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 |
이철수 목판화 30년 문화저널 기획 초대전<새는 온몸으로 난다>
관리자(2011-10-10 14:14:37)
나무에 마음을 새기다, 삶을 새기다
이다혜 기자
나무에 마음을 새기는 작가가 있다. 논에서 밭에서 농사짓다가 마음에 담은 것들을 그림으로, 글로 새긴다.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는 글과 그림. 판화로 세상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작가 이철수. 그의 30년 작품인생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때로는 저항의 언어로, 때로는 체온이 담긴 따뜻한 언어로
지난 9월 6일부터 18일까지, 전주역사박물관과 전주 한옥마을의 공간봄, 교통아트에서 이철수 목판화 30년기획 초대전 <새는 온몸으로 난다>가 열렸다. 사단법인마당이 문화저널 초대기획전으로 연 그의 전주 전시는 11년만이다. 1981년 관훈 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1년까지 30년간 작업을 이어온 판화가 이철수.80년대 내내 그는 판화를 통해 폭압적이고 암울한 현실과 사회로 향한 저항적 메시지를 전하는 작업에 열중하며 보냈다. 그의 작품세계는 80년 대 후반 충북 제천으로 이사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됐다.30년을 건너온 판화작업은 때로는 사회에 대한 저항의 언어, 때로는 푸근한 삶의 체온이 전해지는 언어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넸다.그의 판화들은 전주시민들 뿐만 아니라, 추석을 맞아고향에 온 사람들, 그리고 관광객들에게까지 아름다운선물이 되었다.
특별한 선물, 작가와의 만남과 대화
이번 초대전에는 특별한 선물도 준비되었다. 9월 16일 한옥 마을 공간 봄에서는 작가와의 대화가 열렸다. 그동안 그림으로만 판화가 이철수를 만나온 그의 팬들은 부산에서, 광주에서, 대전에서까지도 달려왔다. 여름더위가 물러가고 가을 바람이 찾아온 한옥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더 정겨웠던그 날 저녁, 작가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정리했다.
·관객 - 판화가로 살아 온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이 전시에 대한 소감이 어떠신지요.
·작가 - 시간 시간마다 마음속으로 헤아리면서 지내오지는 않았는데 30년이 자연스럽게 흘렀습니다. 이번 기념전 <새는 온몸으로 난다>는 고마운 분들이 준비해주시고 열어주시겠다 해서 열게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우리가 어렵게 이뤄온 민주화가 뒷걸음 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청년 실업이나 저임금 문제 같이 갈수록 노동자들이 힘든 현실을 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이 사회로 나와 직장을 제대로 구하기 너무나 힘든 이상황. 나름대로는 우리 부모 세대들이 열심히 애쓰며 살아왔는데 정작 우리 아이들 세대에 와서는 세상이 좋아진 것이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이런 여러 가지 마음들로 30년 기념전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기념전을 연 가장 큰 이유입니다.
·관객 - 그동안 작업하신 작품들을 시대 별로 보면 화법에 변화가 있습니다. 선생님 마음 안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요?
·작가 - 어떤 분들은 힘 있고 거친 초기작이 좋다는 말씀을 하시고 또 어떤 분들은 최근작이 편안하고 이해하기 쉬워좋다고 합니다. 때로는 화법이 달라진 것에 변절한 것이 아니냐 라는 질문도 하지요. 저는 변절하지도 않았고 변절하고싶지도 않습니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평범한 이들의 삶 속에서 이들의 고민들을 그림으로 그려내겠다고 한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화법이 달라졌을 수는 있지만 그림 안에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늘 같습니다.
·관객 - 우연히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깊은 공감을 받은 뒤 팬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작가 - 요즘 제 그림 앞에서 우는 분들도 봅니다. 그럴때면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내 그림과이야기가 소외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여린 존재들에 대한연민이나 공감을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런 연민과 공감이 그림을 보는 당신 안에 깃들어 있던 어떤 감정들을 일깨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슬픔을 품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에게, 겨우 이것 달았어? 최선이었어요. 몰랐어, 미안해...
·작가 -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작품 중 하나가‘가난한 머루 송이에게’입니다. 제가 머루송이에게“에게, 겨우 이것 달았어?”라고 하면 머루 송이가“최선이었어요”라고 하는 거지요. 그럼 제가“몰랐어, 미안해...”라고 말합니다. 저희 집 마당에 머루나무가 있는데 머루 열매를 가지고 효소나 잼을 만듭니다. 그러려면 송이가 알찬 것이 좋은데 어떨 때는 머루 송이가 앙상해서 딸 것이 별로 없어 아쉽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머루나무도 열매를 맺기 위해 나름대로 많이 애를 쓸 텐데 열매가 알차지 않다고 제가 탓하면 얼마나 서운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머루나무와 몇십 년을 지내다보면 절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되는데 이런 것들이 그릴거리를 줍니다. 제가 키우는 벼, 배추와도 대화를 합니다. 농사지으면서 여러 가지를 얻습니다.제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을 얻어낼 수있는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자연 속에서 얻은 것이기도하고 또 어렵게 살아온 제 삶 속에서 얻은 것이기도 합니다.제가 사람들과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거나 그 능력이 점점커지고 있다면 다 이런 것들에서 얻은 밑천입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잘 알아채고 이해하지요.
·관객 - 선생님의 작품은 치유의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작가 -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다 파산하셔서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웠었지만 그 시기 없이는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는 평생 저를 대학에못 보낸 것을 한스러워 하시는데 저는 어머니가 미안함을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때의 그 경험들이 제가 판화가로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그 시절에 상처도 받고 힘들기도 했지만그런 경험들이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고 비하하면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저는 그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를 지닌 존재인가를 판화를 통해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머루송이에게’같은그림들로요.
·관객 - 판화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 이야기들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요?
·작가 - 어느 순간부터인가 마음공부를 생각합니다. 스님들처럼 참선 수행하는 것은 쉽지 않고 어떤 순간에나 나를지켜보고 있고 나를 들여다보고 있는 존재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 존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떠올리면 그속에서 많은 것들을 얻게 되지요. 그것들이 제 그림의 에너지원입니다. 늘 그리고 싶은 것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관객 - 선생님의 판화는 생활의 모든 것이 소재인 것 같습니다. 요즘 구상 중인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작가 -‘물’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인사 청문회 같은 것을 보면 마음이 어지러워 저런얘깃거리들은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물을 생각해 보면 맑은 물에 흙탕물이 섞이기도 하고 흙탕물에 맑은 물이 섞이기도 하지요. 그렇게한 몸이 되어 오염되기도 하지만 흘러 흘러 정화되기도 합니다. 보기 싫다고 다 외면해버리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물과 물이 에누리 없이 한 몸이 되는 것처럼 이 사회의어둡고 불편한 문제들을 내 문제라고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맑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거지요.그래서‘물’에 대한 이야기를 요즘 구상하고 있습니다.
작가와의 대화에 찾아온 관객들은 작가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이야기,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목판화 작업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판화작업에 쓰는 칼은 몇 가지인지,무슨 농사를 어떻게 짓고 있는 지. 그림에 대한 것에서부터작가의 일상까지. 공식적인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자리에 머무르며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책에사인을 받았다.신은수(43, 금암동)씨는“이철수 선생님의 판화를 보고 있자면 여백이 많은 그림과 단 몇 줄의 글을 보고 있을 뿐인데머릿속에는 한 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화려한 색을 쓰지않아도, 미사여구의 긴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울림을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힘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시회를 보기 위해 멀리 부산에서 온 김현희(부산, 31) 씨는“이철수 선생님은 보통은 그냥 스쳐지나갈 작은 것들에서 소중한 의미를 끄집어내주셔서 좋아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일에 파묻혀 자기 자신도 잊고 살 때가 많은데 선생님의작품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직접 뵈니글이나 작품에서 만나며 떠올린 이미지와 다르지 않았다”고소감을 밝혔다.작가는 관객들에게“생각했던 것과 생김새가 많이 다르지요?”라며 농담을 건넸지만 그와 만난 관객들은 선한 농부,선한 작가와 만났다며 마음의 따뜻한 위로와 힘을 받았다고말했다.판화가 이철수, 그는 누구보다도 대중과 가까이 있는 예술가다. 굳이 전시장이 아니라도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그리고판화작품을 묶어 낸 책에서도 우리는 그의 그림과 만날 수있다. 동 떨어진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삶 속 이야기를 하며공감을 자아내는 판화. 자연과 사람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전하는 판화가. 마음을 새긴 그의 작품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의 판화가 있어 우리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