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 |
[기획특집] 지역문화 다시보기 - 임실 1
관리자(2011-09-07 10:39:47)
지역문화 다시보기 - 임실 1
산재한 문화자산, 이제 구심이 필요하다
유난히 비가 잦은 올 여름이라지만, 유독 임실을 갈 때마다 비구름이 쫓아왔다. 야트막한 산허리에 걸린 구름은, 조금 높이 뛰면 머리를 찧을 것처럼 낮게 내려왔다. 지리산이나 태백산맥의 준령에서나 볼법한 자욱한 운무는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사선대의 전설을 실감나게 만들었다. 운수(雲水), 즉 구름과 물이라는 이명을 가진 임실다운 풍광이다.겹겹이 둘러친 산 사이를 휘돌아 굽이굽이 섬진강이 흐른다. 천하에 이름을 떨칠 절경은 없어도, 어딜 가나 산과 강이어우러진 임실의 풍경은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산과 강이 임실의 자연적 정체성이라면, 길은 사람이 만든정체성이다. 평야와 산간의 가운데 위치한 임실은 예로부터교통의 요지였다. 조선시대 관로 중 하나인 통영별로를 비롯해 동부산간지대나 영남으로 넘어가는 길도 임실을 통한다.오가는 사람을 따라 새로운 문물도 자연스레 임실을 통해 흘러들었고, 풍요로운 임실 문화의 기반이 됐다.“임실에는 구심이 없다”는 말도 길과 관련이 있다. 외곽의면 지역이 보다 큰 인근도시와 잘 연결돼있다 보니, 지리적으로 임실 가운데 위치한 임실읍의 영향력이 잘 발휘되지 않는 것이다. 또 산지가 많다보니 같은 행정구역으로 묶여있어도 멀리 위치한 면과 면 사이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임실은 면별 독자성이 강한 지역으로 발전했다.
독자성 강한 지역성의 발현, 축제
임실의 축제를 살펴보면 그 특성이 잘 드러난다. 가장 오래된 축제인 소충사선문화제는 관촌면에서, 오수의견제는 오수면에서 열린다. 강진면에도 필봉마을에서 열리는 필봉풍물굿축제가 있고, 산머루축제는 삼계면에서, 치즈자랑축제는 치즈테마파크가 있는 성수면에서 열린다. 각 지역별 특징을 살린 축제가 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올해부터 임실군이 추진하고 있는 축제 통합에는 난제가 되고있다.임실군은 내년부터 관내 대표적인 축제인 소충사선문화제와 오수의견문화제, 치즈자랑축제, 산머루축제, 고추축제 등5개 축제를 하나로 합쳐 통합축제로 진행하기로 결정하고지난 1월 통합축제제전위원회를 결성했다. 올해는 그 통합축제의 준비단계로 시기가 비슷한 축제를 묶어 통합봄축제를치렀고 통합가을축제를 준비 중이다.지난 4월 30일과 5월 1일에는 열린 통합봄축제는 통합이라는 이름에 미치지 못했다. 오수의견문화제와 치즈자랑축제가 같은 날짜에 진행되긴 했지만 성수면과 오수면에서 따로열리면서 통합축제의 의미를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임실군 관계자는“과도기인 만큼 일정을 맞췄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축제평가를 통해 발견된 시행착오는 통합가을축제와 내년 통합축제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소충사선제와 고추축제, 산머루축제를 묶어서 열리는 통합가을축제는 봄축제의 형태에서는 한걸음 나아갔다. 소충사선문화제를 중심으로 임실군민의 날 행사를 겸하고, 고추와 산머루는 특산품 판매 부스 형태로 결합하는 것이다.내년 통합대표축제로 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임실군은 통합축제 개발 용역을 의뢰한 상태다. 어떤 결과물이나오든 각 축제 간 의견조율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각 축제의 성격이 판이하고 이름이나 시기, 장소를 조정하는 문제가 남았기 때문이다. 한석호 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 행정실장은“장소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큰 난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합축제 본 무대를 임실읍에서 하려고할 텐데 각기 축제를 치러온 지역들의 입장도 있기 때문에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한실장의 의견이다.
관심 모은 폐교의 활용
임실에는 군민회관을 제외하고 군에서 운영하는 대형 문화시설이 없다. 대신 일찍부터 폐교를 활용한 문화시설들이자리 잡아왔다. 1994년 문을 연 오궁리 미술촌을 시작으로대곡리 미술촌과 신안리 미술촌, 도화지 도예문화원에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어 폐교활용의 모범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들의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대곡리와 신안리의 미술촌은 문을 닫았고 오궁리 미술촌의 경우 시설 노후로 메인 전시관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도화지 도예문화원 역시 낙후된 시설로 고민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난 2003년 문을 연 도화지 도예문화원에는 4명의 도예가와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작품 활동과 함께 도예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연 1만여명의 체험객이 찾는 문화시설이다. 이병로 도화지 도예문화원 대표는“임대시설이기 때문에 시설을 함부로 고칠 수 없다. 체험객들도 낡은 재래식 화장실을 계속 사용해야하는 형편이다. 특히 전기시설의 경우누전 위험이 있어 정비가 시급하다. 밖으로 드러난 부분은수리할 수 있지만 벽 안쪽의 설비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임대한 폐교의 경우 소유권이 교육청에 있기 때문에 공증없이는 시설 개조나 신축이 불가능하다. 이 대표는“비용을감수하고 매입을 한다 해도 공개입찰이 조건이라, 만약 더큰 액수를 부르는 이가 있다면 애써 가꾼 시설을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교육청은 대안으로 지자체에서 폐교를 구매한 후 민간에위탁하는 방안을 권장하고 있지만 군에서는 예산문제로 인해 난색을 표하고 있는 상황. 이 대표는“군이 문화시설로 쓰기 위해 옥정에 폐교를 매입했지만 아직 활용을 하지 못하고있다. 새로운 폐교를 사들여 묵히는 것보다 이미 잘 운영되고 있는 시설을 활용할 방안을 강구한다면 더 좋은 효과를거둘 수 있지 않을까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고향
섬진강 권역은 임실의 문화관광 중심지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그에 미친 영향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강변의 진뫼(장산)마을에서 나고 자랐고 그 곳에서 교편을 잡으며 삶의 터를 일궈온 시인은 이제 섬진강을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됐다. 그가 섬진강 오백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 천담마을에서 구담마을을 거쳐 장구목으로 향하는 길은‘섬진강 문학마을길’로지정돼 수많은 도보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인근 마을 주민은“주말이면 사람들이 버스를 대절해 내려올 정도로 많이들 찾아온다. 특히 김용택 시인 생가가 있는진뫼마을과 교사로 일했던 마암분교, 덕치초등학교를 찾는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여전히 그의 시를 읽고 섬진강을찾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다.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임실군은 3년 전부터 김용택 시인에게 문학관 건립 의사를 타진했으나 시인은 완강히 거절해왔다. 대신 진뫼마을의 생가를 수리해 5~6명의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김용택의 작은학교’를 운영할 계획이다.한편‘섬진강문학마을길’인근의 9개 마을을 대상으로 하는 섬진강권역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도 시작됐다. 올해는 5개년 사업 중 첫해로 주민 교육과 방문자센터건립, 마을 경관사업 등이 추진 중이다. 섬진강변의 예술가마을을 벨트로묶는 사업도 내년부터 진행된다. 김용택 시인이 터 잡은 임실 진뫼마을과‘섬진강 화가’송만규의 순창 동계 구미마을,국악피아니스트 임동창이 자리 잡은 남원 송동 영촌마을에전시·공연장 및 쉼터 등을 확충하고 자연친화적으로 경관을 리모델링하는 사업이다. 잇다른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더 많은 관광객들이 섬진강을 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