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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8 |
[기획특집] 내가 걸은 이 길 1
관리자(2011-08-17 18:57:39)
유배객이 들었을 초당의 파도소리 - 송만규 화가 언젠가 이 근처에 다녀간 듯하다. 그렇다. 23~4년전 정월‘위도 띠뱃놀이’에 가느라 곰소 항에서 배에올랐던 때와 ‘우동리 마을 굿’을 보러 왔던 기억이 난다. 이 외에도 부안지역은 가끔 머물었던 친숙한 곳이다. 며칠 동안이나 계속 내리는 빗줄기 속에 반계 유형원(磻溪柳馨遠)초당을 찾아 나섰다.‘반계선생유적지’라고 적혀있는 이정표는 산속으로향하는 좁은 길로 인도를 한다. 조금은 가파른 비탈길로 접어들고 고개를 들어 살펴봤자 보이는 건 나무들뿐, 찾는 이들의 발길이 뜸해서인지 길 위엔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길가의 잡초들 사이로 빠알간 산딸기가빗물에 씻겨 더욱 높은 채도로 선명하게 눈에 띤다. 그뒷전엔 맹감 잎도 우거져 있다.서당으로 쓰였던 초당엔 기와가 깔끔하게 이어져 있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없는 영정이 상위에 놓여 있다, 그 앞의 타다 남은 초 토막에 불을 밝히고 재배를 올렸다. 마루에 앉으니 눈 아래 너른들녘과 오른쪽으로는 곰소 앞바다가 쫙 펼쳐지는데 예전엔 바닷물이 지금의 마을 어귀에까지 더 접근했었을거라고 한다. 선생은 이 마루에 앉아 도연명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읊지 않았을까.당시 선생의 나이 32세, 서울에서 이 곳 우반동(愚磻洞)으로 이사를 한다. 그리고 산 중턱의 서당에 까지오르내리면서 전년도인 31세 때에 이미 시작했던 <정음지남;正音指南>과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집필을했다 한다. 그는 41세 때엔 다시 서울로 옮기기도 하고<반계수록>의 집필을 위해서 각 지방을 조사 차 유람생활을 하는 등 지난한 세월을 보내고 18년 만에 비로소 완성을 했다. 선생은 주례(周禮)를 중심으로 하는 한편 세속잡학에도 박학하여, 경험과 검증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문의 방법을 지닌 실학의 시조라 가히 불러 본다.돌아오는 길에 부안 읍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3대 여류시인 이향금<李香今號:梅窓>을 만나 그의 향기를느껴본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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