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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 |
[기획특집] 지역문화 다시보기 - 고창 1
관리자(2011-10-10 14:12:33)
지역문화 다시보기  - 고창 1 전통의 토양, 다시 인재의 꽃을 피워라 황재근 기자 전라북도 서남쪽 끝에 위치한 고창은 산·들·바다를 모두 갖춘 아름다운 고장이다. 비옥한 평야지대와 풍부한 어족자원으로 예로부터 살기 좋은 땅으로 이름이 높았다. 사패지지(賜牌之地), 즉 임금이 공신에게 내리는 땅이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고창이 풍요로운 지역이었음을 보여준다.1차 산업이 생산의 중심이던 시기, 자연환경은 곧 그 지역의 생산량이다. 산과 들, 바다에서 먹을거리를 넉넉하게 생산할 수 있다면 보다 고차원적인 활동에 투자할 자원과 시간이 생긴다. 땅의 풍요는 곧 문화예술의 풍요로 이어졌다.고창에는 하나 있기도 어려운 세계문화유산이 둘이나 있다. 여기에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고창부안갯벌을 포함하면국제적으로 희귀하고 중요하다고 공인된 문화관광자산이 셋이나 되는 셈이다.하나는 고창의 상징이 된 고인돌, 또 하나는 바로 2003년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판소리다. 판소리를고창만의 것이라고 한다면 누구도 긍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듣고 부르는 판소리가 어디에서 나왔냐고 묻는다면 누구도 동리 신재효를 빼놓을 수 없다.오늘날의 고창군은 고창현과 흥덕현, 무장현 세 고을이 합쳐진 행정구역이다. 각각의 고을에는 특징적인 문화예술이발달했다고 전해진다. 평야가 발달해 농지가 많았던 흥덕현은 양반들이 많이 거주하는 고장이었다. 이곳에서는 줄풍류,삼현육각, 시조 등 당대의 상류층이 즐기던 예술 장르가 성했다. 이에 비해 바다와 인접한 무장현은 하층민이 많아, 남사당패와 농악이 인기가 높았다. 반면 고창현은 반·상의 비율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양자가 함께 즐겼던 판소리가 발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창현의 중심인 고창읍성(모양성) 바로 문밖에 신재효의고택 동리정사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는 사랑채만 복원돼있지만 본래 4천평 부지에 일가친척과 수련생과 광대 등 50가구가 한 울타리에서 살았다고 한다. 동리정사는 문화예술의 요람 역할을 한 사랑방 문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당대의 소리꾼이나 사당패, 풍물패 등 예능인들은 부잣집의 사랑방에 기거하며 숙식을 제공받고 답례로 재주를 보이곤 했다. 길게는 1년이 넘게 머물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공연을 펼쳤다고 한다.고창에서 사랑방 문화가 발달한 데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설명이 뒤따른다. 고창에는 만석꾼 큰 부자는 없지만 천석을 짓는 중부자들이 많았다. 비슷한 수준의 부자들이 많다보니 재주 있는 예능인들을 모셔오는 데에 서로 경쟁이 붙게됐다는 것이다. 다양하고 수준 높은 예능공연을 제공하는 부잣집은 자연히 민심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후원자로 나서는이들이 많다보니 타지의 재주꾼들도 고창으로 몰려들게 되고서로간의 교류를 통해 더 수준 높은 예술이 탄생할 밑거름이됐다.동리정사는 그 중에서도 탁월한 안목을 지닌 연구자이며이론가이자 후원자가 주인으로 있는 근대 판소리의 태동지인것이다. 동리정사 재현, 판소리 본향의 자존심 때문에 최근 고창군이 추진하고 있는 동리정사 재현사업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창읍성 주변 문화체험거리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현재 기본구상안 용역을 마치고 최종보고를 앞둔 상황이다. 그러나 드넓은 과거동리정사 부지의 상당부분은 이미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어재현까지는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고창문화연구회 백원철 회장은“동리정사와 관련해 정확한 문헌이나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 구술자료에 의해 사업을추진하기 때문에 복원이 아니라 재현이라 부르는 것”이라며“중요한 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연구를 통해 가능하면 원래위치를 찾아 되살리는 것이다”고 설명했다.고창군 관계자는“현재 동리정사 부지 안에는 판소리박물관, 군립미술관이 들어서 있어 원래의 모습을 완전히 되살리는 것은 어렵다”며“핵심 건물인 행랑채와 석가산, 연못과 연당 중 가능한 것만 먼저 되살리고, 오거리당산과의 연계하는방안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고창군은 기본구상안용역을 마치는 대로 실시설계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내년3~4월까지로 예정된 실시설계 용역이 완료되면 내년 중에는 재현건물 착공에 들어간다. 향토사 교육이 지역 인재를 만든다 고창은 활발한 향토사연구로도 유명하다. 여기에는 33년 간 고창문화원장으로 일하며 고창의 역사와 문화 연구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이기화 선생의 공이 컸다. 최근에는 지난 2009년 설립한 고창문화연구회의 활동이 도드라진다.고창문화연구회는 고창의 마을을 조사해 유래와 풍습, 유적과 인물들을 담은「고창의 마을」1, 2집을 발간했고, 지난2010년에는‘순교자 최여겸과 개갑장터’를 주제로 한 학술발표회를, 올해 5월에는 사무실 개소를 맞아‘향토사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초청강연과 세미나를 진행했다.고창문화연구회의 활동은 그 양과 질 모두에서 향토사학계 전체에서도 눈에 띈다. 주로 비전공자들에 의한 향토사연구는 학술적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연구의 열정은주류사학계에 뒤지지 않지만, 사료를 중요시하는 사학의 연구방법론에 비해 빈약한 근거로 추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창문화연구회는 체계가 잡힌 연구방법론으로 학계에서도 인정할만한 결과들을 내놓고 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인 오거리 당산제를 주제로 한 논문은 비전공자가 썼음에도 1급 학술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다른 지역 같으면 대학의 학자들에게 맡길 연구용역을 고창문화연구회가 맡을 정도다.백원철(공주대 명예교수) 회장은“현재 10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 중인데 이중 4명이 박사학위 소지자고, 1명은 박사과정에 있다. 사학 전공은 아니지만 학계에서 연구방법론과논문 쓰는 법을 익힌 회원들이 많기 때문에 체계적인 연구풍토가 잡힐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고창문화연구회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는 지역 중고등학교 향토사 수업이다. 단순히 1회성 강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기당 일정시간을 들어야하는 정규 수업이다. 향토사 시간에 배운 내용은 시험에도 출제되고, 학기를 마치면 현장체험학습도 진행한다.백 회장은“중앙사 위주의 수업으로는 학생들이 태어나고자라온 터와, 조상들에 대해서 배울 수가 없다. 향토사 수업은 애향심뿐 아니라 아이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간이다”고 말했다. 맥을 이을 인재양성이 시급한 과제 고창은 문화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지역이다. 1990년 건립된 동리국악당을 비롯해, 고인돌박물관, 판소리박물관, 선운초서문화관과 미당시문학관, 군립미술관, 고창문화의 전당까지 다른 군단위의 지자체는 물론, 도시지역에도 뒤지지 않는 시설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시설만큼이나 중요한 컨텐츠에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공연시설의 경우 군립 국악단이나 예술단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외부 공연에만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고창이 판소리와 국악의 본향이라는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과도 관계가 깊다.이런 상황에서 탄생한 국악예술단‘고창’(高唱)은 중요한의미를갖는다.‘ 고창’은지난2009년동리국악당에서강사로 활동하던 9명의 젊은 국악인들이 모여 결성한 국악실내악 편성의 악단이다. 지난 3월에는 문화예술분야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을 받았다.창단 이래 3회의 정기공연을 갖고 정규 1집 앨범을 발매했으며 일본을 비롯해 타 지역 공연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판소리, 국악가요, 실내악곡 등 다양한 국악장르 곡을 창작했고, 올해는 신재효와 진채선 명창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창극도 준비 중이다. 상설공연과 국악체험학습, 청소년 국악예술단 창단도 계획하고 있다.젊은 국악인들의 활동은 박물관에서 박제화 됐던 고창 판소리와 국악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비옥한 전통의토양에 뿌리를 박고, 꽃을 피울 인적 자원을 키워내는 것이야 말로 오늘 고창문화예술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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