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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9 |
[서평]「나의 문화유산답사기6」- 유홍준 지음
관리자(2011-09-07 11:32:49)
따스한 햇볕에 늘어선 장독대를 떠올리게 하는 김난희 전주시문화관광해설사 ‘이걸 언제 다 읽지?’책을 받아들고 처음 나온 소리였다. 450쪽이 넘는 책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할일 하면서 이틀 만에 읽어버렸다. 저자의 글을 통해 저절로 호기심이 생기면서 궁금증이 풀리고 재미난 이야기가 나올 때는 큰소리로 웃기까지 했다. 게다가 어떤 문화재에 대해서는 상식적으로 알고있던 흔해빠진 사실이 사실은 고것이 아니라는 것까지.저자는 문화재청장으로 일할 때 경복궁 광화문 복원과정에서 그의 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귀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광화문 가림 막에 그런 기막힌 사연들이있는지 누가 알 것인가? 광화문 광장을 꼭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결국 노무현 대통령과 담판을 지을 때의 결연한 의지, 돌담길을 문화재로 지정할 때 지역주민들과겪었던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결국 문화재로 지정한 뚝심.아마도 평소 우리 문화에 대한 사랑과 문화재를 보는 남다른 시선들을 가진 그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그에게 문화재청장이라는 직함은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으리라!일본인‘야나기’. 이 사람은 조선 문화의 아름다움, 귀함과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사람이었다. 1922년 광화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려는 찰라 그는 <사라져가는 조선의 한 건축을 위하여> 라는 글을 통해 안타까움과 절통함, 그리고 죄스러움을 표현했고 그 기사가 파장이 되어광화문이 파괴되는 것을 막았다.한옥마을에서 간혹 통역하는 사람을 사이에 두고 외국인들 대상으로 문화해설을 할 때가 있는데 어느 날 일본여성분들을 할 때였다. 경기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전주사고에서 임진왜란 때 왜구가 4대 사고 중 세군데 것은 모두 불살랐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일본 관광객들이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면서“스미마셍, 스미마셍”을연발했다.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자기네들은 전혀몰랐단다. 그런 역사가 있었는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경복궁은 흥선대원군의 의지로 이백 여년이 훨씬 지나중건된 궁궐이다. 쓰러져 가는 국운을 어떻게든 살려내고자 행했던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거다. 그 시대 경복궁 중건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을 거다. 그 막대한 자금을 어디서 마련했을까?한옥마을 안에 단독 건물로는 국내 최대인 학인당이라는 곳이 있다. 인재 백낙중에게 배운다 해서 학인당. 이댁에서 경복궁을 중건할 때 재산의 절반을 뚝 떼어주었다. 말이 재산의 절반이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경복궁 중건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자꾸만 이 댁에서 했던 일이 참으로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게다가 돌아가신 삼성 이병철회장이 이 한옥을 사기위해 돈다발을들고 왔지만 끝까지 집을 팔지 않은 일은 자본가의 현찰앞에서도 선비의 곧은 기개가 흔들리지 않은 자부심으로기억된다.경복궁에서 근정전 앞의 박석이야기는 참 재미졌다. 거기서 오랫동안 일하신 분의 말씀으로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박석들 사이사이로 물이 흘러 자연스럽게 배수가 된다는 거. 게다가 박석은 눈이 부시지 않아 선글라스가 필요 없다는 말. 우리 조상들은 참으로 모든 것을 알고 건축을 하신 분들이다. 책에서는 문화재 복원을 위해 사라져간박석을 다시 찾아내는 과정도 생생하게 이야기했다.조계산 선암사도 부여 무량사도, 거창 영암사도 참으로 눈앞에서 보이듯이 그려냈다. 그의 눈으로 우리문화 유산 중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겠냐마는 저자는 위의 문화재들을 그만의 기억과 애정으로 써나갔다. 아울러 거창의아픈 역사를 이야기 할 때는 마음에서 눈물이 흘러 한동안다음 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거창 정자들을 이야기 할 때 코스모스도 등장을 했다.문화재 이야기하다 코스모스라니. 하지만 여기서 코스모스는 아주 사랑스럽게 들판의 길가를 완전하게 만들어주었다.코스모스, 이건 귀화식물이다. 삼국시대, 고려시대에아주 많은 곳에서 여러 이유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지금은 세계 200여 나라 중에 198개국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결코 단일 민족이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많은 외국인노동자들, 결혼이주여성들, 그의 자녀들, 등등 많은 사람들이 차별 없이 살아가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코스모스가 아무도 거부하지 않는 가을의 꽃으로 우리의 들판 길에 당당히서있는 것처럼.그는 마지막으로 고향 부여이야기를 꺼낸다. 원래 저자의 고향은 서울이지만 부여가 또 하나의 고향이 된 것이다. 저자는 부여의 한갓진 곳에 쉬고 쉬는 집을 짓는다. 풀뽑고 농사짓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고. 생각이나 책으로문화를 말하거나 배우는 게 아닌 몸으로 살아내는 것이다.충청도 이야기가 나올 때는 정말 배꼽을 여러 번 잡았다. 충청도사람들의 기질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참말 재밌었다. 외지인이 충청도에 와서 앞차가 하도 안 가니까클락션을 눌렀더니 앞차에서 덩치 좋은 양반이 내려더란다. 아이고, 한 대 맞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말하더라는것이다.“그르케 바쁘믄 어저께 오지 그랬슈”그는 은진미륵불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은진미륵불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그 지역사람들에게자부심과 자긍심을 주었고 나에게는‘아하!’하며 바보 도트는 소리를 내게 했다.한옥마을에 가면 작가 최명희 선생의 생가가 있다. 작가는 이런 독백 글을 남겼다.‘나는 경기전의 고풍스런 건물들과 오래된 나무를 통해서 세월을 초, 분 단위가 아니라 백년 천년 단위로 보게 되었다. 나는 저 먼 역사의 시간들이 늘 그리웠다.’아마도 작가 유년의 앞마당이 경기전 한옥마을이었기때문에 <혼불> 이라는 역사소설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이 책을 읽는 동안 어렸을 때 살던 집의 장독대가 떠올랐다. 자갈이 판판히 깔려있고 항아리들이 쭈욱 늘어선곳. 그 장독대에 큰언니랑 나랑 걸터앉아 따스한 햇볕을받으며 노래했던 기억이 참으로 아스라하다.하지만 지금은 장독대를 보려면 한옥생활을 체험하는곳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었다. 문화를 박물관이나 어떤특정한 곳에 가서 봐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주변에서 가까이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극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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