서 단절되어 버린 인간은 자기 존재의 근원적 상황과 대결하고 또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절박한행위를 하거나 아니면 행위가 부재 한다는 것이다.소설가 최일남은 단편소설「고도는 못 오신다네」를 통해 부조리한 상황에 내던져진 노인의 존재를 숙고하게 만든다. 그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코딱지만한 도심의 자투리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 뚱뚱한 노인과 빼빼 마른 노인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우연히 엿듣게 된‘나’는 이들 노인에게서 심심하고 덧없는 노년의 존재적 의미와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하고 무미건조해지는 부조리한 상황에 가슴 아파한다.최일남 소설의 노인들은 가난하지 않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특별히 아픈 노인이 없다. 적당한 수의 자손을 두었고 일가친척도 넉넉하다. 마음을 나누고 말벗이 될 친구도 부족하지않다. 그리고 대개는 육체노동이 거의 없는 도시생활에 익숙하다.그런데 이들은 사회적 또는 현재적 환경으로부터 단절되어있다. 현실에서 나앉게 되는 바람에 건강한 생명체들이, 희망대신 무의미를 언급해야하는 허무에 시달린다. 이들은 육체적,경제적,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상실로 인한 심리적 갈등은 물론이려니와 정신적인 방황으로부터 헤어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대개의 노인들은 작중의‘뚱’노인이나‘빼’노인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대한 애착 또는 집착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종말인과 초인
베케트의 부조리극「고도를 기다리며」는 나무 한 그루가 황량히 서 있는 시골길에서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고도’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이‘고도’를 기다리는 사이에 두 사람이 더 나타난다. 난폭하고 다혈질인‘포조’와그의 늙은 하인‘럭키’다. 이들은 알 수 없는 행위, 즉 신발을벗는다든가 목을 맨다든가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틀 동안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들에게 확실한 것은 단한 가지,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작품의말미에 이르러‘고도씨가 지금은 오지 못하니 내일 오겠다’라고 하더라는 한 소년의 말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그만갈까?”“가자.”라고 말하며 연극이 끝난다.작품의 말미까지 끝내 등장하지 않는‘고도(Godot)’는‘신’의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하고‘자유’,‘ 희망’,‘ 빵’을 의미하는것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심지어는‘고도’가‘신’이라는 의미의‘God’를 뒤집어 놓은‘개’, 즉‘dog’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또 혹자는‘고도(Godot)’가‘신’이라는 의미의 영어‘God’와 프랑스어‘Dieu’를 하나로 압축한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건‘고도’는 작가도 알 수 없었던 그 무엇,즉 무언가를 갈망하는 어느 누군가의 갈망의 대상이라 할 수있다.‘고도’를 알 수 없었던 것은‘고도’가 단순하거나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고도’를 통해 흔히 일목요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모든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황되고불합리한지를 보여준 것이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막연한 갈망에 사로잡혀 들판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 밑을 벗어나지 못하고 헛되이 시간만 보낸 것이다.실존주의자 니체는 허무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예수가 가르친 진정한 의미 찾기를 제시한다. 니체에 따르면,허무의 반복은 무의미의 연속이다. 이러한 무의미, 즉 허무의중심에서 스스로를 영원한 약자로 만들며 허무적 존재로 몰락의 길을 걷는 사람을 니체는‘종말인’이라고 불렀다. 종말인은항상 다른 사람의 동정과 관용을 요구하는 인간상이다. 그래서종말인은 지속적인 자기극복이 아닌 자기 보존을 욕망하는 자이면서 노동 또한 자기보존의 한도 내에서만 즐거운 일로 여길뿐이며, 이러한 자기보존 속에서 종말인은 지속적인 쾌락을 추구하면서 무조건적인 평등을 요구한다.종말인의 반대 지점에‘초인(위버멘쉬)’이 놓인다. 초인은 자신의 삶에 최대의 의미를 부여하여 스스로 최고 긍정의 길을걸을 수 있는 존재다. 초인은 스스로 자의식을 변화시켜 자기자신을 지속적으로 극복해나감으로써 초월적 인간으로 변화하는 존재다. 그래서 초인은 형이상학적 최고 가치로서의 절대도덕관에서 자유로운 인물이기도 하면서 자기 극복에만 관심을 가지는 매우 이기적인 존재이기도 하다.소설「고도를 기다리며」에서‘뚱’노인과‘빼’노인이 줄기차게 기다리는‘고도’는 두 노인의 험담 대상이 된‘송가’다.그것은 기껏 술 한 잔에 대한 기대와 다름없는 것이었다. 두 노인이‘땅딸보’라는 비하적 별칭으로 부르는‘송가’는 대장간에서 풀무질과 쇠망치질로 시작하여 깡통으로 산동네 지붕을 이는 장사를 하다가 합승택시회사에 드럼통 납품으로 돈을 번 사업가다. 현재는 몇 군데 사업장을 아들 형제에게 맡기고 자기는 회장으로 물러앉아 소일 삼아 뒷전에서 훈수나 둔다는‘송가’는 여전히 사업차 바쁜 몸으로서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할시간이 부족한 왕성하게 일하는 현역 노인이었다.사회의 뒷전으로 밀려난 노인과 아직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노인의 대조는 니체의 종말인과 초인을 떠올리게한다. 특히 실존주의, 부조리, 허무주의를 표현한 연극「고도를기다리며」를 연상시키는「고도는 못 오신다네」라는 소설 제목은 허무주의에 시달리는 노인으로 하여금 실존적 결단을 촉구하는 듯하다. 허무를 반복하면서 결코 멈추지 않을 무의미 아래 머물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삶에 최대의 의미를 부여하여 지속적인 자기극복을 이루고 스스로 최고 긍정의 길을 걸을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