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 |
[기획특집] 지역문화 다시보기 - 임실 4
관리자(2011-09-07 10:54:51)
지역문화 다시보기 - 임실 4
경쟁의 시대, 건강한 문화공동체 회복을 꿈꾼다
지난 8월 10일 오후 6시 반, 임실읍의 청소년 카페‘꿈’에는 아무리 봐도 청소년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들이 하나, 둘 찾아왔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에 이들이 모인 이유는 최성미 임실문화원장의‘임실의 역사 강좌’를 듣기 위해서였다. 현수막도, 포스터도 붙어있지 않고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은 단촐한 인원이지만 필기구와 노트를 지참한 이들의 눈은 강사를 향해 집중돼있었다. “첫 시간이라 특별히 주제를 잡아오지는 않았어요. 앞으로강의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같이 의논해갑시다. 이렇게 서로얼굴 마주보고 편안하게 진행할게요.”최성미 원장의 강의가시작됐다. “내가 여러분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친다기보다 서로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부족한 걸 채워준다는 생각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최원장의 이야기보따리 안에는 저 멀리 선사시대부터, 고대와 중세, 현대까지 모두 들어있었다. 임실의 고인돌유적과, 임실이란 지명의 유래, 동네 야산의 이름 모를 산성과 동구 밖 견기까지 임실과 임실 사람들에 대한 강의에 학생(?)들은 푹 빠져들었다.특별히 무언가 시험을 준비하지 않는 이상 공부를 하는 성인들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떤 시험에도나오지 않을 것 같은‘임실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은 누구일까.최성미 원장을 포함해 학생들까지, 이들은 대부분 지난해7월 창립한‘임실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이하 임실희망)의회원이다. 임실희망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도시지역에서 볼 수 있는 시민단체와는 성격과 구성에서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 고향인 임실로 돌아온 오광진 임실희망 기획팀장은“시민단체 활동을 오래 했지만 임실희망과 비슷한 단체를 찾아보기 힘들다”이라고 말했다.“임실희망은 풀뿌리 주민단체입니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활동하고 있는 회원들이 모여서 지역에서 건강한 공동체를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임이지요.”40여명에 달하는 임실희망의 회원들은 연령이나, 성별이나, 직업 모두 각양각색이다. 회장인 안종범 천담교회 목사를 비롯해 상이암의 동효스님과 같은 종교인이 있는가 하면,최성미 임실문화원장, 양성진 필봉농악보존회장 등 지역 문화계 인사, 또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부터, 교사, 농민과주부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공통점을 묶어내기 힘들 지경이다.이들이 하고 있는 활동도 마찬가지다. 회원들은 교육문화분과, 환경분과, 사회연대분과 등 5개 분과에서 소속돼 각기연구와 토론을 통해 활동계획을 세우고 실천한다. 모두 본업을 따로 갖고 있기 때문에 자발성에 의해서만 활동을 유지할 수있다. 상근활동가 위주의 시민단체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지난해 창립 이후 이들의 활동이 대중에 알려진 것은 희망임실 아카데미를 통해서다. 지난해 박원순 변호사를 초청해강연회를 갖은 이후, 임실군에서 기존에 운영하던 강연프로그램을 임실희망에 위탁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한승헌전 감사원장,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 무게 있는 강사들을 초청해 지역민들의 관심을 끌었다.“원래 군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할 때는 주로 건강이나 웃음을 주제로 한 가벼운 강연들을 했습니다. 저희는 좀 더 남는게 있는 강연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정치나, 환경, 통일 등의주제로 유명한 강사 분들을 모셨습니다. 사실 그런 분들은이런 시골에서 부르면 오히려 더 좋아하세요. 덕분에 섭외에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오광진 팀장의 설명이다. 한명숙 전 총리가 찾아왔을 때는 군민들 사이에서“임실역사상 가장 고위급 인사가 온 것 아니냐”는 농담이 돌기도했다고.임실희망에서 보다 의미 있는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난 4월 진행한‘임실 농업농촌경제 활성화방안 모색 군민대토론회’다. 민정 5기의 농정계획을 군민들과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장으로 기획된 이 토론회에서는군의 관계부처 책임자들이 직접 주제발표를 준비해 발제했다. 더구나 토론자로는 농민단체, 시민단체 및 학계의 농업관계자들이 나서 열띤 토론을 펼쳤다. 좀처럼 비슷한 사례를찾아보기 힘든 일이라고.청소년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을 지역에 판매하는 로컬푸드 농장도 눈에 띄는 활동이다. 청소년환경학습동아리‘그린리더’가 학업 중에 짬을 내 키운 농산물은 매주 임실읍의 아파트 단지에서 판매된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지역민들에게로컬푸드를 알리고 청소년들에게는 교육의 효과를 거둘 수있는 활동이다.
양적 확장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이 밖에도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지만 이들이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내실을 다지는 일이다. 임실희망의 기획부터 창립까지 주도적 역할을 해 온 김정흠 임실희망 사무국장(임실 그린스타트 네트워크 사무국장)은“돈의 논리, 경쟁의논리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만들어진 단체”라고 설명한다.“역사를 살펴보면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이 있었고, 독재시대에는 민주화운동이 있었습니다. 지금 시기는 결국 자본과의 싸움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조직과 단체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찾았습니다.”농민회와 에너지자립마을 등으로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김정흠 국장은 그간 만나온 사람들 중에 마음이 맞는이들에게 찾아가 본인의 뜻을 설명하기 시작했다.“오늘날의 물질적 경향에 대한 대안으로 정신적 지도자가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종파에 관계없이 종교계분들을 만났습니다. 상이암 동효스님을 찾아갔을 때 취지에대해 설명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함께 해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안종범 목사님도 마찬가지셨습니다.”그 준비모임을 시작한 것이 3년 전인2008년. 등산모임으로 시작해 천천히 사람들을 모아 2년만인 지난해 창립을 선언했다.김국장은“모임이 양적으로 확장하는 것보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성장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행사 위자, 성과위주로 평가하기 보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임하고 어떤 것을 얻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자생적 문화공동체가 대안
문화도 임실희망 모임이 관심을 갖는 중요한 분야다. 김정흠 국장은“농업정책, 생태적인 삶, 마을 만들기 등을 통해 형성된 것을 결국은 문화로 엮어야 한다”고말했다.“ 돈만으로공동체를만들수는없습니다. 주민들이진정으로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생적이고 지속적인 문화공동체를 복원해야 합니다.”오는 9월 2일 열릴‘2011 임실군 환경음악회’는 그 노력의 일환이다. “지난해 성수산 상이암에서 열었던 산사음악회에는 300여명이 모여서 스님께서 이절에 3·1운동 이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할 정도였다”는 게 김정흠국장의 설명이다.올해는 읍내에서 판을 벌일 예정이다. 오광진 팀장은“기존의 군 행사들이초청무대 중심이었다면 이번 음악회는 지역의 문화역량들을 최대로 활용하는지역문화제 형태다. 필봉농악보존회를 비롯한 지역 공연예술인들과 각급학교와 종교단체, 지역 동아리에 이르기까지 임실사람들의 음악회를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로컬푸드 판매, 옥정호·섬진강 사진전, 환경 놀이 등 환경과 생태에 관련된 부스도 운영한다.임실희망의 궁극적인 목표는 임실의 아이들이 임실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남고, 사람을 키우는 공동체야 말로 이들이 바라는 건강한 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