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8 |
[기획특집] 내가 걸은 이 길 2
관리자(2011-08-17 18:58:08)
물소리 따라 서해까지 가고파라
- 허정화 환경운동연합‘행복한 화요일의 책.읽.어’회원
길이 유행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변산 마실길, 전주 순례길. 그 유행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길 여행을 해볼까 생각했다. ‘여러 가지정황상 산티아고 순례길은 무리인 것 같고, 지리산 둘레길은 가봤고, 전주 순례길은 구 구간 너무 잘 아는 길이고, 변산은 고향이라 여러 번 가봤다’는 이유로 제주올레길에 가려고 지난 겨울 제주행 비행기 티켓을 샀다. 그리고는 준비 운동 삼아 아중천을 따라 소양천까지 이르는 산책길을 걷기 시작했다.그것이 인연이었다. 만경강과의 만남은. 그 길이 그렇게 이어질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천이 강을 만난다는 사실을. 내 옆에 강이 있다는 사실을. 겨울 철새가내 집 가까이에 날아와 놀고, 풍성한 눈 덮인 갈대밭이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만남은 나를 계속해서 강으로, 강으로 끄집어 당겼다. 하루가 멀다하게 일년 중 가장 춥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강바람을맞으러 나갔다. 그렇게 중독된 걷기가 시작되었다. 하루에 서너 시간 이상을 서쪽으로는 초포다리까지 동으로는 소양을 지나는 고속도로 다리 밑까지 걸어 다녔다.그렇게 걷다가 문득 만경강을 따라 서해까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제주도는 이제안중에도 없었다. 곧 바로 비행기를 취소하고 제주도에갈려고 했던 날짜에 나는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버스도 택시도 자전거도 없이 오롯이 내 발로 아중천을 지나 소양천을 거쳐 만경강을 따라 동진강을 거슬러부안까지 걸어보겠다는 생각에 맘도 다리도 의기양양걸음을 떼었다. 2박 3일의 나홀로 대장정. 삼일동안하루 9시간씩 근 백리길을 걸었다. 철새와 눈 덮인 만경강의 풍경에 사로잡히는 순간들, 내가 이 길을 왜 걷고 있는지 물었고 강은 답했다.그 후 7월 한 여름. 읽고 쓰고 해야 하는 것이 그동안일이었고 나는 앉은뱅이 인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다시 만경강을 찾았다. 장마 뒤끝이라 물이 깨끗하다 못해 투명하다. 버들치인지 피라미인지 떼 지어 다니는물고기들. 지난 겨울에 보이던 철새들 대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신 풀벌레들이 나를 반긴다. 어찌나 시끄럽게 반기는지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작열하는 태양이밉지 않고 나를 격려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가끔씩부는 바람 탓이다. 태양을 살짝살짝 가려 멀리 산 너머그림자를 만드는 구름은 하늘에서 예술을 하고 있다.빽빽하게 녹음진 풀들과 꽃과 나비. 태양과 바람과 구름. 내 옆을 고스란히 따르는 풀벌레 소리들. 그리고 강물소리. 나에게 왜 이제 왔느냐 반기는 만경강의 소리들. 물속에서 태어났고 물 옆에서 살아가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땡볕의 강가에 서서 생각했다. 직립보행의인간. 만경강가의 여인 만경강과 함께 살다. 이렇게 수필 한 대목을 장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길을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