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 |
꿈꾸는 노년 - 박완서의「그래도 해피 엔드」
관리자(2011-09-07 11:05:35)
도시 노인의 전원생활 입문기
장미영 전주대학교 교수
아파트 못지않은 편의시설을 갖춘 그림 같은 집, 널찍한 마당과 텃밭, 그리고 달고 맛있고 싸한 공기, 그 좋은 것들을 실컷 누릴 수 있는데다가 교통까지 편하다면 그건 금상첨화가 아닌가. 교통이란 물론 서울 가는 길을 의미했다.…(중략)…이 아름다운 집에서 나는 신혼시절처럼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만들고 남편은 텃밭을 갈아 싱싱한 채소를 공급하면 생활비는 거의 안 들리라. 휴일이면 차를 몰고 찾아오는 아들네 딸네한테 무공해 채소도 싸주고, 손자들한테 살아 있는 자연공부도 시키리라. 목돈과 잘 자란 자식들을 둔 노후가 그림처럼 아름답게 떠올랐다. (박완서, 「그래도 해피 엔드」, 268~269면)
행복한 결말
현실은 해피 엔드(happy end)가 드물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귀하디귀한 해피 엔드를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악당 같은 사람도 어떤 계기로 인해 회개하고 착한 사람이 된다는 동화같이 행복한 결말을 어른들도 속절없이 그리워한다. 오만가지 인생 풍상을 다 겪어 내어, 더는 허무맹랑한 기대를 하지 않을 법한 노인한테까지도 해피 엔드는 끈질긴 기쁨인 모양이다.
노년의 질곡
박완서의 단편소설「그래도 해피 엔드」는 표면상, 모난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베테랑 인생의 여유로움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좀 더 진지하게 읽다보면, 이 작품은 인생의 풍상이 쉽게 끝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지독한 역설로 다가온다.
남편은 은퇴하기 전부터 노후를 낙향(落鄕)해서 보내고 싶다는 게 꿈이었다. 나는 낙향이라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줄만 알았는데 남편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낙향은 그냥 거처를 시골로 옮기는 거였나 보다. 남편이 마땅한 집을 찾아 시골로 돌아다니던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한 번도 따라 나서지 않았다. 그건 시골로 이사 가는 데 대한 내 반대의사 같은 거기도 했지만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은 신뢰감이기도 했다. 남편이 천리밖 고향에서 집을 구하지 않고 서울 근교로만 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중략)…나는 낙향한 내 집이 서울과 얼마나 교통편이 좋다는 걸 내 마음에 각인시켜놓고 싶다. 서울이 너무 멀다는 건 그까짓 몇 억으로는 메워지지 않는 상실감이 될 것 같았다. (박완서, 「그래도 해피 엔드」, 268~269면)
무공해 채소를 자급자족하는 전원생활을 꿈꾸면서도 대도시 못지않은 편의시설을 고집하는 노인의 모습은 처량하기까지하다. 시골에서의 삶을 겁내면서도 시골을 이해하려는 노력은좀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어도 어쩔 수 없는, 도시인의 시골에 대한 오만이 포착되는 지점이다.‘토박이 서울내기’임을 내세워 끈질기게 문명의 혜택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도시 노인의 아주 평범한 과대망상은 도시와 시골 간의 문화 차이로 형상화되면서 송곳처럼 예리하게 신산한 현실을 파고든다. 그 속에는 살아 온 세월의 무게를 어쩔수 없는 인간의 실존까지 의미심장하게 펼쳐져 있다.
포장이 안 돼 고르지 못한 꼬불꼬불한 흙길을 높은 구두 신고 걸어 내려가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중략)…서글픈울화가 치밀었다. 남편이 예찬하는 이 동네의 장점 중에는 포장 안 된 흙길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그렇게 노엽게 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베스트 드레서로 소문 나 있었다. 곧 죽어도 촌티만은 내고 싶지 않았다. 이사 온지 며칠 됐다고 벌써 촌티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무리 옷을 세련되게 입어도신발을 노인용 사스나 운동화를 신었다면 완전히 스타일 구기게 돼 있었다.(박완서, 「그래도 해피 엔드」, 270~271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오랜 세월동안 몸에 밴 습관을 바꾸는 것이어서 굳어버린 밥처럼 속을 아프게 한다. ‘시골에살면서도 촌티를 내고 싶지 않은’주인공 노인의 발버둥 속에숨어 있는 실체는 또 무엇일까. 그것은 나이가 들어도 떨칠 수없는 인간의 위선과 허위의식이다. 주변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실체험과 고스란히 포개지는 주인공 노인의 은밀한 속마음은 풋풋한 유머가 되어 소설에 감칠맛을 더한다. 그러기에 작가가 짚어낸 노인의 위선과 허위의식은 호된 질타로 이어지지않고 오히려 그것들이 있어 노년의 삶이 생기를 얻는다고 호소하는 듯하다.
비로소 마음이 놓여 표정을 밝게 가다듬고 품위 있게 걸으려고 막 폼을 잡아가고 있는데 뒤에서 택시가 한 대 빵빵거리며 다가와 급하게 내 곁에 멎었다. 방금 전에 타고 온 택시였다. 기사가 유리를 내리고 천 원짜리와 백 원짜리가 섞인 잔돈을 내밀면서, 사모님 거스름돈도 안 받고 내리시면 어떡해요, 하는 게 아닌가. 그제서야 만 원짜리와 오천 원짜리를 내고 그냥 내린 생각이 났다. 너무 신기해서 그럼 이 돈 때문에 일부러 U턴까지 해왔단 말예요? 하고 물었다. 당근이죠.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생기긴 소박하다기보다는 촌스럽게 생긴 젊은이였지만 활짝 웃는 잇속이 희고 깨끗했다. 나는 그게 눈부셔 뭐라고 고맙다는 인사와 칭찬의 말을 합쳐서 한다는 소리가 엉뚱하게도‘우리나라 참 좋은 나라네’였다. 젊은이는 조금도 어리둥절해하지 않고“사모님 어쩐지 멋쟁이다 싶었는데 외국에서 오래 사시다 오셨나 봐요. 그렇죠?”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다만 활짝 웃어주었다. 그가 나에게 축복이 되었듯이 나도 그에게 축복이 되길 바라면서.(박완서, 「그래도 해피 엔드」, 280면)
노인의 마음은 노인만이 안다고 했던가. 높은 구두를 신는 것이 노인 건강을 크게 해친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한껏 멋 부리고 젊게 보이고 싶은 할머니의 마음을 이보다 더 유쾌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해피엔드’라는 제목에 걸맞게 인간의 진상은 허울뿐인 인사치레에도 축복처럼 아픔이 치유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은 서로 자지러지는 만남이 아니더라도, 그저 지나가 버리지 않는 그 무엇을 남기기에 기왕이면‘해피 엔드’로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 홀대
‘나이 들면 시골에 가서 텃밭을 가꾸며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는 도시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직장에 얽매여 있을 때는 어쩔 수 없다 해도 퇴직 후에는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탈도시에 대한 희구다. 그것은 농사를 짓고 싶다는 귀농과는 다르다. 볼거리라고는 차가운 시멘트 건물과 이해관계로 얽힌 냉정한 사람들뿐인 도시생활에 대한 염증이 전원생활을 낭만적인 선택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화려한 건물도 시간이 지나면 퇴색하는데 텃밭을 일구는일은 매번 싱싱한 채소를 얻듯 무한히 새로워지는 생명력을경험하는 일이다. 그러한 상상만으로도 문명에 지친 도시인들은 아름다운 노후, 즉 해피 엔드를 기대하며 꿈속을 헤맨다.그런데 작가는「그래도 해피 엔드」를 통해 시골에서의 삶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도’라는 말 속에는 시골 삶에 대한 정보 부족, 도·농간 문화차이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전원생활이 실패로 끝날수 있다는 우려와 경고가 담겨 있다.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시골로 이사 온 서울 할머니가시골 버스로 서울로 나가다가 겪는 에피소드 몇 가지가 소설의 전부다. 노상 지하철만 이용하던 멋쟁이 서울 할머니는버스 뒷문으로 올라탔다가 기사와 승객들에게 무렴을 당한다. 게다가 할머니의 자존심인 높은 구두까지 조소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할머니, 할머니는 버스를 어느 문으로 타는지도 몰라요?”할머니라니, 아직 칠십도 안 됐고, 다들 오십대로 보고 딸하고 백화점에 가면 매장 아가씨들이 자매간인 줄 아는 나한테 감히 할머니라니, 더군다나 오늘은 있는 대로 멋을 부려 사십대로 보아주길,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는 나에게 이무슨 모욕적인 언사인가.…(중략)…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들렸다. 웃음소리는 탁하고 악의적이었다. …(중략)…도저히정이 들 것 같지 않게 생긴 시골 사람들이었다. 나는 오락에 굶주린 그들이 장난삼아 나를 갖고 놀려 한다는 걸 깨닫고 슬그머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중략)…“할머니 앉아요. 앉아. 빈자리도 안 보여요? 뾰족구두 신고 비틀대다가 엉덩방아라도 찧으면 어쩌려고.”승객 중의 한 사람이 걱정하는 투가 아니라 놀리는 투로그렇게 말하자 운전기사가 맞받았다.“어쩌긴 뭘 어쩌겠어? 나만 덤터기 쓰는 거지. 뭐.”…(중략)…“할머니 버스값 없어요?”“아마 만 원짜리밖에 없을 거야.”승객 중의 한 사람이 맞받았다. 기사하고 승객들은 마치한 마을에서 작당해서 어딘가로 심심풀이 삼아 나쁜 일을저지르러 가는 사람들처럼 권태로워 보이면서도 손발이 척척 맞았다. 그런 소리까지 듣고 보니 잔돈을 찾는 손이 벌벌 떨리기까지 했다.(박완서, 「그래도 해피 엔드」, 272~273면)
주인공 노인이 시골의 버스 안에서 겪는 수모는 노인에 대한 젊은이들의 괄시, 여성에 대한 남성 우위, 도시인에 대한시골 사람들의 막연한 적대감, 이방인에 대한 토착민의 텃세가 뒤섞인 집단적 홀대였다. 집단에 편승해 약자를 괴롭히는인간의 악마성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앗아가 버린것이다.‘ 노인대접’이니‘시골인심’이니하는말들은실종되고 말았다.이와 같이「그래도 해피 앤드」라는 제목의‘그래도’속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는커녕 약자를 업신여기고 홀대하는 개탄스러운 사회풍토가 압축되어 있다. 마땅히 거슬러 받아야할 돈 몇 푼과 듣기 좋은 인사치레 몇 마디를 축복으로 여기는 주인공 노인의 딱한 상황은 배려에 대한 진정성이 사라진시대를 묘파한 유머러스한 표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